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소한마음 Jan 23. 2024

늙은 집


새해가 금방 왔다. 새해엔 하고 싶은 게 많아 혼자 시간을 보내다 오니 11시가 훌쩍 넘었다. 우리 집은 사벌이라는 동네에 있다. 사벌왕릉을 지나 어두운 좁은 길을 올라간다.


 불 꺼진 집에서 남편은 아이를 재웠다며 뿌듯해하듯 웃었다. 엄마를 기다리느라 4살 아이가 자다가 다시 일어나 거실에 나와 우두커니 앉아있었단다. 그러다 애아빠가 침대에 누워서 기다리자고 하며 눕혔더니 그제야 잠이 들었다는 말을 듣고 살그머니 아이의 얼굴을 보러 갔다. 서재에서 쉬던 남편은 갑자기 남편은 와이파이와 휴대폰 충전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대수롭지 않게 친정에 들러 받은 반찬을 넣으려 보니 냉장고 불마저 꺼져있었다.


당황해서 얼른 창고 열쇠를 들고 두꺼비집으로 향했다. 차단기를 다시 올려 전기가 들어오는 걸 확인했다. 안심하고 잘 준비를 하려고 아이가 곤히 잠든 안방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화장실에서 수도 튼 것 같은 물소리가 들린다.


 어릴 적부터 내방은 항상 보일러실 옆이었다. 그래서인지 보일러실에서 들리는 소리를 잘 들었다. 잠이 오지 않는 겨울, 보일러 돌아가는 소리에 신경이 쓰일 때도 있었지만 몇 년 전에는 보일러와 수도관의 누수도 잡아낼 수 있었다. 화장실 수도는 문제가 없다. 이번에 나는 소리는 심상치 않다. 전기는 다시 차단되었고 당황스러웠다. 남편에게 보일러실에 가보라고 했다. 시골집 구조상 보일러실은 따로 있어 남편이 외투를 단단히 입고 갔다.


“여보 지금 보일러실 난리 났어. 지금 물바다야. 그래서 차단되는 거야. 보일러 전기 코드 뽑을 테니까 전기 들어오는지 봐봐 “

시골살이가 여전히 적응하기 어려운 도시에서 온 남편이 공대생출신 실력발휘를 하는 순간이었다.


이미 새벽 12시가 넘었다. 남편 덕분에, 남편은 내가 말해준 보일러 덕분에 전기 차단의 원인을 알았지만 문제는 보일러를 쓸 수 없다는 거다. 2주 동안 독감과 잔기침으로 고생한 아이가 그래도 겨우 잠에 들었는데. 급하게 친정부모님께 연락드려 친정으로 대피하겠다고 했다. 잠옷바람에 패딩만 걸치고 혹시나 아이가 감기에 들릴까 잠든 아이에게도 옷을 단단히 입혔다. 목도리까지 걸쳐 아이를 안고 차에 타려는 순간 아이가 깼다.


“엄마, 갑자기 누가 나를 들고 가서 깜짝 놀라고 무서웠어 “


“은서야 미안해, 집에 갑자기 보일러가 고장이 나서 집에서 잘 수가 없었어. 추운데 잘 수가 없어서 지금 할머니집 가는 거야. “


새벽 1시가 다 되어서 창밖을 보는데 하얀 진눈깨비가 내린다. 노란 신호등이 빨갛게 물들었다. 멈춘

차 안에서 애꿎은 손만 만지작거렸다.


시름시름 앓고 있는

늙은 우리 집을 뒤로한 채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