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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마이너 Aug 14. 2021

나는 억대 연봉의 대형 로펌을 제 발로 뛰쳐나왔다

'나답게 자유로워지기까지'의 프롤로그를 공개합니다!

  1년 6개월 전, 3년간 잘 다니던 회사에 사표를 던졌다. 평일에 출근을 하지 않아 좀 헛헛한 마음이 들었다. 여전히 긴 휴가를 받은 것처럼 퇴사가, 내가 백수가 됐다는 사실이 좀처럼 실감이 나지 않기도 했다. 화장실 변기에 앉아 여느 때처럼 휴대폰을 보며 아직 연동이 끊어지지 않은 회사 메일들을 나도 모르게 확인하는 모습을 보면 더더욱 그랬다.

  그래도 좋든 싫든 회사와 이별해야 했다. 퇴사하기 며칠 전까지만 해도 나는 우리나라에서 내로라하는 대형 로펌에 다니는 전도유망한 변호사였다. 아니, 그러한 알량한 자존심을 훈장처럼 달고 살았는데 이제는 아니었다. 작금의 현실은 100만 청년 실업자의 대열에 합류했다는 것, 그것도 자발적으로. 그게 다였다.


  로펌에 퇴사 의사를 밝힌 후 송별회를 하고 인사차 방을 돌 때 선배, 동료들의 반응은 다양했다. 당장 버거운 일에서부터 해방되니 부럽다는 반응부터, 용기와 패기가 멋있고 대단하다는 반응, 좀 더 젊었다면 나도 그럴 수 있었을 텐데 하는 회한 어린 반응까지. 그렇지만 대다수는 이 좋은 직장을 아무 대안도 없이 그만둔다는 게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다는 반응이었다. 퇴사를 공식적으로 밝히기 위해 부문장님께 찾아가자 의아한 표정으로 내 말을 곰곰이 들으시더니 지금까지 고생해온 시간이 아깝지 않냐고 반문하셨다. 그 말에 지난 3년의 시간이 머릿속에서 파노라마처럼 지나갔다.

  주위 사람들의 반응은 퇴사를 고민한 몇 개월 동안 내 마음 속에서 이미 수차례 검토되고 엎어지고 재검토됐던 것이다. 많은 생각 가운데서도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퇴사 결정이 이렇게 봐도 저렇게 봐도 가히 미치지 않고서야 하기 힘든, 전례가 없는 선택이었다는 점이다. 호들갑 떠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퇴사 전 상태와 퇴사 후 상태를 객관적으로 비교해보면 이 말이 무슨 의미인지 조금은 와닿을 것 같다.



퇴사 전 과거 상태

-4년 차 대형 로펌 변호사

-연봉 세후 약 1억 원

-강남 한복판의 시티 뷰 사무실

-주말 포함 삼시 세끼 식비 지원, 휴대폰비 지원 등의 복지 제도

-2~3년 후 유학 보장(학비 및 생활비 지원)


퇴사 후 현재 상태

-청년 백수

-소득 0원

-식비, 생활비, 휴대폰비 모두 모아 둔 돈에서 까먹는 상태



  이직을 위한 것도 아니고, 직장 내 괴롭히는 사람이 있어서도 아니고, 단순히 잠시 쉬기 위한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 보니 한 사람한 사람 만날 때마다—그 사람들로부터 허락을 받거나 그들을 설득시킬 의무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이런 선택을 한 내가 미친 사람으로 보이지 않기 위해 이런저런 이유로 둘러대고 나 자신을 변호해야 했다. 그러나 그 어떤 것도 진정한 이유는 아니었다.


  사람들은 흔히 인생을 긴 레이스에 비유한다. 그 레이스에는 몇 가지 허들이 존재하며, 각 관문마다 최고의 것을 얻어 내야한다. 그러면 나는 일류가 되고 내 인생도 일류 인생이 된다. 나는 주입식 교육을 통해 이런 생각을 주입받았고, 그 생각이 원래의 내 생각인 것처럼 마음속에 내재화됐다. 나는 일류가 되기 위해, 각 관문마다 최고의 것을 취하기 위해 기를 쓰고 앞만 보며 경주마처럼 달렸다.

  중고등학교 시절 열심히 공부해서 서울대학교에 진학했고,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해서 자교 로스쿨에 갔으며, 서른 살의 어린 나이에 변호사가 돼 대형 로펌에 입사하는 등 그야말로 (재수 없게 들릴 수는 있지만) 소위 엘리트 코스를 밟아 왔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인생이 레이스라면 내 인생은 아마 맨 앞쪽에서 뛰고 있는 선두 그룹이었으리라. 그렇다면 다음 관문은 당연히 대형 로펌 내에서 좋은 평판을 쌓고 파트너로 승진하고 연봉을 계속해서 높이는 것이겠지. 하지만 모범생처럼, 경주마처럼 잘 따라가던 나는 어느 순간 마음이 공허해졌다. 나의 골인 지점이 어디인지, 무엇을 위해 뛰고 있는 것인지 스스로 헷갈리기 시작했다.

  속도를 늦추고 경주마의 시야에서 벗어나니 달리고 있는 레인 말고도 다른 길이 보였다. 그동안은 일류가 되기 위해 열심히 살아 왔지만, 이제는 거꾸로 살아 보고 싶었다. 문자 그대로 ‘일류’의 삶이 아니라 ‘유일’한 삶으로. 남들이 잘 닦아 놓은 길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내 방식대로 나만의 멋진 길을 개척해 나가는 삶을 살고 싶었다. 그 시작으로 나는 연봉 1억의 대형 로펌을 제 발로 뛰쳐나왔다.


  이 책은 당시 주위 사람들에게 차마 전하지 못한 솔직한 퇴사 이유, 그 이후 180도 달라진 삶에 대한 책이다. 그리고 나라는 사람이 사는 법에 대해, 실록을 썼던 사관과 같은 마음으로 차근차근 써 내려간 기록이다. 열심히 바쁘게 살고 있지만 왠지 모르게 마음이 헛헛한 사람들, 삶의 방향에 대해 계속 고민과 의문이 드는 사람들, 길고 긴 레이스를 시작하기 위해 이제 막 준비 운동을 하는 사람들을 위한 글이기도 하다.

  내 선택이 좋은 방향일지 나쁜 방향일지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지만, 먼저 어떤 선택을 해서 자신만의 길을 가는 사람의 후일담 정도로 참고해 주면 좋겠다. 직접 모험을 감행하기 여의치 않은 사람은 내 이야기를 자기 상황에 대입해 대략의 시뮬레이션을 머릿속에 그릴 수도 있겠고, 아니면 내 이야기를 듣고 ‘별거 없구나’ 하며 다른 길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지금 가고 있는 길을 잘 갈 수도 있을 것이다. 어느 방향으로든 부디 독자들로 하여금 자신의 일을 개척하고, 나아가 자신의 삶을 좀 더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데 작은 도움이 됐으면 한다.


  그럼 이 이야기의 시작은 평범한 듯 특별했던 나의 유년시절로 돌아가야 할 것 같다.


(다음 이야기가 궁금하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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