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로를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한번쯤 들려주고 싶은 나의 진로 방황기
뉴런, 시냅스, 히포캠퍼스, 전두엽...
김마이너가 대학 내내 공부했던 주제들이다. 심리학을 공부하는 게 너무 좋아서 타 단과대학에서 심리학과로 전과를 했다. 시험기간도 아닌데 두꺼운 심리학 원서에 파묻혀 며칠 밤을 지새기도 했다. 나는 심리학을 사랑했던 순수한 심리학도였다.
그러니 꿈은 당연히 계속 심리학을 공부하는 것일 수밖에. 동기들 사이에서 장래 진로에 대해 얘기를 할 때 나오는, 누구는 사법고시를 준비한다, 누구는 행정고시를 준비한다, 누구는 대기업 취업 준비를 한다 이런 얘기들이 나에게는 딴 세상 얘기처럼 들렸다. 속으로 나는 너희들과 달리 순수한 학문의 길을 갈거야 하는 마음이었다.
그랬던 나의 전두엽 속으로 대학 졸업학년이 되니 조금씩 다른 생각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좋아하는 학문을 계속 하자니 대학원에 가고 유학을 가야하는데 긴 유학생활을 버틸 만큼 집안형편이 넉넉하지 않았고 실은 유학비용보다는 그 기간을 견딜만한 배짱이 없었다.
그래 결국 다 핑계였다.
그렇게 대학 졸업학년에 와서야 내가 학문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내 젊음을 헌납하고 인생을 걸 만큼으로 사랑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깨닫고 나니 포기는 빨랐다. 그러나 문제가 생겼다.
그간 다른 진로는 생각해본 적이 없이 학문의 길만 생각했던 나는 '이제 나는 무엇을 해야하지' 란 생각에 멘붕에 빠지게 되었다. 그렇다고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 일반 회사에 들어가고 싶지는 않았다. 전문분야를 가지고 싶었고 아니 전문분야보다는 실은 혹독한 사회에서 나를 보호해 줄 자격증이란 방어막을 원했는지도 모른다.
무튼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고난한 학문의 길도 아닌, 일반 회사 취직도 아닌 그 어느 중간에서 '법조인이 되면 자기 전문분야를 가지면서 적당히 사회적 영달도 꾀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적당한 생각이 났고, 이러한 두뇌 속 대타협의 결과로 나는 법조인이 되기 위해 로스쿨에 진학하게 되었다.
하여간에 나는 그렇게 별다른 고민 내지 성찰 없이 로스쿨에 진학했고 그렇게 내 진로는 한 순간에 결정돼 버렸다. 짧은 준비기간에 원하는 로스쿨에 입학해서 기쁜 것도 사나흘. 로스쿨에 입학하자마자 방황이 시작됐다.
해 오던 학문과는 전혀 다른 법 공부. 나만의 편견일 수도 있지만 뭔가 세속적 성공을 쫒는 동료들과 분위기(나도 사회적 영달을 꿈꾸며 들어왔건만)에 적응하지 못한 채, 어디로 달려가고 있는지도 모른 채 앞으로 달려갈 수밖에 없었다. 왜냐면 주위에서 다 뛰고 있었기에 잠시 서있을 시간도 없었기 때문이다. 새로운 법 공부와 첫학기부터 시작되는 학점을 두고 벌이는 학내 경쟁은 그런 고민의 시간조차 사치로 만들었다.
그렇게 달려가다 한 학기 만에 몸과 마음이 고장이 나버렸다. 해맑음을 자랑하며 살면서 한 번도 그랬던 적이 없었는데 우울증 증세까지 나타났다. 원하는 로스쿨에 입학해서 열심히만 하면 미래가 보장되는 진로에 들어서서 누구보다 행복해 할 이 시점에 나는 아이러니하게도 인생 최대의 방황을 맞이한 것이다. 내 두뇌 속 회로가 엉키기라도 한 것일까.
어찌 보면 나의 방황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다. 인생에서 중요한 진로 선택을 내 스스로의 기준에 따라 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이나 세상의 기준에 따라 한 탓이었다.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삶이 어떤 모습인지 스스로에게 묻지 않은 채 그저 부모님이 자랑스러워 하는 삶, 세상 사람들이 알아주는 삶, 그래도 명문대를 나왔는데 이 정도는 해야 되지 않느냐는 사회의 시선에 굴복해 버린 삶을 선택해 버린 것이다. 그 결과, 방황은 예정된 것이었다.
그래서 혹시나 진로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사람들이 이 글을 보고 있다면 다른 사람들의 말보다는 자신의 마음 속을 찬찬히 들여다 보라고 조언해 주고 싶다. 내가 욕망하는 것, 내가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다른 사람들의 것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 사람의 두뇌에는 대략 1000억개의 뇌세포가 있다고 하는데 이렇게 많은 뇌세포들이 연결되는 방식은 무수히 많아 사람마다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라깡이란 작자가 말했듯, 인간은 다른 사람의 욕망을 욕망하게 마련이지만. 그래서 나도 비슷한 실수를 저질렀지만. 그럼에도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욕망이 아닌 자기 스스로의 욕망과 기준에 따라 인생의 진로를 결정했으면 한다. 남이 내 삶을 살아주는 것이 아니므로. 다른 사람들이 바라는 대로 진로를 선택했다간 큰 코를 다치게 될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다친 코를 부여잡고 로스쿨 한 학기만에 휴학을 결정했다.
휴학을 하고 기숙사에서 용달차에 짐을 씯고 부모님과 함께 본가로 돌아가던 날이 기억이 난다. 얼마나 후련하고 상쾌했던지. 부모님께 실망감을 안겨드려 죄송한 마음이 내심 있었지만 죄스럽게도 날씨마저 너무 화창했다.
집에 내려와 며칠 쉬다 보니 몸과 마음이 조금씩 나아졌다. 그렇게 조금 휴식을 취하고 미래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하게 되었다. 로스쿨 입학 전 해야 될 고민을 휴학 후에 하게 된 셈. 생각 끝에 어쩌다 들어온 로스쿨이지만 여기서 내가 배울 수 있는 것들과 이러한 과정을 거쳐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이 보였다. 그리고 거기서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게 되었다.
1년 간의 휴식을 마치고 로스쿨에 복학한 후 마음을 다잡고 열심히 공부를 했고 방학에 남들 다 나가는 로펌 인턴에 나갔다가 운 좋게 입사 제의를 받고 졸업 후 현재 다니고 있는 로펌에 입사하게 되었다.
인생이란 언제나 정답대로 살 수는 없고 실수를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실수를 하게 되더라도 그게 계속 실수로 남는 것이 아니라 그 실수 속에서도 또 새로운 의미를 찾고 살 수도 있는 것이다. 인생은 끈임없이 수정해 나가는 과정이다. 실수한다고 해서 그걸 삭제하고 리셋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처한 상황에서 최선의 방향으로 수정해 나가는 수밖에. 마치 운전을 하다가 길을 잘못 들어도 차선에서 바로 후진할 수는 없고 다른 길로 돌아가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그렇게 길을 들어선 새로운 동네는 나와 너무 다른 곳이었다... 그 곳에서 난 너무 마이너였다.
그렇게 김마이너의 <마이너한 로펌생활>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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