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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지은 Dec 12. 2022

그렇게 주민이 된다

반상회에 대한 기억이 있다. 이제는 이 단어를 들어본 적도 없는 사람이 많지만 1990년대 중후반까지 살았던 아파트에서는 동마다 반상회가 주기적으로 열렸었다. 불암산 아래 위치했던 12층짜리 중앙하이츠 아파트. 그 시절 초등학생이던 나는 지금 내 나이보다 몇 살 더 많았던 엄마 손을 잡고 주로 저녁 시간에 열리던 반상회에 참석(?)하곤 했다.



반상회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은 야쿠르트지만, 아마도 함께 마시던 기억 때문이 아닌가 한다. 나처럼 엄마 따라와서 우연히 만난 친구들과. 요즘에야 유산균보단 설탕 덩어리라고 하여 천덕꾸러기가 됐지만, 당시에는 국민 어린이 음료여서 어느 집 냉장고에나 늘 비축되어 있던 그 야쿠르트를 처음 만나는 또래 애들과 함께 쪽쪽 빨던 기억이 있다. 간혹 그들이 없는 반상회 날엔 하는 수 없이 거실에 둘러앉은 어른들과 함께 그 야쿠르트를 마시며 엄마 다리를 베고 눕거나 옆에 앉아 우리집과는 다른 느낌의 남의 집 가구와 식구 구성을 구경했었다. 모인 어른들의 얼굴들을 살펴보다 잠들기도 하고. 반상회의 어른들은 꼭 자녀와 동행하지 않았더라도 ‘초딩’ 어린이를 보면 말을 거는 것이 불문율이라서, 거기서 한 번이라도 본 어른이라면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도 낯설지 않았었다.


층층이 호수별로 돌아가며 열렸던 반상회는 내겐 때마다 어떤 친구를 만날지 모르는 장소이기도 했다. 어떤 날은 자기 방에서 친절하게도 이 물건 저 물건을 보여주며 같이 놀아주는 언니를 만났고, 진짜 운 좋은 또 다른 날엔 잘생긴 동네 오빠를 발견할 수 있었다. 뭐니 뭐니 해도 가장 재밌는 시간은 마음 맞는 또래 친구를 사귈 때였다. 같은 학교 친구라도 우연히 만나면 혹시 반이 달라도 위아래 층으로 서로의 집을 오르내리며 노는 사이로 발전했다. 굳이 엄마 따라 반상회에 안 가도 그 친구의 집에서든 우리집에서든 만나서 반상회가 끝나는 시간까지는 놀 수 있는. 그렇게 사귀었던 친구 한 명이 우연히 성인이 된 후 인스타그램을 통해 연결되어 그 어머니의 안부까지 물었다. 반장도 맡았던 그녀는 전라도 말씨를 쓰며 끝내주는 닭죽을 자주 만들고 몇 년에 한 번은 집의 가구도 싹 바꾸는 꽤나 인상적인 분이었으니까. 반상회란 각 단위별로 공동 처리할 안건 회의를 하는 모임이라는 사실을 이제는 어디 물어보지 않고도 알지만, 회의엔 아랑곳없는 나에게도 여러 각도로 기대와 의미가 있는 시간이었나 보다. 20년도 더 넘은 그때 장면들을 떠올리면 어린 눈에도 왠지 더 맘에 드는 (인테리어의) 집이 있었다는 사실은 물론, 소리 같은 것들도 기억이 난다. 회의를 주도하는 반장님 목소리를 주축으로 서로 주고받던 이런저런 어른들의 소리, 그 사이사이의 웃음소리, 여럿이 각자 과일을 집어 서걱서걱 무는 소리, 집집마다 다른 모양의 꽃무늬 과일 무늬 쟁반이나 개인 접시에 과도나 포크가 부딪히던 소리 같은 것들.


반상회에 참여할 기회가 20년 만에 다시 생겼다. 새로 지어진 아파트로 이사를 간 2000년 이후로는 기억이 없는 반상회인데, 내가 마침 어린이에서 청소년이 되어 가는 성장기여서 엄마를 따라가지 않은 건지 아니면 새 아파트에서는 별로 열리지 않았던 건지는 모르겠다. 다시 반상회에 갈 일이 생긴 건 동거인과 함께 살고 첫 이사 후 새 동네에 정착한 지 1년째가 되던 최근의 일이다.


우리는 오래된 동네의 오래된 빌라로 작년에 이사했다. 반지층부터 4층까지 15세대가 거주하는 25년 된 건물이지만 집 구조와 바깥 풍경이 맘에 쏙 들어왔다. 이사 전 이웃들에게 과일 몇 개씩을 돌리다가 가까운 동네 마트(슈퍼)가 아랫집이 운영하는 점포라는 사실을 알았고, 그곳을 이용하다가 그 옆 옆에 있는 믿음미용실 원장님이 통장님이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이런 식으로 1년 동안 동네 정보를 차츰차츰 습득할 때면, 알면 왜 좋은지 당장은 알 수 없는 정보를 매개로 여기 동네 문화 어딘가에 우리가 점점 들어가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것이 분명하게 좋았다.


