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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마이너 May 05. 2021

선비와 장사꾼 사이 그 어딘가

광고와 플랫폼의 시대에 놓인 어느 한 개업변호사의 분투기

<내 법대로 산다> - 일 편






여기 나밖에 없니?


공유오피스도 얻고 개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했지만 영업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문제는 사건 수임이었다. 주변 지인 소개로 들어온 몇몇 사건을 제외하고는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지속적으로 사건을 수임하기란 어려웠다. 그도 그럴 것이 사람들은 내가 있는 지도 모르니까 당연한 거겠지. 내가 아무리 “저 정말 실력있는 변호사에요! 열과 성을 다해 당신의 사건을 열심히 처리해드릴게요!”라고 외쳐도 사람들에게 들리지 않는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을 테니까 말이다. 나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리는 것 자체가 대단히 어려운 숙제였다.



그래서 광고와 마케팅이란 게 필요한 거구나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회사에 소속되어 있었다면 주어진 일을 하면 되니까 직원인 내가 이런 걱정을 할 필요는 없었겠지만, 혼자 개업하여 나만의 사업을 하는 이상 이제 광고와 마케팅은 필수적인 고민거리가 되었다. 예전처럼 법원 근처 사무실에 고객이 알아서 걸어 들어오는 것도 아니고, 온라인에서의 마케팅은 필수였다. 변호사 마케팅에 대해 찾아보니, 그래서 변호사들이 업무로 그렇게 바쁠텐데도 요즘 블로그도 하고 유튜브도 하고 방송에도 나가고 강연도 다니고 하는구나. 얼굴 팔리는 건 자신이 없고… 원래 브런치에서 글의 성격은 다르지만 글을 쓰고 있었고 글을 쓰는게 그나마 자신이 있었기 때문에 나를 알리기 위한 수단으로 블로그를 처음으로 시작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변호사 블로그를 시작하며 네이버 블로그의 세계를 탐구해보았다. 그냥 열심히만 쓰면 되는 줄 알았는데 공부하면 할수록 그게 아니였다. 사람들이 많이 검색하고 경쟁률이 낮은 키워드를 선점하는 것부터 네이버가 좋아하는 알고리즘에 맞춰 글을 써야하고, 하다못해 이미지를 몇 개 올려라, 동영상을 첨부해라 등등 갖가지 조언들에 머리가 복잡해왔다. 무엇을 하든 처음에는 시간이 들고 힘든거겠지. 그러다가 알고보니 대부분 변호사 블로그는 변호사 자신이 직접 작성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대행해주는 전문업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알고보니 그런 마케팅 업체가 쓴 듯한 글들이 법률 키워드를 검색했을 때 모조리 상단을 도배하고 있었다.


빨리 성과를 내고 싶다는 생각에 그런 전문업체와 미팅을 하기도 했다. 원하시는 법률 키워드에 포스팅을 써서 무조건 상단에 올려주겠다고, 그럼 사람들이 엄청 많이 연락올 거라는 말에 솔깃했지만, 비용이 상당했고 아직 수익이 많지 않았던터라 지출이 부담스러웠다. 그래서 혼자서라도 어떻게든 마케팅을 해보고자 지금 보면 부끄럽지만 초반에는 잘 나간다는 변호사 블로그의 대행업체들이 쓴 듯한 포스팅을 따라하기도 했다. 그렇게 따라하며 배우고 키워드나 알고리즘을 공부해서 몇 개 키워드들에서 상위 5개 안에 포스팅을 노출시키는데 성공하는 등 웬만큼 포스팅을 상위노출 시키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다.


그리고 내 글을 보고 연락이 오는 사람들도 많이 생겼지만, 이상하게도 상위노출 시키는 법에만 천착한 나머지 근본적으로 내가 생각한 내 방식대로 일하고 있다는 느낌은 희미해져갔다. 나의 색깔은 잃어버린 채 단기적인 성과를 위해 마케팅 업체들을 흉내내고만 있었던 것이다. 회사로부터 독립하여 주체적으로 내 법률사무소를 운영하겠다고 한 것 치고는 아이러니한 상황이었다. 그렇게 광고와 마케팅에 회의감이 들기 시작했다.




선비  장사꾼 


내가 있었던 대형로펌 같은 곳은 오랜기간 쌓은 명성과 규모 때문에 마케팅이 굳이 필요하지 않은 공고한 성역이지만, 그 외에는 어디나 마찬가지겠지만 광고와 마케팅이 판을 치는 시장이고 법조계에는 최근 광고와 마케팅의 힘으로 떠오른 신흥 로펌들이 꽤 있다. 이러한 로펌들은 네이버 포탈사이트에 법조 키워드 검색마다 노출되어 클릭만 해도 광고비가 나가는 파워링크 광고 등 다양한 광고비로 한달에 수백, 수천만원을 지출하고 있는데 그 덕택에 사건도 많이 수임하여 지방에 계속 분점을 낼 정도이다. 법조계 내에서는 이러한 로펌들이 다른 변호사들의 사건들을 뺏어가 사건을 독식하고 있고 또 막대한 광고비를 메꾸기 위해 사건들을 마구잡이로 수임하여 사건 처리를 제대로 못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나 또한 그런 로펌에서 사건을 맡겼다가 나에게 온 사건을 경험한 적이 있어서 은연 중에 공격적인 광고와 마케팅에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그렇다고 해서 광고와 마케팅을 전혀 하고 않고 혼자 가만히 있는다면 어떻게 될까? ‘광고와 마케팅은 다 사기야, 나는 그런 부정한 방법을 사용하지 않을거야’ 하고 독야청청하며 선비처럼 있는다면 그건 구한말 척화비를 올리는 흥선대원군과 같은 모습이라고 생각되었다. 어쨌든 작은 국내 법조시장에서 그리고 변호사 3만명 시대에서 고객을 유치하기 위해서는 나를 적극적으로 알리고 어필해야 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물론 일부 허위나 과장 광고가 성행하기도 하지만, 광고와 마케팅은 근본적으로 나를 알리는 필수불가결적인 수단으로서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제공할 수 있는 좋은 서비스를 가지고 있다면 그것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은 이로운 일일 것이다. 중요한 것은 광고를 하냐 안 하냐 보다는 내 정체성과 방식을 지키면서도 사람들에게 나를 적절히 홍보하는 방식을 찾는 것이었다. 


