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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지은 Apr 03. 2023

목욕탕은 사라진다

“어머 자기도 독한 사람이구나~”


냉온탕을 권한 미순 씨가 말했다. 벌게진 몸으로 냉탕에서 나오다가 독하다는 말에 기분이 좋아졌다. 이미 나는 아홉 번째 냉욕 중이고 온탕 한 번만 하면 냉욕으로 마무리할 거라고 미순 씨에게 대꾸한 참이었다. 안 그래도 늘 독하게 할 뭔가를 찾는 나에게 독한 사람이라니. 분명 칭찬이다. 덕분에 가뿐하게 마지막 온욕을 하러 가는데, 미순 씨는 목까지 푹 담그라는 조언을 잊지 않았다. 이 목욕탕에 독한 사람이 꽤 있나 보다.


미순 씨는 오늘 목욕탕에서 처음 만났다. 나보다 적어도 30년은 더 살았을 것 같은 몸의 그녀에게 미순이라고 이름 붙였다. 알고 보니 미순 씨 자리가 내 오른쪽 옆이었다는 사실을 목욕 마칠 때쯤에야 알아차리게 되었다. 목욕의 시작으로 10분 온욕을 하는 사이에 내가 쓰려고 미리 씻어 둔 의자를 가로챈 바로 그 사람. 확실한 물증이 없어서 나는 선 채로 꿋꿋이 때를 밀었다. 옆에 앉은 성철 씨(이 이름도 내가 지었다)와 떠들며 함께 씻는 미순 씨 왼편 옆자리에서. 그녀들을 주시해 보니 아무래도 이 목욕탕에 자주 오는 목욕 친구 같다. ‘이 목욕탕 가까이 사나?’ 7년 만에 이곳을 찾은 나는 오는 길 언덕에 주르륵 보였던 목욕탕 근처 집들을 떠올렸다.


이 목욕탕은 숲속한방랜드라는 이름에 걸맞게 ‘숲뷰’를 자랑하는 곳이다. (욕탕에선 숲이 안 보인다.) 목욕탕 말고도 야외 숯가마가 있는. 숯가마 앞에 여유 공간을 두고 평상 세 개가 있다. 붙어 있는 두 개의 평상과 따로 떨어져 있는 평상 하나. 그 앞에 하나씩 있는 간이 화로에서 사람들이 고구마나 떡을 구워 먹는 모습이 자연스런 풍경이다. 이곳에 언제부터 오기 시작했는지는 기억 안 나지만 식구들과 함께 오던 시절엔 고구마를 먹으러 오는 기쁨이 컸다. 우리 고구마가 없어지거나 다른 이의 고구마와 바뀔까 봐 화로 앞에 자주 서 있곤 했는데, 우려하던 일이 생각보다 잘 벌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경험으로 알게 되었다. 이번에 갔을 때 여기서 숯에 고구마를 최적으로 굽는 법을 다시 익혔다. 화로 가까운 평상 자리에 앉아 있던 연세 지긋해 보이는 베테랑 순희 씨(이 이름도 내가 지었다) 덕분이다. 내가 활활 타고 있는 숯 바로 옆에 고구마들을 신속히 깔자마자 그녀가 말했다. 너무 뜨거운 숯 근처에 놓으면 겉이 다 타버린다고, 불이 거의 꺼진 은근한 숯에서 구워야 고구마가 골고루 잘 익는다고. ‘아무리 그래도 불이 다 꺼져 보이는 숯의 온도는 너무 낮은 건 아냐?’ 의심하면서도 순희 언니 말을 무시하기 어려워 고구마를 옮겼다. 손실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그렇게 맛있는 고구마를 먹기는 정말 오랜만이어서 함께 온 동거인과 간식으로 네 개나 먹었다.


