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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마이너 Nov 04. 2020

내가 공유오피스에서 법률사무소를  개업한 이유

이왕 이렇게 된거 일도 한번 내 법대로 해보자!

<내 법대로 산다> - 여름 편






지난 글에서 법률사무소를 개업했다는 내용을 간략히 언급했지만 앞으로 그 얘기를 자세하게 풀어보려고 한다. 단순히 변호사라는 특수한 직종에 한정된 얘기가 아니라 자신의 업을 주체적으로 영위해가는 초보 인디펜던트 워커의 고군분투기 정도로 재밌게 읽어주시면 좋을 것 같다. 



언젠가 나만의 법률사무소를 개업하고 싶다는 꿈 


원래부터 퇴사 후 개업을 계획했던 것은 아니었다. 회사를 다니면서 간혹 조직생활에 염증을 느낄 때마다 '회사를 나와 개업을 하면 어떨까?'하고 잠시 생각한 적은 있지만, 막상 '혼자서 개업을 하면 수임을 할 수 있을까? 영업을 뛰어야 하나? 사무실 기타 비용을 어떻게 감당하지?' 이런 끊임없는 걱정들과 주변에 용기있게 개업해서 손가락만 빨고 있는 사례들을 보면서 지레 그런 생각을 그만두곤 했었다. 로펌에서 퇴사할 때까지만 해도 개업은 변호사로서 나중에 언젠가 기회가 되면 한번 해보지 하는 막연한 옵션에 불과했다. 


그런 막연한 생각으로 막연한 백수생활을 즐기고 있던 와중, 그런 내가 걱정되었는지 한 법조인 친구가 자기가 아는 형이 얼마전 로펌에서 퇴사해서 개업을 했는데 같이 동업할 사람을 찾는다고 한번 만나보지 않겠냐고 추천해주었다. 백수생활에 몰입했던터라 당장 동업할 생각은 전혀 없었지만 친구의 강력한 추천으로 별 기대감 없이 그 변호사님을 만나보게 되었다.


실제로 만나보니 기대보다도 더 생각이 굉장히 열려있고 진취적인 분이셨다. 우리는 짧은 시간에 법조인으로서의 삶과 포부, 개업변호사의 생활 등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얘기를 나누었고, 생각이 너무 잘 통해서 서로 법조계에 이렇게 말이 잘 통하는 사람은 처음 봤다고 말하기까지 했다. 그 변호사님은 내가 언젠가 개업을 해야지 하고 막연하게 생각했던 것을 현실 속에서 실행하고 또 차근차근 이뤄내고 있는 사람이었다. 두 시간 정도 얘기를 나누고 같이 동업을 하지 않겠냐는 의사를 전달받았으나 좀더 생각이 필요했다. 


다른 변호사님과 동업을 해서 좋은 점은 같이 일하면서 배울 점도 많고 생각이 잘 통하는 사람들과 함께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며 잘 해나갈 수 있을 것 같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변호사님이 먼저 어느정도 기반을 다져놨기 때문에 나는 시행착오를 겪지 않고 편하게 업무를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치만 더 고민해본 결과 아무리 생각이 잘 통한다 해도 생각이 같은 수는 없을터 내 스스로 시행착오를 겪더라도 내 방식대로 시작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더 컸다. 그래서 아쉽지만 제안을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비록 같이 하진 못했지만 그 변호사님 덕분에 혼자 맨바닥에서도 개업을 충분히 해나갈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게 되었고 지난글에서 쓴 것처럼 나는 결국 개업을 결심했다.  




이왕 이렇게 된거 공유오피스로 간다!


혼자서 개업을 결심한 후 내가 바라는 법률사무소의 모습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로펌에서 일하면서 내가 생각하기에 개인적으로 비효율적이거나 이렇게 바꿨으면 하는 점들이 많았지만 이미 정해진 규칙 속에 순응하여 행동해야 하는 점이 아쉬웠다. 그래서 이왕 혼자 법률사무소를 개업하는 이상 내가 이전부터 생각해왔던 점들을 모두 반영해서 처음서부터 내 방식대로 법률사무소를 '재구성'하고 싶었다. 


