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지은 Feb 09. 2023

전철이라는 '공간'(公間)

1호선에 대한 추억이 있다. 작년 봄부터 집에서 꽤 먼 회사를 다니던 때의 일이다. 3년 만의 정기 출퇴근인 데다가 가장 효율적인 이동 수단이 1호선뿐이라 새 출근 전날부터 바짝 긴장했다. 1호선 이용 경험이 많은 친구가 내 소식을 듣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던 탓도 있다. 고장이 잦고 열차가 안내 시간을 맞추지 않기 일쑤라면서 그는 ‘1호선의 위험’을 예고했다. 안 그래도 출근지까지 가는 열차는 한 번 놓치면 기본 10-20분은 기다려야 해서 출근 초기 10분 더 일찍 집을 나서곤 했다.


매일 이용해 본 1호선의 위험은 과연 기우는 아니었다. 기후변화로 역대급 폭우가 강타했던 작년 여름 긴 장마기에 여러 번 체감했다. 인접한 역사의 지붕이 폭우에 무너졌던 어느 날은 사무실에서 좀만 더 늦게 나섰다면 아예 열차 이용을 못 할 뻔했다. 평시에 열차 문이 단번에 열리지 않는 건 별 일어떤 날에는 앞차가 고장이 나서, 내가 탄 열차는 문을 열어놓은 채 멈추어 있었다. 한참 후 다시 운행했고, 그날 나는 귀가에만 두 시간 넘게 썼다. 간혹 열차 칸 사이사이의 전동 문이 혼자 오작동하는 등의 놀랍진 않아도 독특한 장면을 포착하면 연식도 소음도 많은 이 전철이 마치 생물처럼 느껴졌다. 어쩐지 측은하고도 귀여운, 오래된 전철의 그런저런 행태를 가끔 사진이나 영상으로 담았다.


처음엔 출퇴근에 걸리는 시간이란 모조리 아깝게만 여겼었다. 먼 만큼 커지는 시간의 손해를 관리하기 위해 앉아 다닐 수 있는 출근 시간대를 택해 책 읽기, 장 보기, 이메일 확인하기 등과 같은 각종 활동 옵션을 이동 중 배치했다. 미리 준비할수록 잘 실행했고, 이런 삶을 잘 살아내면 몇 호선을 타든 출퇴근 시간이 얼마나 오래 걸리든 상관 없어지는 것이었다. 그러면 동시에 나는 무슨 역에서 출발해 어디서 내리는지, 같은 전철을 비슷한 시간대에 계속 타면 몇 번씩 마주치는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 타서 내릴 때까지 문 앞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앞에 누가 서 있고 옆에 누가 앉았는지 같은 것들이 신경에서 멀어져 발견되지 않게 조절되었다.


그런데 어느 날엔 보았다. 몇 번째인지 모를 강 위로 전철이 떠오를 때. 반팔 원피스에 울 카디건 하나 걸치면 충분했던 어떤 봄날 하늘에서 내리쬐는 빛이 그대로 어찌나 반짝이던지, 선글라스도 다 막지 못했다. 수면에서 부서진 빛이 물 위에 파편처럼 퍼지는 광경을 1호선 출근길에 우연히 발견했다. 얼마나 아름다운지. 계속 땅 위를 달리는 이 열차에서 강을 건너고도 선글라스 너머의 바깥 풍경을 쭉 구경했다. 콘크리트나 방음벽은 어둡고 삭막하지만 반드시 그러기만 한 것은 아니다. 그 벽을 타고도 어마어마하게 잎을 내고 꽃을 피우는 존재가 있다면. 이제부턴 강을 건너면 다가오는 풍경을 보기 위해 어떤 날은 왼쪽 좌석에, 또 어떤 날은 오른쪽 좌석에 앉았다.


1호선에서 본 게 풍경만은 아니었다. 원하지 않아도 다른 동승자의 얼굴을 한 명이라도 꼭 마주하게 되고, 한 번으론 안 끝나는 말까지 꼭 섞고 마는 공간이 바로 1호선이었다. “이거 소사 안 가요?” “급행 아니죠?” “동인천 가는 게 여기(플랫폼) 맞아요?” 주로 이런 질문들에서 시작됐다. 나도 처음 들어보는 동네 이름에 노선도를 보고 찾아서 대답을 해주면 이어서 딸려왔다. “어머 잘못 탔네~” “아이고 그럼 어떡하나” 같은 말에 또 한 번 반응하는 식이었다. 얼굴을 보고.


전철을 잘못 탄 이들은 많았다. 한 할머니는 내가 A역에서 내려서 다시 타라고 알려줘도 영 불안한 기색으로 있다가 그 역이 오기 전 꼭 다시 확인했다. 잃어버린 휴대폰을 찾으러 가는 길에 전철을 잘못 탄 할머니에게 휴대폰을 빌려준 적도 있다. 그녀는 나에게 한 번, 자기 휴대폰을 주운 이에게 전화로 한 번, 미안해하고 고마워했다. 급행열차를 잘못 타 지각했던 되게 추운 날 안양역 하행선에서 만난 할머니도 기억에 있다. 실외 열차 플랫폼에서 헤매다 내게 온 그분은 상행선을 타야 하는데 하행선 플랫폼에서 열차를 찾았다. 천천히 방법을 알려드렸는데 플랫폼 이동은 하지 않고 걸려온 전화통을 붙잡더니 내 앞에서 열차가 안 온다면서 큰 소리로 통화를 해댔다. (아니 플랫폼을 이동하시라고요!) 정부의 철도 민영화 수순에 노조가 오랜만의 파업을 병행하던 날들이었다. 손은 시린데 신경을 계속 끌던 그 할머니가 통화를 끝내자마자 또 똑같은 걸 물었다. 나 원 참! 회사 면접을 보던 날 나도 열차를 잘못 탔었다. 교차역인 구로역으로 되돌아가 여섯 개였는지 여덟 개였는지 기억 안 나는 플랫폼 구멍 중 어느 구멍으로 내려가야 할지 도통 모르겠더라. 그런 역은 익숙지 않은데 구멍마다 있는 숫자와 목적지를 매칭하는 안내판을 못 찾아서 마침 통로에 서 있던 분에게 물었다. 우리 엄마도 나를 만나러 오는 길에 구로역에서 헤맸었고. 이런 경험이 없다면 예상치도 매끄럽지도 않았던 접촉들로 내 시간이 분할되는 1호선 에피소드가 마냥 귀찮게만 느껴지는 일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1호선은 그 역사만큼 단순치 않은 노선이고, 나는 면접날 이후에도 더러 열차를 잘못 타고 내렸다. 내가 이동하는 그 공간에 무감각해질 때쯤이면 꼭 한 번씩.


