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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나박 Apr 16. 2021

내 삶을 살아내는 일

내가 살아가는 건 나를 살린 사람 덕분이라는 걸!

문득 글을 쓰고 싶어졌다.

나는 국어국문학과 문헌정보학을 전공했고, 시를 쓰는 것이 좋아서 국어국문학과를 선택했다. 하지만 대학교에 들어가서 접한 현대시는 어렵고 난해하기만 했고, 그렇게 시 쓰기를 내려놓았다. 그런데 수필이 내 눈에 들어왔다. 수필을 쓰는 게 좋았다. '현대수필의 이해'라는 수업을 들으며 일주일에 한 편씩 A4용지 1~2장 분량으로 글을 써가는게 썩 좋았다.


 그리고 지금 나는 5살 아들을 4년간 가정보육하고나서 이제 막 유치원에 보낸 육아맘이다. 책을 읽고 싶어지거나 글을 쓰고 싶어진다는 건 내게 나의 존재를 확인하고 싶다는 의미이다. 요즘 미치도록 글이 쓰고 싶어졌다. 왜냐하면 나를 찾아가고 있는 중이니까!

 4년간 아이를 가정보육한 건.. 3년까지는 내 의지! 나머지 1년은 상황이 그렇게 만들었다. 코로나도 있었지만, 그 보다도 아들이 28개월 됐을때 1달 반 정도 다녔던 어린이집에서의 정서학대.

아이에게 27개월까지 모유수유를 했고, 아이와 애착형성이 잘 되어있었던 나는 아이가 어린이집에 다닌지 3주 됐을 무렵부터 우리 아이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한달 반 된 시점에 복직한 회사에 출근을 미루고 어린이집 현관 앞에 서있었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끌림이었다. 아이와 나를 연결하고 있던 탯줄처럼 무언가 강한 끌림. 보육교사가 우리 아이에게 크게 소리 지르는 것을 들었고 그 후에 원장님이 크고 단호한 목소리로 앉아! 서! 이런 소리가 들렸다. 피가 거꾸로 솟았지만 최대한 침착하게 그 상황을 맞이했다. 바로 쳐들어가서 따졌냐고? 아니 기다렸다가 벨을 누르고 천천히 들어가서 최대한 태연한 척했다.


 이 일을 계기로 우리의 삶은 180도 달라졌다. 물론 좋은 의미로! 다만 좋아지기까지는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했다. 아이를 원래 우리 아이로 되돌리기까지 1년 반이 걸렸다. 아이는 불안증세가 무척 심했고 주눅이 잘 들고 의기소침해했다. -그런 아이가 절대 아닌데-

그래서 아이와 매일 놀러다녔다. 아이의 마음을 보듬어주려.

신생아 때도 그랬지만, 그때보다 더 물고 빨고 안아주었다. 엄마가 너를 사랑하고 사랑하고, 너는 소중한 존재라는 걸 다시 일깨워주고 싶었다.

내 사랑 아들! 누가 너를 이렇게 아프게 했니.. 가슴이 무너져 내렸지만 엄마는 그럴 시간이 없었다.


아이에게 내 모든 걸 쏟아붓고 나니 그 사건이 있고 1년 정도 지난 시점에 내가 아팠다. 아이가 괜찮아지니 내가 괜찮지 않았다. 그냥 뛰어내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건 아니다 싶어 다음날 아침 정신과에 전화해 진료 예약을 했고,  항우울제, 수면제를 처방받아 왔다. 길고 긴 터널을 지나는 것 같았다. 끝이 보이지 않는.

그런데 6개월 만에 나는 그 길고 긴 터널을 빠져 나왔다.

나의 오랜 친구 -대학교 오리엔테이션 때 만난 내 20년 지기- 덕분이었다.

약을 먹고 상담을 받아도 죽을 것 같던 그 때, 친구의 전화에 그동안의 일을 다 털어놓았고 매번 통화하면서도 내가 그 정도로 힘든지 몰랐다던 친구는 미안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선물을 보냈는데, 빨간 색종이로 접은 하트를 펼치자 글이 적혀있었다. 편지였다. 읽어내려가며 눈물이 핑 돌았다. 그리고 파우치 안에 '다영아, 너의 오늘이 별처럼 빛나길 바래'라는 구절을 읽고 울었다. 친구의 그 문장이 나를 울렸고, 나는 그렇게 치유됐다. 그 친구의 말이 나를 치유했다.

 요즘은 이렇게 말한다. 네가 나 살린거야!내가 너에게 평생 보답할게! 보답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나는 살아났고 지금 하루하루 살아내고 있다. 누군가를 살리는 일. 살리는 말.-단 한마디, 내게 쏙 꽂히는 그 한마디_ 참 어렵고도 생각보다 단순한 그 일. 

상대방에게 조금만 마음을 기울이면 할 수 있는 일!

친구는 너가 나 살린거야 라는 말에 처음엔 갸우뚱했지만, 난 다시 말한다. 네가 나 살렸어!


 다시 살게 된 나는 정말 오롯이 나로 살고 있다. 꿈꾸기만 했던 뮤지컬 무대에 서는 일. 뮤지컬 동호회에 가입해서 뮤지컬 넘버를 부르며 행복해하고 있다. 면허학원도 등록해서 지금 기능시험까지 합격한 상태. 그리고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아이를 4년간 가정보육하며 오히려 나를 더 들여다보게 되었다. 자연스레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나는 진짜 누구인지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고맙다 아들!

그리고 내가 35살이 된 지금, -요즘 100세 시대니까 내 삶에 3분의 1이 지났고 3분의 2 지점을 시작하는 지금- 난 꿈을 꾸고 있다. 그리고 하나씩 이뤄나가고 있다.

엄마이기 전에 '나'이고, 나이기 전에 '엄마'인 박다영.

으로 살아가고 있다.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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