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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마이너 Aug 13. 2020

조금 다른 우리의 신혼집 이야기

서촌에서 더 깊숙한 서촌으로...

<내 법대로 산다 - 여름 편>  






좌충우돌 신혼집 구하기 여정


백수에게도 여자친구가 있었다. 그것도 올해말 결혼을 앞둔. 여자친구는 연애 초반부터, 잘 다니던 로펌을 퇴사하고 백수가 될 거라는 내 충격적인 계획을 이해해주고 변함없이 지지해준 고마운 사람이다. 백수기간 우리는 결혼준비를 해왔고 그 과정에서 신혼집도 미리 알아보게 되었다.  


신혼집을 구하면서 우여곡절이 많았다. 일단 서울에서 몇 군데 살고 싶은 동네를 골라서 부동산 탐방을 다녔고, 백수가 된 이상 그만한 여력은 안 돼 매매는 엄두를 못내고 전세 위주로 알아봤다. 한번은 사진으로 보면 내부 인테리어가 엄청 잘 꾸며져 있는 신축빌라를 보러 갔는데, 차로로 거의 45도 경사의 언덕을 넘어... 주변에는 허물어져 가는 판자집이 널려있는 동네에... 덩그러니 생뚱맞은 집이 있었다. 우리는 중개사분이 집에 대해 열심히 설명할 동안 죄송하게도 둘러보는 척만 하고 허겁지겁 거기서 급하게 탈출했다(웃음).


또 강남쪽도 한번 둘러보자는 여자친구의 말에 강남쪽 부동산도 돌아다녀봤는데, 우리가 생각한 금액대로는 다 "강남에 이런 데가!" 할 정도로 뜨악 하는 집들이었다(강남에 10년 넘게 살았음에도). 동행한 중개사분도 같은 금액대에 직장 등 꼭 강남에 살아야 할 이유가 없다면 강북으로 가는 게 맞다고 현실적인 조언을 해주셨다.


그렇게 돌고돌아 결국 우리동네 서촌이었다. 아래 글에서와 같이 지금 나 혼자 살고 있으면서는 너무 살기 좋고 사랑스러운 동네라고 생각하지만(※ 사대문부심 주의), 왜인지 여기서 여자친구와 결혼해서 사는 모습은 상상해보지 못했다. 결혼생활을 생각하면 뭔가 깔끔하게 계획된 아파트 단지에서의 생활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나도 어릴 적부터 아파트에서만 살아온 영락없는 '아파트족'인가 보다.



아무튼 그러다 문득 "여기서는 왜 안 돼?"란 생각이 문득 들었다. 나는 이미 이 동네와 사랑에 빠졌고(?), 사실 처음에 부암동에 방을 구하려다 실패한 후 서촌이란 동네를 알려준 것도 여자친구였다(당시 난 서촌이 어디인지도 잘 몰랐다. 서쪽에 있는 동네인가...). 그래서 우리는 진짜로 서촌에서 살아볼까 하며 이 동네의 매물들을 적극적으로 알아보기로 했고 그러다 지금의 신혼집을 발견하게 됐다.


그러나 아직 우리는 결혼이 몇달 한참 남아있던 상황인 한편, 그 집은 전 세입자가 만기보다 더 일찍 집을 빼야해서 다음 세입자를 빨리 구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여자친구는 그 집을 보고 난 후 그만한 집을 우리가 또 구할 수 있을까 하며 아쉬워했다. 그래서 나는 그 집을 꼭 겟하고자 일단 계약을 하고 나 혼자 먼저 들어가 살고 있기로 결단을 내렸다. 그렇게 우리에게 너무도 빨리 신혼집이 생긴 것이다.   




우리의 러블리한 신혼집


사람들에게 신혼집을 구했다고 하면 물어보는 레파토리는 다음과 같다. 첫번째 질문은  "신혼집은 어디야?" 이고 그럼  "서촌"이라고 답한다(서촌을 잘 모를 경우에는 좀더 상세한 설명이 들어간다. ※ 다시 한번 사대문부심 주의). 그 다음에 이어지는 질문은 "아파트야, 빌라야?"인데, 우리의 신혼집은 빌라라 "빌라"라고 답하면 왠지 모르게 걱정스런 표정이 느껴진다. 그러나 우리는 괜찮다. 아니 사실 우리는 우리의 신혼집이 너무 맘에 든다!


이 집을 보고 한 눈에 반했던 점은 바로 '뷰'였다. 나는 원래 뷰가 탁 트인 곳(그것도 산이 보이는)을 선호하는데 이 집은 다방향적으로 뷰가 압권이었다. 거실에서는 서촌 아래와 멀리 청와대, 북악산까지 보이는 개방감 있는 전망에, 거실 밖에는 조그만 테라스가 있는데 거기서는 바로 앞에 딱! 인왕산이 보인다. 그리고 안방은 어떤가. 안방 창문을 열면 한 폭의 그림처럼 숲이 꽉 차있다. 가히 뷰 맛집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곳에서는 잘 안 써지는 글도 일필휘지로 써질 것만 같은 기분이다.  

