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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마이너 Nov 21. 2020

3無 변호사

리즈 유나이티드는 리즈 시절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인가?

<내 법대로 산다> - 여름 편





지난 글에서 공유오피스에서 법률사무소를 개업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법률사무소를 개업하는 일반적인 방식은 아니었다. 그런데 사실 그것 말고도 특이한 게 많다. 보통의 법률사무소가 으레 하는 것들을 모조리 없앴다. "단순하게 할 수 있는 것을 복잡하게 하는 것은 사치다"라는 오캄의 말을 가슴깊이 새기고 사는 미니멀리스트로서 일에 있어서도 이런 성향이 발현되나 보다(미니멀리스트로서 로펌에서 지냈던 이야기가 궁금하신 분들은 아래 제 첫 글 참조). 그럼 구체적으로 오캄의 면도날로 어떤 것들을 도려냈는지 살펴보자.




직원도 없고, 홈페이지도 없고, 명함도 없고...


직원


사무실은 없어도 직원은 있어야 한다는 말이 있다. 그렇지만 내가 실제로 직원 없이 혼자 일해보니 막상 귀찮긴 하지만 충분히 가능했다. 민사소송은 전자소송이 지원되어 어차피 노트북에서 클릭만 하면 서면을 제출할 수 있고 형사소송도 아직은 직접 가서 처리해야 할 일들이 많지만 전자소송이 준비 중인 상태라고 한다(내 업무분야가 대부분 형사사건인 건 함정...). 여튼 직원 없이도 혼자서도 얼마든지 처리할 수 있는 일들이 많다.  


한편으로는 직원 없이 일하는 것이 나를 위한 트레이닝이기도 한 것 같다. 로펌에서는 시키는대로 방에 갇혀 서면을 작성하고 재판에 출석하는 일만 했다. 그 외에 (종이)서면을 어떻게 제출하는지, 기록을 어떻게 복사해오는지 등 세세한 절차는 나 대신 송무지원팀과 비서가 알아서 다 해줬다. 그래서 막상 혼자 개업을 하고 사건을 맡아 처음 작성한 서면을 법원에 직접 제출하러 갔을 때 어디에 제출하는지 몰라서 한참 헤매기도 했다. 그때서야 내가 실무절차에 대해 몰라도 너무 모르고 있었구나 하는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그 이후 자질구레한 절차 같은 것도 직접 찾아보고 실제로 부딪히면서 실무절차에 대한 이해도 높아지고 사건을 좀더 전체적이고 유기적으로 처리하는 능력이 향상된 것 같다.


물론 지금보다 사건이 많아지고 바빠지면 내가 직접 그런 일들까지 처리하는 게 비효율적일 수 있다. 그때는 요즘 개업변호사들을 위해 그런 일들을 대신 처리해주는 전문 외주업체가 있다고 하는데 일정 비용을 내고 아웃소싱하면 될 것 같다.


홈페이지

 

대외적인 이미지를 위해 깔끔하고 멋드러진 공식 홈페이지를 갖는 것도 중요하다고 한다. 하지만 나에게는 해당사항이 없는 얘기였다. 그런 홈페이지라 해봤자 어차피 별 정보도 없고 사람들이 자주 찾아올 수 있는 페이지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홈페이지 만드는 비용만 몇백만원이 들고 해서... 그냥 생략했다. 이런 말이 있지 않은가? 간판없는 식당이 진짜 맛집이라고!


다만 주변 지인 소개로 사건을 수임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보니 모르는 사람들에게 알리고 다가갈 수 있는 창구가 필요하긴 했다. 그래서 변호사 블로그를 갓 시작했다. 네이버 블로그의 세계는 브런치와는 쨉도 되지 않을 정도로 복잡했다. 갖가지 상위노출 방법이라든지, 씨랭크, 다이아로직, 평균방문시간, 글에 이미지를 많이 넣어라는 조언 등등... 새로운 세계를 탐구하는 재미는 있었지만 공부를 하면 할 수록 어려웠다. 블로그 생태계 개선을 위해 로직이 바뀌었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마케팅 업체가 쓴 듯한, 영양가 없는 광고글이 상단을 도배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화가 나기도 했다. 고민 끝에 내가 내린 결론은 이렇다. '그냥 사람들이 내 글을 클릭하고 스크롤을 다 내렸을 때 뭐라도 얻어갈 수 있고 몇분의 시간이 아깝지 않은 글을 쓰자. 덤으로 법률상담이나 사건 수임으로 이어지면 땡큐고'. 그래서 처음 브런치를 시작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차곡차곡 글을 쌓아나가고 있다.   


명함 등 자질구레한 것들


사무소를 개업했다고 하니 주위 사람들이 제일 먼저 하는 말이 "명함 팠어? 명함부터 파!"이다. 무슨 일을 시작할 때 명함이 갖는 의미가 큰가 보다. 근데 개인적으로 21세기에 종이 명함은 가당치 않다고 생각한다. 솔직히 말해서 전 회사에서도 고객한테 명함을 받으면 비서에게 전산 시스템에 연락처를 등록하게 하고 버렸다. 그냥 서로 연락처를 교환하면 되지. 종이와 잉크 낭비, 그 사람 명함이 어딨더라? 찼느라 시간 낭비. 이쑤시개로 사용하지 않는 이상 종이 명함은 여러모로 낭비다.


그래서 종이 명함 대신 디지털 명함을 만들기로 했다. 로고 무료 제작 사이트에서 명함에 들어갈 사무소 로고를 뚝딱, 또 디지털 명함 무료 제작 사이트에서 명함을 뚝딱 만들었다. 돈들이지 않고 참 편리한 세상이다.


