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의 프로페셔널리즘은 정장과 넥타이에서 생겨나는가
로펌생활수칙 제1조
진정한 로펌 변호사가 되기 위해서는 항상 정장과 넥타이를 착용해야 한다.
"정장에 넥타이를 멋지게 매고 회사 건물 회전문을 들어설 때 나는 비로소 로펌 변호사가 된다."
이 오글거리는 말은 내가 로펌에 입사해서 몇 주간의 연수를 마친 후 지금 일하는 부서에 올라온 첫날 회식 때 어느 선배가 했던 말이다. 당시 넥타이도 안 하고 후질근한 차림이었던 신입사원 김마이너에게는 굉장히 눈치가 보이는 말이었다. 신입사원이 넥타이도 안 매고 있고 선배들 눈에는 이상하게 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다, 암.
직장에 출근할 때는 무조건 정장을 입고 출근하던 예전과 달리, 요즘은 문화가 많이 바뀌어서 사기업들 중에서는 이제 정장을 입지 않고 캐주얼 복장을 입고 출근하는 회사들도 많은 것 같다. 하지만 내가 몸담고 있는 법조계는 제일 보수적인 집단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에 엄격하게 정장을 입고 출근하도록 되어 있다. 정장도 여름에는 셔츠만 입고 출근하는 회사들도 있지만 자켓까지 꼭 다 입고 출근한다. 그래서 직장가에서 여름에도 정장을 입고 돌아다니는 사람들을 보면 변호사로 추정될 정도이다.
김마이너도 로펌에 다니고 있으니 정장을 입고는 다니지만 넥타이는 잘 하지 않는다. 물론 김마이너도 고객과 회의를 할 때나 재판에 갈 때는 넥타이를 착용하기는 한다. 그런데 다른 동료들이나 선배들은 웬만하면 항상 넥타이를 다 하고 다니는 분위기다. 그래서 직접적으로 말하는 것은 아니지만 넥타이를 잘 매지 않는 김마이너에게 무언의 지적을 보낼 때가 있다.
선배들이 해주는 얘기로는 예전에는 법원에 재판을 가서 변호사가 넥타이를 매지 않고 있으면 판사가 화내면서 지적하기도 했다고 한다. 법정에서 변호사가 넥타이를 매야 한다는 법적인 규정은 없지만 재판부에 대한 예의 차원에서 관행처럼 넥타이 정장 차림을 유지해 왔던 것이다. 그런데 최근 여름철 복장 간소화를 위해 서울변호사협회에서 여름철(6~8월) 넥타이를 매지 않은 정장 차림으로 법정 내 변론을 할 수 있도록 법원에 공문을 보냈고 이에 따라 대법원도 재판에서 변호인들에게 6~8월에는 재판을 받는 동안 넥타이를 매지 않아도 괜찮다고 했다고 한다.
https://m.lawtimes.co.kr/Content/Article?serial=153883
넥타이를 매면 예의를 차리는 것이고 넥타이를 매지 않으면 예의를 차리지 않는 것인가? 그럼 여름철에만 특히 더우니까 예의를 차리지 않아도 한시적으로 봐준다는 것인가? 코미디가 아닐 수 없다(가끔 배운 사람들이 더 웃긴 행동을 할 때가 있다...).
정장을 입고 넥타이를 매야지만 프로페셔널한 로펌 변호사가 되는가? 미디어에서 나오는 프로페셔널한 이미지의 로펌 변호사는 하나 같이 쫙 빠진 깔끔한 정장을 입고 멋진 넥타이를 매고 있다. 미드 <슈츠(Suit)>에 나오는 섹시한 변호사 하비처럼. 'Suit'라는 단어는 '소송'이라는 의미와 동시에 '정장'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으니 변호사와 정장은 뗄래야 뗄 수 없는 것인가.
아니, 영어단어가 그렇다 치고. 도대체 정장이나 넥타이가 변호사의 프로페셔널리즘과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실제로 열심히 일을 할 때는 정장이고 넥타이고 뭐고 복장에 신경 쓸 틈이 없다. 정신 없이 일하다 보면 넥타이를 푸르고 옷소매를 걷어부치고 일을 하게 되는 것이다. 솔직히 편한 복장으로 같은 일을 하면 업무 효율이 33%는 올라갈 것 같다. 정장과 넥타이를 하지 않는다고 프로페셔널한 모습이 아니라면 편한 복장을 입고 일하는 직종은 어떤가? IT계열에서 일하는 친구 말로는 여름에 반바지에 샌달을 신고 출근한다는데. 그럼 그 사람들은 다 프로페셔널하지 않은 것인가. 정장과 넥타이 같은 겉모습으로 그 사람의, 그 변호사의 프로페셔널함을 판단하는 것은 완전히 오류이다. 변호사의 프로페셔널함은 정장이나 넥타이 같은 겉모습이 아니라 클라이언트를 위해 산더미 같은 기록을 뒤지고 재판에서 열변을 토하는 그러한 열정에 있다.