1호선에 대한 사실을 더 알게 됐는데, 전체 노선 길이가 200.6km이고 단일 노선으로 전 세계에서 가장 긴 노선이란다. 국내의 가장 오래된 전철인만큼 노후로 인한 불편과 고장이 많으니 교통 약자에겐 더욱 이용하기 불편할 것이다. (1호선인 청량리역, 종로3가역, 신설동역을 비롯해 서울에만 20여 개 전철역에 아직도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지 않았다.) 일단 몸을 실은 후에도 어디에서 어디로 이동하는지 무감각해질 수 없는 요소요소가 여기저기 확실하게 존재한다. 몇 개 읊자면 이렇다. 목적지가 같더라도 절대 급행열차를 타서는 안 된다. 1호선을 타고 일하러 가는 이라면 항상 열차 도착 시간에 민감해야 한다. (내 경우엔 늦은 시간 사무실을 나섰다가 길어진 배차 간격으로 30분이나 열차를 기다렸다. 이후로는 첫 출근 날 파티션에 붙여 놓은 시간대별 퇴근 열차 시간을 적은 포스트잇을 꼭 확인하고 귀가했다.) 실외나 다름없는 1호선의 크기별 역사 공간엔 계절에 따라 각자 자기 열차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행동 패턴이 뚜렷이 나타난다. 내가 이용하던 서울 끝자락의 작은 역사에서는 한여름이면 개찰구 앞에 놓인 지름이 20cm 정도이고 양쪽으로 갈라진 플라스틱 튜브관 앞에 몇몇 사람이 서서 그 구멍에서 나오는 바람을 쐬는 장면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체험해보진 않았다. 11월 초겨울부터는 승강장으로 내려가기 전에 바람은 피할 수 있는 이동 통로에 일정 간격으로 서서 전철이 들어오는 쪽 방향을 일제히 응시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기온에 더 많은 영향을 받는 몸을 가진 이라면 이런 풍경 따위 구경할 여유를 만들기 힘들겠지만.


까다롭고 불편하며 어떤 것들은 반드시 개선해야 할 1호선 열차, 이걸 타고 통근하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을 무렵 깨달았다. 나에겐 물음표가 참 많이 생겼던 공간이라고. 앞과 옆 승객에게 이렇게 질문을 많이 받기는 처음이었다. 덕분에 공공 디자인과 설계에 대해 더 생각해 보고 나이 든 엄마도 한 번 더 떠올렸다. 행인에게 친절한 편인 동거인이 생각나서 나도 평소보단 좀 친절해 보려고 노력했는데, 1호선에서 헤매는 누군가에게 좋은 길잡이가 되어주었을까.


작년 말부터 나는 3호선을 타고 통근한다. 가져온 책이나 휴대폰을 보다가 역에서 하차하고, 갑자기 질문받은 적은 아직 없다. 바깥 풍경을 볼 일은 없지만 추위에 노출될 일도 없었다. 작년 마지막 날 오후 출근을 하다가 강을 건너는 타이밍에 정신이 번쩍 뜨이는 일이 있었다. 늘 나오던 다음 역 안내 방송과는 다른 멘트가 시작되자마자 눈을 껌뻑이다가 똑같이 반응하던 앞 승객과 눈이 마주쳐 웃었다. 30초가 좀 안 되는 이 열차의 기관사가 준비한 말의 내용은 이랬다. (서두 부분은 정확하지 않다.)


“올해의 마지막 날입니다. 마지막 날이 기쁘게 다가온다는 건 그만큼 잘 살아 냈다는 의미일 겁니다. 다가오는 새해도 새 마음 새 출발로 새 기쁜 새 마음이 행복으로 곱게 여물어지는 가장 뜻깊은 해 되시길 바랍니다. 우리 열차는 오금역까지 운행되는 행복열차입니다. 감사합니다.”


이름 모를 기관사 A의 말을 들으며 그의 얼굴이 그려졌다. 이 전철을 움직이게 하는 장본인이지만 가장 열차에서 가장 보이지 않는 존재. 바로 한 달 전 파업 때도 미처 떠올려본 적 없는 얼굴들 중 하나. 전철이 마지막 날까지 내게 큰 일을 했던 작년은 갔다. 새해엔 모든 시민이 같이 누리는 ‘대중교통’, 또 하나의 ‘공간’(公間)이 전철이면 좋겠다. 당연한 일을 당연하게 만드는 사회로 가는 게 참 어렵다.


<복음과상황> 공간 & 공감에 연재하는 이야기입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