그 밖에도 자질구레한 것들을 없앴다. 종이 기록(사본이 필요한 서류가 아닌 한 대부분 기록은 전자화해서 컴퓨터에 체계적으로 저장), 아젠다 없는 회의(되도록 전화나 화상 회의로 대체), 갑갑한 양복(고객을 만날 때나 재판을 가지 않는 한 평소에는 아주 후리한 복장으로 일함, 특히 양복에 대한 분노에 관해서는 아래 예전 글 참조) 등등.





똘아이가 되고 싶은 마이너


읽는 사람들은 "좀 유난이네..." 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나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되니까 말이다. 김마이너란 필명에 걸맞게 나는 어렸을 때부터 사람들이 흔히 가는 길과 다르게 좀 특이하게, 똘아이?처럼 자기만의 길을 걸어가고 또 결국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해낸 사람들의 이야기를 좋아했고 또 그들을 동경해왔다. 글에서도 자주 인용하는 일리네어의 힙합을 들을 때나 <월든> 같은 책을 읽을 때, <머니볼>이나 <빅쇼트> 같은 영화를 볼 때면 가슴 안쪽이 나도 몰래 부풀어오른다. 내 안에는 아직도 다수 주류에 대한 반항심과 비주류 똘아이들?에 대한 애정과 동경, 아니면 자부심 비스무리한 게 있는 것 같다.  


갑자기 좀 뜬금포긴 하지만 마르셀로 비엘사 감독이 이끄는 '리즈 유나이티드'라는 영국의 축구팀도 그렇다. 리즈 유나이티드는 우리가 자주 쓰는 '리즈 시절'이라는 말의 유래가 된 바로 그 축구팀이다. 이 축구팀은 과거 프리미어리그 우승, 챔피언스리그 우승 등 화려한 성적을 기록하며 아주 잘 나가는 팀이었는데 재정난으로 한순간에 추락하여 2부 리그, 3부 리그까지 강등되었는데, 이를 빗대어 과거에 영광스러웠던 (지금은 돌아갈 수 없는) 전성기를 '리즈 시절'이라고 표현하는 것이다. 그런데 리즈는 이번 시즌 17년만에 1부 리그인 프리미어리그로 다시 승격하여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관련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울고 웃고 있는 걸 보면 나는 확실히 요즘 지구 건너편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이 축구팀에 빠져있다.


광인 비엘사 감독
리즈 유나이티드 다큐멘터리 Take Us Home. 제목이 심상치 않다.


이런 리즈 유나이티드 돌풍의 핵심에는 감독 비엘사의 전술과 철학이 있다. 비엘사 감독은 현대축구의 광인(狂人)이라고 불릴 정도로 독특한 축구 전술을 구사하는 감독이다. 그는 수비적 축구가 대세인 현대축구에서 특이하게도 최고의 수비는 최고의 공격이라는 철학 하에 아주 공격적인 화끈한 축구를 고집한다. 거기에 체력소모가 큰 일대일 마크와 압박까지. 그래서 리즈는 많은 득점을 하기도 하지만 많은 실점을 하기도 한다. 현재 리즈는 시즌 초반 꽤 괜찮은 성적을 내고 있는데 시즌 후반에는 어떤 성적을 거둘지, 상위권을 기록할지 아니면 다시 강등권으로 추락할지 그 귀추를 다들 주목하고 있다.


리즈 유나이티드는 리즈 시절을 되찾을 수 있을까?

좀 엉뚱하지만 위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나는 리즈 유나이티드가 순위와 상관없이 지금 충분히 리즈 시절을 보내고 있다고 생각한다. 앞서 말했듯 리즈는 지금 다른 어떤 팀보다도 특색있는 자신들만의 축구를 하고 있다. 리즈 팀의 경기를 보고 있노라면 비록 게임에 지더라도 그들의 긍지를 느낄 수 있다. 그것으로 된 거 아닌가? 소설가 박민규가 그토록 예찬했던 만년 꼴찌 삼미 슈퍼스타즈가 그러했던 것처럼 말이다.




나 역시도...


나 역시도 금전적으로만 보면 대형로펌에 다니던 때를 리즈 시절이라고 볼 수도 있다. 평범한 직장인 월급의 2~3배를 벌며 풍요로운 생활을 즐겼으니까. 수입이 일정치 않고 이제 곧 결혼하여 가장의 역할을 해야하는 상황이라 통장에 많은 돈이 꼬박꼬박 꽂히던 그때가 가끔 그립기도 하다.


그러나 그때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 사실 일도 생활도 내 맘대로 만들어가는 지금이 좋다. 마치 잘 지어진 저택에 입주하는 게 아니라, 벽에 금이 가고 창문이 조금 비뚤어져 있는(무너지지만 않는다면 뭐) 조금은 어설프고 작은 나만의 집을 손수 지어가는 재미가 있다고나 할까.


법조계는 다른 업계보다도 더 보수적이다. 기존에 정해진 법과 규칙을 다루는 직업이다 보니 그런 것 같다. 아무튼 나는 그런 분위기가 싫어서 기존의 체제를 뛰쳐나온 측면이 있다. 그런 분위기에서는 조금만 특이하게 행동해도 이상하게 여겨지기 쉬우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이너하게, 똘아이처럼 내 방식대로 나아가 본업에서 내가 원하는 것을 해내게 된다면 더 큰 쾌감이 있지 않을까? 쉬운 길은 길이 아니다. 어려운 길이기에 그 열매는 더 달콤하다. 그게 내가 열심히 앞으로 나아가게 만드는 원동력이다.  



그나저나 리즈 유나이티드는 이번 시즌 몇위를 기록할까..?



그리고 나는 변호사 2만명 시대에 살아남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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