또한 정장을 입는 것은 나에게 개성을 잃어버리는 것처럼 느껴진다. 모든 사람들이 똑같이 정장을 입고 다니는 모습은 나에게는 조금 무서운 장면이다. 살다보면 이 스타일로 입어봤다 저 스타일로 입어봤다 여러 흑역사를 남긴 후에야 자연스럽게 자신에게 어울리는 스타일을 발견하게 된다. 이런 옷 스타일은 그 사람의 성향과 생각, 가치관 등과 신기하게 조화되고 또 그를 보여준다. 나처럼 태초부터 후리하게 생겨먹은 사람에게는 포멀한 정장 자체가 어울리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정장을 입으면 어린 애가 아빠 정장을 입은 것처럼 뭔가 부자연스러워 보이게 되는 것이다(그래서 꼭 정장을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정장은 뭐랄까 그런 사람들 개개의 개성과 색깔을 말살하고 정장이라는 똑같은 복장에 사람들을 끼워 맞춘 느낌이다. 정장은 어쩌면 개인의 개성보다는 조직의 논리가 우선되는 회사생활의 단면을 보여주는 상징일 수도 있다.
그런데 넥타이란 놈은 정장보다 더 한 놈이다. 넥타이를 처음 만든 놈을 만난다면 넥타이로 목을 조르고만 싶은 심정이다. 다이나믹 듀오의 노래 <죽일 놈>에는 "네 잔소리는 넥타이처럼 내 목을 조여서 날 얌전하게 만들었지"란 가사가 나온다. 그렇다. 목에 넥타이를 매고 있노라면 숨이 탁 막혀오면서 누가 날 조르고 있는 느낌이다. 이렇게 보면 넥타이야말로 회사생활의 상징이다. 우리는 개성을 지닌 독자적인 개인이 아니라 넥타이를 맨 말 잘 듣는 일개 회사원으로서 회사를 위해 복종하는 것이다.
도대체 어떤 연유로 우리는 정장과 넥타이를 하게 된 것일까?
정장의 유래를 찾아보니 정장은 영국 잉글랜드의 전통의상에서 비롯된 격식을 갖춘 옷차림에서 유래했다고 하고 또 오늘날 서구식 정장은 18세기 말과 19세기 유럽과 미국의 귀족들의 복장, 특히 파티에서 입었던 연미복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이렇듯 정장은 원래 지구 저너머 서양 사람들이 옛날에 격식을 차릴 때 입었던 복장에 불과하다. 우리나라 사람들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것이다. 그런데 21세기 대한민국의 직장인은 왜 서양인들이 입었던 정장을 파티를 할 때도 아니고 일할 때 불편하게 입고 있는 것일까.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넥타이의 유래를 보면 더욱 황당하다. 넥타이는 그 기원을 따라가면 1660년 30년 전쟁 때 크로아티아 군인들이 목을 보호하기 위해 두른 손수건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것이 어찌저찌 하여 남성 정장의 대표적인 장식 아이템으로 자리잡은 것이다. 전쟁도 아니고 일을 할 때 넥타이를 왜 하는 거며 그게 어째서 격식을 보여준다는 것인지, 아니 회사는 전쟁터라는 깊은 의미가 품고 있는 것인가.
넷플릭스 드라마 <킹덤>에서 서양인들이 한국의 전통 모자 '갓'을 보고 너무 품격 있고 멋진 모자라며 갓에 반했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이왕 격식을 차릴거면 서양의 것을 따르지 말고 차라리 우리나라 전통에 따라 갓을 쓰고 출근하는 것이 어떤가.
다시 한번 얘기하지만 정장을 입고 넥타이를 맨다고 해서 변호사의 프로페셔널리즘이 생겨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런 겉모습이 아니라 클라이언트를 대하는 진정성으로 그리고 사건을 대한 열정으로 프로페셔널리즘을 보여주는 그런 변호사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