내 의자를 가로챈 미순 씨와 일화로 돌아가면, 그녀의 목욕 친구인 성철 씨는 부동산 임대업 수입 덕분에 현금이 많은 사람이다. 덕분에 남편과 여행도 자주 다니는 여유 있는 생활을 한다. 선 채로 때를 밀며 두 사람의 대화를 따라가다 알았다. 국내 여행도 해외여행도 다니나 보다. 그런 성철 씨 입에서 나온 소리가 좀 가관이어서 말을 보탤 뻔했다. 임대 수입으로 현금 많아서 좋겠다는 미순 씨에게 하는 말이 “요즘 월세 사는 사람들이 천국이지 무슨 소리야~.”였다. 무슨 소린가 하니, 1회 계약갱신청구권으로 2년 살고 2년까지 더 살 수 있게 된 것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어머, 그게 천국이면 성철 씨가 월세를 살면 되겠네요?”라고 말하고 싶었으나 속으로만 혀를 찼다. (다행일까?) 이런 부분에 무지한 듯한 성철 씨의 소리에 미순 씨는 별 맞장구를 안 쳤다. 때를 다 밀 때쯤엔 내 의자를 가로채간 것에 대해 생겼던 열받음이 좀 누그러져 이렇게 생각했다. 서서 미는 것도 그리 나쁘진 않고, 목욕탕 의자가 내 소유는 아니니 가져가서 쓸 수도 있지. 이후에 탕 속에서 미순 씨와 말문도 트고 독하단 칭찬도 받았다. 내 옆자리의 그녀인 줄도 모르고.


냉온욕을 마치고 마지막 샤워를 하러 자리에 돌아갔을 때 미순 씨는 나에게 딱 걸렸다. 냉온욕을 권하고 칭찬도 한 그녀가 마침 그때 내 자리의 작은 바가지마저 (심지어 그 안에 든 내 주황색 이태리타월까지 빼 두며) 가져가려는 게 아닌가! 때 밀 땐 옆에서 목소리만 들어서 얼굴을 제대로 못 봤는데, 미순 씨가 그녀였다니. 눈앞에서 내 바가지를 채가는 중인 그녀를 포착하자 입이 열렸다. “어! 그거 제 바가지인데요?” 미소를 잃지 않았으나 매우 또박또박한 어투로 말했다. 약간 놀란 미순 씨는 “아유~ 내 친구 건 줄 알았어요~ 아까 옆에서 같이 씻었는데 내 거를 가져간 줄 알고~ 호호호”라며 자리를 떴다. 얼떨결에 그녀를 웃는 얼굴로 배웅하고 헛웃음이 나왔다. ‘아니, 같이 씻던 그 친구가 내 자리가 아니고 미순 씨 오른쪽 자리에 앉았던 걸 벌써 까먹었다고?’ 의자로도 부족해 내 이태리타월까지 떡하니 옆에 빼두고는 바가지까지 채가려다 걸려 놓고 전혀 그럴듯하지 않은 변명을 여유 있게 치는 자가 미순 씨라니. 참 나.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집 가까운 목욕탕에 걸어 다니던 때가 있었다. 동거인과 함께 살기 시작한 망원동에서 주말 오후면 슬리퍼를 끌고 금강산사우나를 다니던 2~3년 전에. 아담한 동네 목욕탕에서 숨 갑갑함과 엄마에게 때밀림 당하는 고통을 견디고 새 몸으로 맛있는 음료 한 잔의 보상을 즐기던 어릴 때부터 시작된 역사가 그렇게 이어졌었다. 인당 8천 원에 따로 또 같이 즐기는 상쾌한 데이트 후엔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 물거나 동네 국밥집에서 에너지를 보충하는 데이트를 또 즐겼다. 주말에 한 사람당 1~1만 5천 원 정도면 충분한 이 일상의 놀이가 당연한 줄로 알았는데, 금강산 사우나는 폐업했다. 낡았어도 정갈한 이곳을 코로나 장기화 국면에도 이용하면서 사람이 적은 게 좋고 또 불안했는데, 결국 올 것이 온 셈이다. 망원동에 사는 전 이웃주민이 폐업 소식을 전해주었다. (7년 만에 숲속한방랜드로 향한 이유이기도 하다.)