그 첫번째 대상은 뭐니뭐니해도 사무실이었다. 사무실은 고객이 회의하러 올 때 그 법률사무소가 괜찮은 곳인지 판단하는 간판이자 동시에 가장 고정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대상이다. 그래서 법률사무소들은 그런 이미지 때문에라도 앞다투어 더 고급스러운 사무실을 갖추려고 한다. 내가 있던 로펌에서도 한번 인테리어 공사를 크게 했는데 한 선배가 그 인테리어 비용만 몇십억이라고 하면서 너희들이 일해서 메꿔야 한다고 우스갯소리를 한 적이 있다. 


물론 큰 로펌의 경우에는 그러한 비용을 기꺼이 감당할 수 있겠지만, 조그만 법률사무소의 경우에는 그 비용을 감당하기가 어려운 게 현실이다. 변호사 2만명 시대에 한달에 한두건도 수임하지 못하는 변호사가 태반이라고 한다. 사무실 비용은 변호사 자신에게도 부담이 되고 결국 더 많은 사건을 받으면서도 업무 퀄리티가 떨어져서 고객의 손해로도 이어진다고 생각한다. 고객에게 좋은 이미지를 주려고 했던 것이지만 결국 고객에게 손해가 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나는 공유오피스에서 법률사무소를 개업하기로 했다. 

일반 사무실 임대는 한달에 기본 몇백만원이지만 공유오피스에서는 몇십만원 수준에서 사무실을 얻을 수 있다. 나는 심지어 공유오피스 내에서도 각자 조그만 방이 주어지는 프라이빗 오피스가 아니라 공용라운지에서 자유롭게 앉자 일을 할 수 있는 핫데스크를 이용 중이라 더 적은 금액으로 이용하고 있다. 업무를 하는 데 열악하지 않냐고 할 수 있지만, 중역의자와 변호사 명패 등 전통적인 변호사 사무실의 간지?만 빼고 일할 수 있는 여건은 모두 다 갖춰져 있다. 전문업체에서 관리해주는 쾌적한 건물환경, 복합기 등 각종 사무기기(각자 계정으로 비밀화되어 있어 보안도 걱정없다), 고객회의를 할 수 있는 많은 회의실, 완벽히 방음이 되는 폰부스 등. 어차피 재판이나 조사 참여 등 외부일정이 많기 때문에 굳이 고정된 방이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모든 자료는 디지털화하여 노트북에 저장하기 때문에 노트북 하나면 어디에서든 일할 준비가 되어 있고 바로 그곳이 사무실이 된다. 


이처럼 공유오피스에서 개업하여 고정비용을 대폭 줄일 수 있었고 그 결과 더 합리적인 수임료로 고객에게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사무실이 공유오피스에 있다고 하면 고객들에게 신뢰도가 떨어지지 않을까 하는 주위의 우려섞인 목소리가 있기도 했지만, 나는 노브랜드 현상처럼 이제 소비자들도 이미지보다는 실질을 중요시하는 방향으로 바뀌어가고 있다고 믿는다. 


게다가 지금은 코로나 때문에 활성화되고 있진 않지만, 공유오피스 내 다른 이용자들과 네트워킹을 할 수 있는 이벤트도 많아 다양한 업계에 대한 이해를 증진시키고 수임의 기회도 늘어날 것으로 기대한다. 전통적인 관점에서는 좀 이상하게 보이고 일반적인 방식은 아니지만 나처럼 미세한 영업을 지향하는 초보 개업변호사에게는 공유오피스가 여러모로 좋은 대안이라고 생각한다. 


좌) 전통적인 변호사 사무실, 우) 내 사무실




미스터 인디펜던트


우연히 유튜브에서 미국의 전설적인 코미디언 크리스락의 스탠드업 코미디 일부를 본 적이 있다. ‘Career vs Job’이란 제목의 짧은 영상이었는데 일(Job)과 커리어(Career)의 차이점을 되게 재미있게 표현하고 있었다. 그저 일(Job)을 하는 사람들은 하루에 시간이 느리게 가기 때문에 일하는 동안 자주 시계를 보며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도 "아 이거밖에 안 지났어?” 하는 반면, 커리어(Career)를 쌓는 사람들은 자기의 프로젝트를 수행하느라 하루에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에 일하다가 시계를 보며 “머야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어?”라고 한다는 것이다. 가끔 코미디는 어떤 명연설보다도 핵심을 정확히 찝어내는 것 같다.  


