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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지은 Oct 02. 2023

동네 피아노 학원에 다닌다


한 번이라도 안 틀리고 곡을 끝내는 경우는 없다. 한 번이 뭐야, 끊김 없이 한 곡을 맺는 게 이렇게 어려운 일이었나 싶다. 한 시간을 꽉 채워 건반 위 손을 나름 부지런히 움직이는데, 시간이 너무 빨리 간다. 상쾌한 기분으로 연습을 마치는 날은 드물다. 겨우 파 샤프(#) 하나 붙은 바장조 악보를 연습하다 자꾸 짜증이 나 한숨을 푹푹 쉰다. 곧 다른 일을 할 시간이다.         


“자기. 연습 더 하고 싶으면 더 하다 가~.”      


원장 선생님은 착한 사람이다. 그렇게 된 게 분명하다. 한 자리에서 20년 넘게 피아노 학원을 운영했다. 물론 성깔이 없다는 말은 아니다.      


“어릴 땐 외워서 치던 곡인데, 잘 안되네요.”   

“하루에 그 정도 나가는데 얼마나 잘하는 거야! 어릴 때 쳐 놨으니 그 정도 치는 거지.”         


학원을 나서자마자 녹음한 연주 소리를 켰더니 엉망이다. 치면서 듣는 것보다 훨씬 심하다. 하루 종일 이런 소음을 들으면 뇌가 띵해질 것 같은데, 선생님의 격려가 생각나 민망하다. 그녀의 얼굴이 피곤해 보이는 건 그 때문일까. 왜 왼손을 더 약하게 치라고 하는지, 셈여림표를 더 신경 쓰며 치라고 하는지 알겠다. 내가 그렇게 화난 사람처럼 건반을 누르는지 몰랐다.      


피아노를 다시 친 지는 얼마 안 됐다. 주 20시간은 옷가게에 노동을 제공하고 나머지 시간은 프리랜서로 일하며 카드사 전월 실적을 채워 알량한 혜택을 노리는 빚쟁이가 바로 나, 정기 지출을 새로 계획하는 게 쉽지 않지만 무려 현금으로 동네 피아노 학원을 다닌다 넉 달째. 꽤 큰 투자다. 대신 동네 요가원은 가성비가 훨씬 좋은 원거리 공공수영장으로 대체했다. 주 2회 피아노를 치러 갈 때면 요가원을 지나친다. 소득을 늘려 요가원도 재등록하려고 개인 매트는 빼지 않았다.      


소망피아노. 학원 이름이 찰떡이다. 믿음 소망 사랑, 그중 제일은 사랑이라 들으며 자랐지만 피아노 학원 이름에 사랑을 올리는 건 아무래도 지나치다. 믿음도 너무 비장한 느낌이고. 소망피아노 문을 두드린 일부터 내 소망 하나 이루기 위함이다. 어쩐지 전통적인 안정감과 노스탤지어를 일으키는 단어, 쉽고 대중적인 이름. 어릴 때 피아노를 배운 두 개의 학원은 모두 원장 이름이었다. 당분간 소망피아노를 쭉 재등록할 거다. 적어도 피아노가 다시 집에 들어오기 전까진.      


집에서 피아노가 사라진 건 16년 전이다. 4인 가족의 이사 앞에서 결국 팔려 나갔다. 당근마켓도 없던 시대, 중고 거래가로 봐도 덩치를 생각해도 존재론적 지위가 아슬아슬하던 용품. 기억에도 생생한 엄마 말로 피아노는 성인 남자 여덟 명이 붙어도 낑낑댈 정도로 무거운 데다 자리도 많이 차지하는 물건이었다. 황동색 굵은 돋움체 영어 로고가 교본 받침대 아래 박힌 갈색의 업라이트 피아노. 서로 다른 시기 피아노를 배운 8년 터울의 언니와 내가 연습하고 연주도 한 이 건반 악기는 25년 넘게 눌리고 눌리면서 한 번도 조율하는 걸 본 적이 없다. 다음 음계로 넘어갈 때까지 되돌아올 줄 모르는 건반은 몇 개 있었어도 소리만큼은 끝까지 ‘영창영창했다.’ 더 좋은 피아노 더 비싼 브랜드 같은 건 있는 줄도 몰랐지만 친구 집의 삼익보다 우리집 영창의 소리가 나는 더 좋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성인까지 피아노가 집에 그대로 있던 사촌언니 피아노는 업라이트에서 전자로 바뀌는 내내 야마하였는데, 언니가 쓰던 리코더를 물려 불던 내게 어느날 엄마 아빠가 새 크림색 리코더를 사줬다. 덮개가 파란색이고 거기 리코더와 같은 크림색의 YAMAHA 로고가 박힌. 예쁘기로도 로고로도 희소성 있는 그 리코더를 학교에서 꺼내 불 때마다 왠지 모를 자부심이 들던 글자.      


야마하가 악기와 음향기기로 세계적인 명가인지도, 영창 피아노보다 야마하 피아노가 비싼지도 몰랐던 그때 나는 5인 가구의 구성원이었다. 식구 중 친할머니만 유일하게 자기만의 방이 있고, 네 명이 남는 두 개의 방을 나눠 쓰던. 집과 동의어였던 그때의 아파트를 어른인 지금 추억하면 흡사 현대 미술관의 전시 공간 같다. 제목은 ‘집, 90년대 아파트 키드.’ 집을 생각하면 나보다 오래된 제각각의 가구들이 먼저 떠오르지만 신상품 CRT 모니터의 삼성 매직 스테이션 PC도 있었다. 엄마 아빠는 침대가 없고, 나와 언니는 긴 스티로폼 여러 겹을 붙여 싱글에서 더블로 셀프 리폼한 아빠 비혼 때부터 쓰던 침대에서 같이 자도 불편한 줄 몰랐다. 처음 내방이 생긴 건 그다음의 집, 뇌졸중으로 누워 지내던 친할머니가 돌아가신 그 아파트를 떠날 때 피아노를 떠나보내며 나는 고등학교 졸업 시기를 맞고 있었다.        


