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가장 무력함을 느끼는 일이 뭘까. 죽음이라고 생각한다. 감각해본 적 없는 감각, 눈앞에 성큼 다가온 죽음 앞에 놓이면 비로소 도망치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진실로 느낄 것이다. 무력감, 그 감각이 일상화되는 시공간이 곧 전쟁일 거라고 미루어 짐작한다.
인적 드문 길 위를 달리는 9-10인승 밴이 멈추고 문이 열린다. 몸으로 운반할 짐만 챙긴 사람들이 빈 좌석을 채우기 시작한다. 자동차는 두세 번 다른 목적지를 경유하며 승객을 다 태웠는데, 차는 목적지로 향하는 길에 종종 멈춰 선다. 파손된 도로, 끊어진 다리 때문이다. 지뢰 무더기가 앞을 막아 서기도 한다. 밟지 않아 천만다행이다. 되돌아갈 길을 알아보는 운전자의 통화 소리에 집중하지 않을 수 없는 승객들은 새 경로로 차가 달리면 잠시 시선의 자유를 되찾아 창밖의 풍경을 본다. 고철 덩어리, 마치 바리케이드처럼 도로를 막고 선 차체들을 지나쳐 간다. 멀쩡한 창문 하나 없이 박살나 주저앉았다. 뼈대가 다 드러나고 토막 난 콘크리트 건물들도 스쳐 간다. 아침부터 달리던 차는 밤이 되어도 달리고, 검문소의 총 든 군인들이 낮에도 밤에도 차를 멈춰 세워 묻는다.
“어디로?"
밴은 우크라이나를 벗어나 폴란드 국경으로 향하는 길이다. 차에 탑승하고 내리고, 또 탑승하고 내리는 사람들은 집으로부터 탈출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익숙한 국경 안, 집으로 돌아가던 일상을 살면서 국경 같은 걸 신경 썼을 리 없다. 국경은 자동차처럼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는 물건도 아니니까. 전쟁이 시작되고 모든 게 급박하게 뒤바뀌었다. 집은 떠나야 할 곳이고, 국경은 뚜렷해졌다.
밴에 오르기 전 한 여성은 남편과 다음을 기약할 수 없는 포옹을 했다. 다시 만나자는 불안한 약속을 하면서. 나라면 심장이 터질 것 같을 텐데, 여자에겐 오롯이 혼자 돌봐야 할 아이가 있다. 집에 남기로 한 늙은 부모와 마지막일지 모를 인사를 나눈 또 다른 여성과 아기, 이쪽도 아빠는 안 보인다. 정부는 성인 남성에 전시 총동원령을 내렸다. 파트너 없는 또 한 명의 젊은 임신부, 그녀는 폰 배터리가 줄어드는 것을 걱정한다. 나와 같은 기종의 아이폰이다.
아이러니하다. 세계를 잇는 최첨단 문명을 사는 오늘도 계속 새로운 전쟁이 터진다. 누운 채 구급차가 아닌 밴으로 병원에서부터 이송되는 이주민 학생은 아직 치료 중인 상태다. 부모와 함께 차에 탄 어린 소녀는 비상 연락망이 적힌 메모지를 꺼내 보여준다. 여태껏 살던 집을 탈출해 알 수 없는 미래로 달리는 차에서 어느 날 우연히 처음 만난 아이들은 서로 웃고 떠든다. 어린이들은 역시 누구보다 현재에 충실한 인류다. 그러나 창밖으로 반짝이는 바다를 보고 한껏 들뜨던 현재적 인류는 곧 엄마에게 묻는다.
“전쟁이 끝나면 집에 돌아오는 거야. 그렇지 엄마?”
어린이라는 인류의 보증 수표는 곧 엄마인가 보다.
“당연하지. 엄마가 약속해.”
딸에게 약속하는 그녀의 표정은 도무지, 읽히지 않는다. 어떤 감정들의 조합인지 정확히 모르겠다. 전쟁이 다 뭔가.
문득 작년 5월 말 아침의 기억을 떠올린다. 드물게 일찍이 벌떡 일어났던 날 방 안으로 침범한 낯설고도 뚜렷한 사이렌 소리에 깼는데, 갑자기 대피하라면서 무슨 일인지 어디로 대피할지 알려주지 않는 ‘공포의 방송’이었다. 스마트기계 음도 아닌 이 낯선 경보음은 무슨 일 때문인지 알아보려는데 네이버 서비스는 먹통이었다. 나는 “이게 무슨 일이야”라며 소리 내 울었다. 그런 때 울음이 터지는 줄은 그날 알았다.
사이렌 자체가 오발령이므로 내 울음은 정부 전달 체계의 엉망 탓에 일어난 어느 아침의 웃긴 에피소드가 됐지만, 그런 무력감은 처음이었다. 무서움을 동반하는 무력감. 그 울음에 동거인도 나도 놀랐다. 언제 전쟁이 터진 들 이상하지 않을 곳에 살면서도 내가 집을 두고 떠날 수 있다고 생각해본 적은 정작 없었나 보다.
전쟁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최근 뉴스를 보고 다시 자동차 속의 사람들이 생각났다. 전쟁이 3년 차로 접어든 지금, 우크라이나 당국이 발표한 군 사망자 수는 3만 1천 명. 공식 발표 없는 러시아 군도 국가 명령으로 전투에 투입돼 마찬가지로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지난해 8월 유엔 발표에 따르면, 민간이 사망자는 1만 명에 달한다.
영화 속에서 딸을 차에 태워 보내며 집에 남았던 노부모는 딸과 연락이 닿았을까? 먼저 피난 간 마누라가 전화로 당부한 다리미를 짐에 넣으며 집 이야기를 하던 할아버지는 바로 할머니를 만났을까? 차 안에서 남편과 짐 싸던 이야기를 하다 하필 두고 온 소 이야기에 목이 메 말 못 잇던 중년 여성의 소는 애초에 굶어 죽었을 것이다. 주인과 함께 탔던 고양이는 그만 케이지 안에서 소변을 봐 버렸었다. 동승자 중에 이 전쟁을 이야기하며 고양이 소변 냄새를 떠올리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 <복음과상황> 공간 & 공감에 연재하는 이야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