진짜 웃기니 시청을 추천드립니다ㅋㅋ


비참하게도 로펌에서 일할 때 딱 내가 그랬다. 꾸역꾸역 오늘 일이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 언능 이 정신 없는 시기를 지나 좀 일이 적어지는 쿨타임이 돌아왔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밖에 없었다. 퇴사를 결심한 후에는 매일 매일 퇴사일까지 D-n일을 샜다. 그치만 개업을 한 지금은 뭐 별거 안한 거 같은데 일하는 시간이 참 빨리 간다. 일을 한 것 같지 않게 가뿐하다. 심지어 내일 일할 것이 기다려지기까지 한다. 


내 마음에 왜 이런 차이가 생겼는지 생각해 보았다. 로펌에서 했던 일과 지금 하는 일은 내용만 보면 그리 차이가 없다. 똑같은 변호사로서의 업무이다. 그러나 중요한 차이는 "그 일을 내 방식대로 하고 있느냐"에 있는  것 같다. 로펌에서는 오로지 내 방식대로 일을 하지 못하고 위에서 시키는대로, 회사에서 정해진 대로 일을 했던 반면, 지금은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순전히 내가 고안한 내 방식대로 일하고 있다. 유독 요즘 어릴적 많이 들었던 어느 힙합노래의 가사가 떠오른다.  


i`m fienin for a good life yeah i`m a DT fan 
음악이 내 직업이지만 난 티비엔 
잘 안 나오는 랩퍼 i`m an independent 
musician and i`m proud of it i feel incredible 
난 어설프게 뛸바엔 멋지게 걸어 
반짝 벌고 떨어질 바엔 난 천천히 벌어 
gutter to the top i made nothin` to somethin` 
부정 할 수 없지 yeah i`ve been workin` and workin` 
적히고 적히는 내 rhyme in my 공책 
studio to venue where all the microphone`s at 
oh yeah i`m everywhere like wifi daytime to night time 
거리부터 인터넷 언제나 늘 타이트한 
스케줄에 쫓겨 시간 가는 줄 몰라도 방이 클럽 안인듯 
i be rockin` all night long
i`m on my own the self made illionaire 
난 내 여자 내 가족땜에 일을 해 
난 일을 배워왔지 어렷을 때부터 
내 배는 내가 직접 잘 벌어서 안 굶겨 
put ur illionaire signs up 
내가 루이 선글라스 쓸 때 니들은 그냥 인상써 
계약서 난 안써 잔소리두 안들어 
100프로 내 얘기와 내 맘대로 난 만들어 
내 musik it`s ill i got diamonds on my grills 
mo real mo skills mo thrills mo deals
- Dok2의 <Mr.Independent 2>란 곡 중에서-


우리들은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일을 하며 보낸다. 시간적 측면이 아니더라도 일은 우리의 삶에서 중요한 요소라 할 수 있다. 이와 동시에 자신의 행위에서 자유와 주체성을 느끼는 것은 개인의 행복에 있어 매우 중요하다. 이것이 개인적인 생활에서뿐만 아니라 직업적인 '일'에 있어서도 '내 법대로' 살아야 하는 이유가 아닐까 한다. 


그렇다고 회사에 있으면 내 법대로 일하지 못하는 거고 개인 사업을 하면 내 법대로 일하는 거라고 일률적으로 말하는 것은 아니다. 회사에서도 누구보다 자기 방식대로 일하고 또 조직을 더 나은 방향으로 바꿔나가는 사람이 있고(이들도 사전적인 정의와는 다르지만 진정한 인디펜던트 워커이다), 개인 사업을 하더라도 자기 방식이 아니라 남들이 하는 방식을 무조건적으로 따라하는 사람도 있다. 중요한 건 어디에 있든 내가 일하는 시간 속에서 자유와 주체성을 느낄 수 있느냐 하는 정신적인 문제가 아닐까. 남밑에서 일하지 못한다고 하는 ENTJ 유형인 나는 회사를 나와 홀로 개업을 함으로써 그러한 자유와 주체성을 느꼈지만 말이다. 


여튼 이렇게 하여 사무실을 공유오피스로 정하는 것으로 시작해서 급기야 강박적으로 여러가지 것들을 뜯어고치게 되는데...(다음 편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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