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새해 목표로 브런치에 글을 쓰기로 마음먹었다. 사실 오래전부터 꿈꿔왔지만 회사에서 바쁜 격무에 시달리느라 실행력이 부족했다. 한다 한다 말만 하고 6개월이 흘렀다.. 내 자신이 부끄러웠다. 이렇게는 안 되겠다 싶어 야근과 주말 출근에도 불구하고 짬을 내서 샘플 원고를 쓰고 기획서를 다듬었다. 2019년 8월경 마침내 브런치 작가에 지원, 운 좋게 첫번에 합격했다!
호기로운 마음에 열심히 글을 썼다. 그치만 글을 열 개쯤 쓸 때까지도 구독자수는 늘지 않고 60명에서 정체되었다. 아니 단순히 구독자수의 문제가 아니라, "내 글이 누군가에게 읽혀지고는 있나?" 스스로 이런 의문이 들 뿐만 아니라 "이런 글이 과연 먹힐까?"란 주위의 우려까지. 대형로펌을 퇴사하고 글을 쓸 거라고 호기롭게 시작했던 것에 비해 굉장히 민망한 성적표였다.
글은 잘 써지지 않고... 애꿎은 필명과 소개글만 계속 바꾸기도 했다(예전 필명 중에는 '괴짜 변호사'도 있었다). 아무런 대책도 없이 퇴사하겠다는 아들을 무척이나 걱정했던 부모님을 달래기 위해 매일 글을 쓰는 모습을 찍어 가족 단톡방에 올리기도 했다(근데 막상 당시 쓴 글들은 브런치에도 책에도 실리지 못했지만 귀중한 연습이 되었다). 예정했던 퇴사 시점이 다가올 수록 마음이 초조해졌다. 마땅한 퇴사 이유를 말할 게 없어 대외적으로는 책을 쓴다는 이유로 2020년 2월에 퇴사를 저질렀다. 하지만 아직 출간계약은 이뤄지지 않아 불안감이 가슴을 조여왔다.
왼) 2019년초 친구와 새해목표를 다짐했던 카톡방 공지, 우) 퇴근하고 카페에 가서 닥치는대로 뭐라도 썼던 귀중한 시간들
진전은 없었지만 "아무렴 어때. 누군 처음부터 잘했나. 끝까지 해보자" 이렇게 자신을 다독였다. 백수가 되어시간적 여유도 많이 생겨서 글도 더 자주 쓰고 또 동료 작가님들 글도 읽고 소통하다보니 구독자수도 점차 늘게 되었다. 그리고 내 안에 있던 (말로는 꺼내보이기 어려웠던) 마음들을 다양하게 글로 풀다보니 글은 점점 가닥이 잡히기 시작했던 것 같다. 지금도 어디 자랑스럽게 내놓을 유려한 글은 전혀 아니지만, 적어도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내 스타일로 전달할 수 있는 정도로는 발전한 것 같았다. 감사하게도 그러던 중 2020년 4월말 예전에 처음 연락을 주셨던 출판사와 협의 끝에 출간계약에 이르렀다. 아내와 결혼하기 전 예비 장인어른, 장모님을 처음 뵙기 딱 며칠 전이었다(백수 사위가 될 예정이었던 내게 뭐라도 말할 거리가 생겨서 정말 다행이었다).
처음 책의 컨셉은 변호사의 직업생활을 다룬 직장인 에세이였다. 나라는 사람의 요소 중에서 다른 사람들이 흥미있어하고 궁금해하는 게 아무래도 변호사라는 직업이고 그쪽이 좁지만 타겟층이 확실했으니까. 그렇게 출판사와 협의를 하고 원고를 쓰기 시작했다. 그러나 사실 내 마음 속에는 단순히 변호사 이야기 외에도 더 하고 싶은 말들이 많았다. 변호사라는 특수한 직종에 속해있지만 내가 인디펜던트 워커로서 부딪히는 문제나 생각들, 그리고 직업생활을 넘어 주체적으로 삶을 살아가기 위한 도전 같은 내용은 일반 사람들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비록 직업은 다르더라도 내 이야기가 다른 직업과 상황의 사람들에게도 그에 맞게 변주될 수 있을거란 생각이 들었다. 나라는 사람이 이름이 알려진 유명인이거나 그렇게 대단한 사람은 아니고.. 그냥 평범한 사람이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현실적이고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다고 생각되었다. 그래서 출판사와 논의 끝에 직장인 에세이에서 일반 에세이로 방향을 틀게 되었다.
출판사에 제출했던 기획서 중 일부
변호사 개업과 동시에 진행했던, 정말 치열했던 원고 작업(↓저자 증정본 언박싱 영상)
2021년초 본격적으로 법률사무소를 개업하고 일을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자리를 잡기 위해 어떤 시기보다 열심히 일했다. 어떻게 보면 글을 쓰기 더 열심히 살았고 그 삶을 글에 담았다. 평일에는 변호사 일을 열심히 하고 주말마다 조금씩 책의 원고 작업을 했다. 그러다보니 어느새 출간계약 후 거의 1년반이란 시간이 흘렀다. 기존의 어떤 다른 이야기를 쓰는게 아니라 현재진행형인 내 삶의 이야기를 담는 것이고 또 시간에 따라 더 나아간, 숙성된 이야기를 책에 담고 싶은 마음에 시간이 오래 걸렸다.
원고 수정본이 버전 12에 다다를 때까지 계속 원고를 수정하고 거기에 추가 원고와 저자교까지 혼을 담아 원고 작업을 했다. 지금까지 가장 많이 읽었던 책이 아닐까 하는 로스쿨 1학년 때 공부한 계약법 교재보다도 더많이 한 열번 이상은 족히 같은 원고를 읽었을 것이다. 편집자님과도 끊임없이 피드백하여 교정을 거쳤고 출판사에서도 감성을 담아 책에 멋진 제목과 표지를 입혀주었다. 서촌에 있는 출판사와 내게 인왕산의 정기라도내렸던 것인지 순조롭게 마침내 책이 완성되었다.
열심히 고치고 또 고쳤다.
어렸을 때부터 내가 뭐 대단한 사람은 아니지만 내 인생, 내 생각을 담은 책을 내는 것이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다. '단지 책 한권 내고 싶다' 라는 버킷리스트 한 줄을 지우는 게 아니라 이 책이 이 세상 누군가에게 필요한 메시지를 줄 수 있는 책이 되기를 바라며...
p. s. 이 글을 보게 되는 동료 작가님들 중에 혹시나 글을 쓰신지 얼마되지 않았거나 글을 쓴지 꽤 됐는데 이렇다할 반응이 없어 이게 책이 될 수 있을까 의심도 들고 사기가 좀 꺾인 분들이 계실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저 또한 다른 작가님들의 쏟아지는 출간소식에 부러움과 조급함을 느끼기도 했어서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계속 꾸준히 나아가다보면 분명히 언젠가 자기만의 이야기가 완성되고 그걸 세상에 멋지게 펼쳐낼 때가 올거라 믿습니다. 같이 화이팅 해나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