빌라 ‘단톡방’에서 3년 만에 반상회가 열린다는 말을 본 이후에는 반장님이 복도 등을 갈고 있던 어느 오후 때나, 기록적인 폭우에 주차장이 침수되고 반지층 세대도 하마터면 침수를 입을 뻔했던 날의 장면 같은 것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일요일 저녁, 할 일이 있는 동거인은 아쉽지만 남고 내가 집을 나섰다. 다른 일정을 마치고 딱 맞춰 반장님네 집, 301호 현관을 두드리자 문이 열리며 남의 집 살림이 펼쳐졌다. 엄마를 따라갔을 때처럼은 아니지만 그 집 안을 살피고, 1년 만에 처음 보는 딸과 아드님과도 인사를 나누며 거실에 앉았다. 이웃의 집에 들어가는 것도 그 이웃집에서 연배와 성별이 다른 이웃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일도 처음인데, 반장님 아내분이 자리에 앉은 내 손에 얼른 과일 접시와 (야쿠르트가 아닌) 유리병 주스를 쥐어주시는 것만은 20년 전 그대로였다. 봄부터 건물 1층 한 켠에 상자텃밭에 방울토마토를 키우실 때 열매가 열리면 나눠먹자는 말씀을 하셨는데, 그 열매를 정말 먹게 될 줄은 몰랐다.


이미 와 계신 분들 중엔 골목에서 자주 마주쳐서 반가운 얼굴의 할머니도, 전에 반장님을 오래 하셨던 처음 보는 아랫집 남자 어른도 계셨다. 그는 알고 보니 몇 번 인사했던 여자 어른의 남편이고, 이미 내 동거인에게 스마트폰으로 라디오 듣는 법을 알려줬다면서 고맙다는 인사를 하셨다. 오실 분들이 모두 모이는 동안에는 이런 식으로 한 건물에 살면서도 잘 몰랐던 소식들이 오갔다. 내가 모르는 새 이런 일도 있었단다. 코로나로 오랫동안 반상회를 미룬 몇 년 사이에 새로 이사 왔던 식구와 다른 집 식구 사이에 주차 문제로 갈등이 생겨 경찰까지 왔다가 결국 한 집이 이사를 나갔던 사건. 우리 옆집이 그래서 바뀌었는 줄은 미처 몰랐다. 최근 딸을 출가시킨 아랫집 분은 축하를 받았으며, 나도 빌라 건너편 집 대나무에 대한 궁금증을 풀었다. 


대나무는 우리 빌라 앞 집이 키우는 식물이고 집에서 그 풍경을 공짜로 보는 게 큰 호사였는데, 며칠 사이 그 대나무가 거의 다 베이는 걸 본 동거인과 나는 이 일이 처분인지 관리인지 몰라 꽤 충격에 빠졌었다. 미리 와 계시던 할머니가 그 집 대나무는 1-2년에 한 번씩은 잘라준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옆에 앉은 2층 어른이 (잘라내서) 해가 더 들어와 가슴이 다 시원하다고 곧이어 말씀하셨다. 남의 사정도 모르고 말실수를 하지 않아 다행이었던 그 반상회 이후로는 알게 되었다. 대나무 말고도 그 집 나무에서 떨어지는 죽은 이파리를 치우느라 가을마다 빌라 청소를 하는 분들 일이 훨씬 늘어난다는 사실을.


건물의 지붕 수리가 안건이었던 그날 반상회에서 생각보다 많은 걸 배웠다. 집 누수가 건물의 지붕 문제 때문일 땐 공동 경비로 비용을 지출하는 건을 회의로 결정한다는 사실을 반상회에서 보지 않았다면 우리집 베란다에도 간혹 발생하는 그 일이 공동의 일인인 줄 몰랐을 것이다. 다른 집도 그럴 때가 있으며, 원래 집이란 이런저런 유지 보수를 하며 사는 공간이라는 사실을 미리부터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문제가 생기면 관리실이나 업자를 부르거나 이사하는 방법만 그려 보았으니까. 전 반장님과 현 반장님을 포함해 20년 이상을 이 빌라에서 산 다른 이웃들에게 이 공동주택이 오래 유지되어 온 이야기를 들으면서, 낼 때는 몇 푼 안 되는 관리비를 여럿이 차곡차곡 모으면 어떻게 쓸 수 있겠는지도 혼자지만 상상해보았다. 집이란 모두 각자 사는 각자의 집 같았는데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모든 일이 그렇듯 주거도 따로 또 같이 기획하기 마련인 부분이라고 여기니, 이웃을 대하는 일이 전보다 더 자연스러워질 것 같다. 그간 인사를 나눴던 건 실은 모르는 척을 하는 것보다 덜 불편할 것 같아서일 뿐이었는데.


반상회를 마치고 우르르 인사를 하며 나와서 옆집에 사는 모녀와 몇 마디 말을 나누며 계단을 올랐다. 집으로 돌아가자마자 반상회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더니 동거인도 같이 들떴다. 그 이후로 우리는 때가 되면 이 빌라를 공동으로 수선하는 일에 대해 쓸데없이, 정말 쓸데없이 논의하곤 한다. 내가 여기에서 어딘가로 들어가고 있다는 느낌이 전보다 더 분명하다. 왠지 내 반상회에도 어린이가 보이면 좋겠다는 마음이 드는 사실이 좀 웃긴다. 성인이 되고 참석한 첫 반상회도 20년 전만큼이나 여러 각도로 기대와 의미가 있는 시간이었던 게 분명하다. 이 글을 쓰는 동안 떠올린다. 알록달록했던 유리병 주스와 포도와 방울토마토가 올려져 있던 반장님 거실 테이블, 처음 들어간 이웃집에서 들었던 사이사이 웃음소리, 접시와 쟁반에 포크가 부딪히는 소리 같은 것들을.


※ <복음과상황> 공간 & 공감에 연재하는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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