시대를 따라가지 못한 척화비




플랫폼에 뛰어들다 


하던 블로그는 업체에 맡기지 않고 그대로 내가 운영하기로 했다. 그리고 너무 머리를 쓰지 않기로 했다. '그냥 사람들이 내 글을 클릭하고 스크롤을 다 내렸을 때 뭐라도 얻어갈 수 있고 몇분의 시간이 아깝지 않은 글을 쓰자. 덤으로 법률상담이나 사건 수임으로 이어지면 땡큐고'. 이런 마음으로 차곡차곡 글을 쌓아나가고 있다.   

블로그 외에 내 마케팅을 다른 사람에게 맡기지 않고 그래도 많은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는 방법으로 나는 법률상담 플랫폼을 병행하기로 했다. 모든 영역에서 플랫폼이 활기치는 시대에 법률시장도 예외는 아니었다. 변호사들이 플랫폼에 등록을 해놓으면 변호사를 구하는 사람들이 플랫폼 사이트에 접속을 하여 등록되어 있는 여러 변호사들 중에 변호사를 고를 수 있도록 하는 사이트이다. 매년 접속자가 증가하여 성장 중이다.  


지인에게 알음알음 변호사를 구하던 시대를 지나, 이제는 사람들이 온라인상에서 투명하게 여러 변호사들의 경력, 전문분야, 사건경험 등을 비교해서 변호사를 고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사이트에서 법률상담을 받은 사람들이 해당 변호사에 대해 후기를 남길 수 있어 사람들이 후기를 보고 변호사 선택에 참고할 수도 있다. 나도 인터넷에서 고무장갑 하나를 사더라도 후기를 철저히 따져보고 사는데 자신의 중요한 인생사가 달린 변호사야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또 플랫폼을 이용하는 변호사들 입장에서도 실제 수요자의 유입량이 많은 사이트에서 직접적으로 의뢰인을 찾기 수월하고, 자기가 맡고 싶은 분야의 사건들에 세분화하여 직접적으로 자신을 알릴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판단되었다.


플랫폼에 가입한 후 프로필 사진도 멋지게 찍고 프로필 정보도 꼼꼼히 작성했다. 그리고 온라인상담 게시판에서 비록 무료지만 매일 정성껏 답변을 달았다. 매일매일 돈을 벌진 못했지만 그래도 기반을 다지는 의미를 되새겼다. 그러더니 내가 작성한 정성스런 답변을 보고 사람들로부터 상담 신청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회사에서 어쏘로 일할 때는 고객회의를 해도 파트너들이 얘기하고 나는 메모만 할 뿐 입도 뻥긋 안했기 때문에 의뢰인과 직접 상담하는 것은 낯설어서 더 열심히 준비했다. 상담료로 2만원 받는 15분 전화상담 하나를 위해 의뢰인이 미리 보내준 상담글을 읽고 모르는 내용은 주석서를 뒤져 검토하고 상담을 끝난 후 결과지를 작성하고 정리하고 길게는 몇시간이 걸릴 때도 있었다. 그것도 다 기반을 다지는 중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점차 상담 신청하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상담을 통해 도움을 받았다는 정성스런 후기가 달리기 시작했다. 나는 그런 피드백에 힘을 얻어 더 열심히 온라인상담도 하고 전화상담도 했다. 후기가 더 많이 쌓이고 나를 찾는 사람들도 더 많아지기 시작했다. 그런 긍정적인 선순환이 돌아감에 따라 완전 많이는 아니지만 상담 건 중에서 지속적으로 수임도 하게 되고 어느새 사건 수임에 대한 걱정은 덜게 되었다.


4달 동안 135건 정도, 하루에 1건 넘게 상담을 해왔다.


내가 바로 찾던 선비와 장사꾼 사이 그 어딘가의 길로 생각되었다. 너무 무리하지도 않고 가만히 움츠려있지도 않고, 적당한 속도로 내실 있게 성장하는 것이 내 목표이다. 플랫폼의 독점과 횡포로 인한 문제도 많지만, 플랫폼이 아니면 영업이 되지 않을 정도로 거대해진 플랫폼에 종속되지만 않는다면야 플랫폼을 잘 이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 같다. 전통적인 방식에서 탈피해서 또한 무분별한 매스 마케팅에 기대지 않고도 내 방식대로 성과를 거두기 위해 지금도 여전히 다분히 움직이고 있다.






개업 초반 자리를 잡는다고 숨가쁘게 달려오느라 브런치에 접속할 틈도 없었네요ㅜ

몇달 동안의 버닝 이후 지금은 조금 휴식을 취하면서 재정비 시간을 가지고 있습니다.

쉬면서 그동안 일하면서 쌓여있던 얘기들을 하나하나 글로 풀어보려고 해요.

그럼 앞으로 자주 뵐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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