지금 우리 동네엔 동네 목욕탕이랄 곳이 없다. 목욕탕이었던 건물이 팝업 전시장으로 쓰일 뿐. 이 건물의 이름이 원래 중앙탕이었던 사실을 포털이 제공하는 과거 지도 사진 서비스로도 확인했다. 1969년 문을 연 북촌 최초의 목욕탕이자 동네 랜드마크였다는 중앙탕. 시청률 44%를 찍던 국민 드라마 〈솔약국집 아들들〉에서 백일섭과 네 아들이 목욕하고 나오는 장면에도 나왔단다. 그 세월 이 탕에서 몸을 데우던 이 얼마나 많았겠느냐만, 일 평균 손님이 30~40명으로 줄어 경영난으로 반백 년을 다 못 채우고 2014년 폐업했단다. 2000년대 들어 생겨 난 대형 대중탕으로 목욕탕 이용 문화가 바뀐 것 못잖게 관광지로 변모하는 동네 젠트리피케이션 등쌀을 피할 수 없던 게 아닐까. 인구도 빠지고 생활 시설도 빠지고.


오래된 동네가 상업 시설로 개발되거나 대규모 아파트 단지로 변하는 사이 부동산 가격이 많이 올랐다. 욕조가 없는 집보다 있는 집들이 빠르게 증가했으니 목욕 문화가 변했을 법도 하다. 목욕탕은 사라진다. 협소하고 오래된 동네 목욕탕은 계속 없어지는 추세였다. 오래된 목욕탕의 장면들을 더는 볼 수 없는 게 아쉬워 그 사진을 담은 《서울의 목욕탕》(박현성 사진, 6699press)이 코로나 이전인 2018년 여름 출판되는 일도 있었다. 코로나로 더 많은 목욕탕이 사라졌다. 코로나 타격에 공공요금 상승까지 연달아 겹치며 목욕탕이 전국적으로 급격히 줄었다고 한다. 목욕탕 이용자라면 피부로 느꼈을 이 이슈는 이제 뉴스거리다.


목욕탕을 좋아하고 거기서 이름 모르는 이들, 생활 정보나 이야기 통이었던 동네 아주머니, 다 벗은 사람들 속에서 속옷을 차려입고 일하던 세신사, 우연히 만난 학교 친구들과 그 엄마(심지어 남자애까지!) 등등을 보며 자란 나는 생각한다. 동네 목욕탕에서 자주 얼굴 마주치는 이웃이 미순 씨나 성철 씨였다면 우린 어떤 사이가 됐을까. 만약 우리가 목욕 친구였다면 나는 속으로만 품은 말을 성철 씨에게 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주고받다 서로의 편견이나 판단 체계에 균열을 만들 수 있었을까? 미순 씨는 내 의자와 목욕 바구니를 말하고 썼을 수도, 목욕 바구니가 매진일 때 목욕탕에 온 나를 보면 자기 목욕 바구니를 건넸을지도 모른다.

내 경험, 내 인맥, 내 실력, 내 가치관만을 기준으로 편중된 관계망, 그렇게 몸과 마음이 의심의 여지없이 더 안락하기만 한 공간에 머무르는 게 성취처럼 여겨지는 사회의 분위기가 왠지 무섭다. (최근엔 독립된 공간에서 혼자 목욕하는 ‘1인 세신숍이 떠오르고 있다.) 정부나 지자체에서 공중목욕탕과 함께 사라지는 것들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면 좋겠다. 코로나 이후 원정 목욕을 가는 지역 주민의 불편을 덜기 위해 공공 목욕탕을 만드는 어느 기초지자체의 계획이 잘 됐으면 좋겠다. 발가벗고도 부끄럼 없이 타인을 마주치며 사람을 보고 알아갈 공간이 목욕탕 말고 또 있을까.


<복음과상황> 공간 & 공감에 연재하는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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