 

순서대로 거실, 테라스, 안방 뷰. 우리의 신혼집은 북악산과 인왕산이 동시에 보이는 그야말로 '더블산세권'이다!


그치만 뷰가 좋은 고지대인 만큼 원래 혼자 살던 서촌 집에서 더 깊숙한 서촌으로 들어와서 역에서는 좀 먼 거리이다. 그러나 바로 집앞까지 마을버스가 들어오니 문제없다. 문제는 건물에 엘리베이터가 없다는 것인데... 그건 그 덕에 매일 계단운동을 하는 셈 치자. 물론 이밖에도 아직 채 경험하지 못한 불편한 점들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옛날에는 다들 단칸방에서 신혼을 시작했듯이, 불편함을 조금 너그럽게 감수하고 가진 것에 만족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다면 우리는 여기서 누구보다 풍요로운 신혼생활을 누릴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집'에 대해 드는 생각들


'집'이란 무엇일까? 그전까지는 학교 기숙사나 직장 근처 월세방에 살아서인지 별로 그런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결혼할 때가 되니 신혼집을 매매할지, 전세로 살지 등의 선택지 중에서 골라야 했고 본격적으로 집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무엇을 하든지 미리 많이 알아보는 성격인 나는 부동산의 세계를 탐구하기 시작했다.


사실 예전에는 '집을 산다는 것'에 거부감이 있었다. 몇 억, 몇십 억이 넘는 돈으로 매수할 정도로 "와 저기서 살고 싶다!" 이런 집이 살면서 한번도 없었다. 강남 한강뷰의 초호화 아파트도 (투자 목적이 아니라 실거주 목적이라면) 그 돈으로 매수하는 게 아직도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물론 살기는 편리하고 쾌적하겠지만, 나에게는 똑같은 느낌의 동네, 똑같은 모양의 아파트로밖에 안 보여서 재밌을 것 같지 않다. 이건 뭐든 싫증이 빨리 나고(사람 제외, ※ 여자친구 주의), 돌아다니기 좋아하는 노마드적인 내 성격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집은 '사는 것'이 아니라 '사는 곳'이다.

...라는 프로파간다에 완전 동의하는 편은 아니지만, 오히려 이는 허울뿐인 구호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집값은 계속 변동하므로 도덕적 관점에서 뭐라하든지 간에 어쨌든 부동산은 결국 투자(또는 투기)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고 본다. 친구와 부동산에 대해 얘기하다가 친구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집을 매매하는 것도, 전세로 사는 것도 어떻게 보면 어느 쪽이든 다 투자라고. 집을 사는 사람은 집값이 오르거나 적어도 유지될 거라는 데에 베팅을 하는 거고, 집을 사지 않고 전세로 사는 사람은 집값이 내릴 거라는 데에 베팅을 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그전까지는 한번도 해보지 못했던 생각인데, 포커를 좋아하는 나에게는 이 베팅이란 설명이 확 와닿는 말이었다.


그치만 그래도 집값이란 요소에 사람들은 너무 휘둘리는 것 같다. 집값 때문에 사람들은 울고 웃는다. 어떤 동네는 집값이 올라서 기뻐하고 어떤 동네는 집값이 내려가서 슬퍼하고, 그렇게 희비가 갈린다. 집값이 오를 만한 동네를 찾아 집을 사고, 입주민들끼리 집값을 올리기 위해 단체로 의기투합하며, 집값이 오르더라도 더 오를까봐 다른 데로 이사를 못간다. 재건축을 바라보고 낡고 허름한 아파트에 들어가서 몇년을 버티다가 재건축이 된 후 비싸게 파는 것을 노리는 '몸테크'라는 재테크 전략도 있단다. 사람들은 자신의 집값이 오르는 게 인생의 제1과제인 것처럼 군다(물론 그걸로 향후 몇 억, 몇십 억이 달라지긴 하다만...).



그러나 나는 내 인생에서 집값이란 변수가 그렇게 크게 작용하질 않기를 바란다. 나는 '집'에 투자하기 보다는 '내 시간과 경험'에 투자하고 싶다. 돈은 나중에도 벌 수 있지만 시간과 경험은 돌아오지 않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돈을 꼭 집값으로 벌어야 하나? 나는 내 일로 다른 사람들에게 가치를 더함에 따라 돈을 벌고 싶다.


그래서 결국 우리는 신혼집으로, 집값이 오를만한 서울 신도시의 아파트를 찾아 매매하기보다는 그냥 서촌의 빌라 전세로 들어가기로 했다. 우리의 신혼은 지금뿐이다. 신혼을 우리 둘다 사랑하는 동네, 서촌에서 보내는 것은 다른 집을 사서 집값이 오른다 해도 대체불가능한 경험일 것이다. 가끔 집을 산 친구들의 집값이 올랐다는 소식이 들리면 살짝 배가 아프긴 할테지만 말이다(웃음).






김마이너가 사는 법 제n조 : '집' 보다는 '내 시간과 경험'에 투자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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