“실은 그때 내가 돈이 너무 궁해서 집이 좁다고 핑계 대며 팔아 묵었당.”        


중고 거래가 70만 원. 당시 이사 비용을 상쇄하고도 남을 액수였으니 피아노를 처분한 이유를 이해하고도 남는다. 둘째가라면 서러울 식욕이 고민인 조카가 피아노 학원을 다니더니 먹던 밥도 내팽개치고 학원으로 달려간다는 언니 생활 근황을 듣던 중에 엄마에게 갑자기 물어봤다. 우리가 잘 갖고 놀던 피아노를 왜 팔았느냐고. 이제와 엄마는 고백처럼 말했다. “그때는 증말 돈이 없었어. 그 70만 원으로 한참 돈 걱정 없이 산 거 같아.” 피아노를 돈 때문에 판단 말을 들은 적은 없었는데. “잘 팔았지 뭐야.” 우리는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언니는 자식 둘을 키우고, 나는 자식 있는 삶을 이 사회에 구체적으로 그리지 않는다. 숨만 쉬고 살아가도 많은 돈과 공간이 필요한 존재가 사람이라는 걸 우리도 안다.      


어쨌든, 피아노 없는 상실감을 대충 잠재운 건 가벼운 전자 피아노를 ‘나중에’ 사준다던 엄마의 약속 위에서였지만 엄마 아빠의 집을 떠나기 전에 그 ‘나중’은 오지 않았다. 없는 피아노를 치는 건 놀이가 될 수 없었고, 그동안 판매용 피아노가 눈에 띌 때마다 두드려 보던 습관은 판매용 피아노를 볼 때마다 시세만 파악하는 습관으로 이어졌다.      


17년만에 다시 피아노로 놀수 있게 된 건 순전히 동네 덕분이다. 나는 '탈아파트'했다. 아파트 공화국의 아파트 키드로 자란 나는 동거인과 집을 알아볼 때마다 살고 싶은 동네와 집을 한도 내에서 고르고 고르고 또 골랐다. 아파트는 빼고. 살다보니 믿음미용실도, 과거의 중앙탕 건물도, 수연마트도, 대구참기름집도, 이 모든 게 들어선 동네 중앙 길에 저녁 즈음 우리 빌라 이웃을 포함한 할머니 몇몇이 모여 카페 외관에 설치된 벤치에 앉아 정담 나누는 일과를 풍경처럼 볼 수 있는 게 곧 선물이었다. 아파트 단지에선 이제 보기 드문 학원, 동네 애들의 피아노 교습을 책임지는 소망피아노 앞을 산책길마다 지날 때면 외벽에 붙은 글자 ‘P ANO’의 I는 이미 떨어진 지 오래일지언정 왠지 든든한 마음까지 들던 이유를 알았다. 이 동네에 거주한 지 2년을 채워 가던 어느 날, 어떤 의지가 내 해마 속 소망피아노 외관을 섬광처럼 인출했다. 학원 간판에 번호가 붙어 있었다는 기억도 함께. 전철역으로 가는 방향에 있어 하루에도 몇 번씩 지나는 대구참기름집보다 내 생활과는 무관한 피아노, 학원 간판인 줄 알았는데 말이다.  


그날로 모바일 앱 지도의 로드뷰를 켜 단숨에 소망 피아노 학원 앞에 서서 전화를 걸었다. “없는 번호”라는 안내 음성이 들려왔지만 그대로 실망하긴 일렀다. 걸어서 5분 이내니까. 곧바로 신을 신고 집을 나서 진짜로 학원 문 앞에 섰지만 초인종 없는 오래된 1층 양옥 건물은 굳게 닫혀 있었다. 나무를 덧댄 낡은 철문을 쾅쾅 두드려도 반응이 없고, 간판 아래 붙은 번호는 아까 그 없는 번호였다. 그래도 방음만은 철저해 보이는 현관문 앞에서 실망하긴 일렀다. 학원 외벽에 붙은 글자 ‘P ANO’의 I는 역시 떨어진 그대로지만 현관문을 덧댄 나무 막대기들은 여전히 굳건하니까.  


이런 생각을 하며 두리번 거리던 찰나, 벽면에 붙은 에이포 용지를 발견했다 마침내. 수강 안내와 새로운 휴대폰 번호가 쓰여 있는 이 종이는 발견하고 보니 무려 ‘세 장이나’ 붙어 있었다. 옛날 번호를 떼지도 않는 이 무심한 ‘P ANO’ 학원은 계속 영업 중이 분명했다.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내일 와요오~.”  


피아노 수강 문의로 전화했다는 말에 당장 내일 오라는 원장일 듯한 그녀의 음성은 꽤 단도직입적이었다. 뭔가 더 할 말을 찾으려 머뭇거리는 사이에 그녀가 또 말했다. “와서 이야기하고 등록 안 해도 되니까 내일 와요오~.”


그날 이후 나는 소망피아노를 다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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