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를 떠올리다
구산면 심리, 버스 종점을 앞둔 동산에 증조와 조부모의 묘가 있다. 도로가 있어 굽어진 길에 내려 10분도 채 오르지 않아도 꼭대기가 닿는다. 게다가 해안가로부터 경사를 갖고 솟아있기에 먼바다가 한눈에 들어와 가만히 서 있으면 겹겹이 쌓인 마음속 그물을 뻥 뚫어버린다.
고향에 올 때면 잠깐 부모님 댁에만 머물렀던 나는, 지난 명절에서야 모처럼 형과 둘이서 성묘를 갔다.
몸이 불편하신 부모님의 몫까지 성묘를 해야 했지만,
도착하자마자
위로는 거침없이 파아란 하늘,
옆으로는 속살을 내놓은 나무들,
아래로는 바다 위 고기잡이 배들이 지나고
저 멀리 수평선이 보이자 나도 모르게
"우와~~~" 하며 경관에 정신을 놓았다.
내가 한가로이 텅 빈 마음에 충천하고 있는 사이,
형은 산소 주위를 살피며
"멧돼지가 여기저기 뒹굴다 갔네.
이쪽을 경계로 나무를 심고서 정비를 해야겠다."기에
'비용을 부담해야겠구나.' 하며 속으로 생각했다.
그렇게 짧은 성묘가 지나고
꽁꽁 얼었던 날씨가 사르르 풀릴 무렵,
어머니가 소식을 전해왔다.
"오전에 너희 아버지와 형하고 선산에 다녀왔어. 산소 관리 업체도 왔거든. 우리 땅 주위로 정비를 하기로 했고, 수목장을 할 곳에 나무를 심기로 했다. 아버지랑 나는 그동안 생각은 있었는데 시간만 계속 흘렀네. 오늘 할아버지, 할머니 산소 옆에 수목장 할 위치도 정하고 나니, 한결 마음이 편하다. 비용도 우리가 할 테니 걱정 말고 알고만 있어라."
준비 없이 상(喪)을 당하면
슬픔에 갇히고, 또 장례식장 일정에 쫓겨
비용도 만만치 않을뿐더러 장례를 치르고도 아쉬움이 남기 마련이다.
이를 익히 알고 계시던 부모님은
사후에 자식들에게 다가올 혼란을 조금이라도
생전에 줄이고자 할 수 있는 것을 하신 것이다.
상상해 본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만나러 선산으로 가야 할 때를.
생각해 본다.
나무 아래 앉아 부모님 생전에 하지 못해
가슴 치며 후회할 일이 무엇일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