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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탱이사는이야기 May 31. 2023

Ep.17 LA만의 Korean Parade

[군함 타고 세계일주]

Welcome to LA LA LAND!


순항훈련전단은 어느덧 3번째 기항지 LA에 입성했다. 어느 나라에 가든 우리들을 가장 반겨주는 분들이 있다. 생전 처음 보는 사람들을 오랜만에 만나는 가족처럼 환하게 맞이해 주시는 감사한 분들. 그분들 덕분에 우리들은 머나먼 타국에서 따스함을 느낀다. 한국사람이라는 정체성을 잃지 않고 살아가시는 교민 분들에 대한 이야기다.


나에게는 유독 이곳 LA에서 받은 따스함이 여운으로 오래 남아있다. 입항환영행사에서부터 가든파티에 이르기까지 많은 분들께서 여러 행사에 참여해 주셨다. 이번 순항훈련 전체를 통틀어서 가장 많은 인파가 우리들과 함께 했고 그 스케일 역시 다른 곳에 비해서 워낙 컸다. 세계에서 가장 큰 코리아타운이 있는 곳, 그리고 미국 내에서 교민이 가장 많은 도시다웠다. 규모가 크고 화려함을 누구나 느낄 수 있는 정도였다. 다만 여운이라는 것은 크고 화려함 때문에 생기는 성질의 것은 아니다. 단지 크고 화려함 뿐이었다면 그저 우리나라 사람들이 미국에 와서 성공했구나? 정도의 소감만이 남았을 테다. 역시 우리 한국사람들은 타국에서도 근면성실함으로 성공한다면서. 여운을 느끼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우리가 LA에 도착한 날은 LA 한인 축제를 맞이하여 한인 퍼레이드(Korean Parade) 행사가 열리는 날이었다. 그때는 '오, LA에 와서 한인 퍼레이드도 볼 수 있다니 운이 좋네'라는 수준의 생각밖에 없었는데 지금 돌이켜보니 이 뜻깊은 행사에 고국의 해군 군악대와 의장대를 참가시키기 위해 외교부, LA 한인회 그리고 해군에서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을까 생각해 본다. 누군가의 노력으로 누군가는 행운을 얻는다는 것. 인생은 꽤나 우연적이면서도 운명적이다.


제39회 Korean Parade. 퍼레이드를 알리는 현수막이 우리나라 80년대를 연상케한다.
LA총영사와 순항훈련전단장의 카퍼레이드. 그 뒤를 해군군악대와 의장대가 따른다.


코리아타운에서 펼쳐진 퍼레이드는 그 자체만으로도 축제였다. 제일 인상 깊었던 건 한국인들만의 축제가 아니라는 점이었다. 한인 퍼레이드 행렬은 한국인들이 주축을 이뤘지만 심심치 않게 다른 인종들도 보였다. 코리아타운을 중심으로 살아가고 있는 한인뿐만 아니라 백인, 흑인 그리고 히스패닉까지 가리지 않고 한국의 문화를 LA 전체가 즐기는 듯했다. 같은 민족끼리 지지고 볶는 한반도에서 일생을 보낸 나로서는 여러 인종들이 한데 즐긴다는 이질성과 우리나라 과거 80년대가 연상되는 전통 한국 문화를 모두 느낄 수 있는 묘한 행사에 마음이 갔다. 미국에서 미국인들 덕분에 옛 한국을 느낄 수 있다는 게 얼마나 신기한지.


태극기를 들고 있는 여러 인종의 미국인들. 그리고 해군 아저씨에게 붙잡힌 귀여운 꼬마 아이들


전통적이면서 이국적인 퍼레이드를 마친 저녁, LA 한인회에서 생도들을 초청해 가든파티를 열어주셨다. 한국의 느낌이 물씬 나는 우리나라 근대식 저택의 넓은 정원에서 즐기는 본토 LA갈비와 소주 한 잔. 왠지 모르게 따뜻했다. 어느덧 한국을 떠나온 지 한 달이 된 시점이었기에 이제 슬슬 가족의 품이 그리워져서 따스함을 느꼈을까? 아니면 그저 오랜만에 걸친 소주 한 잔에 올라오는 취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무튼 따스함이 시작된 연유에 대해서는 기억나지 않지만 따스함이 긴 여운으로 바뀌게 된 순간은 잊을 수가 없다.


“올해가 사이구(4•29) 20주기예요. 우리에게 사이구는 머나먼 타국이 아닌 우리의 터전에서 생긴 비극이었어요. 우리는 함께 비극을 겪었고 함께 잘 이겨내고 있어요. 그 덕분에 지금 이렇게 멋진 해군 친구들도 보고 좋네요! “


교민 분들께서는 1992년 4월에 벌어진 LA폭동을 사이구라 불렀다. 사이구는 백인 경찰의 과잉진압에 분노한 흑인들의 폭동으로 시작됐다. 흑인뿐만 아니라 히스패닉계 미국인들까지 가세한 사건으로 미국 인종차별이 극에 달했던 시대의 비극으로 기억된다. 너무나 불행한 것은 이 사건에서 가장 큰 피해를 본 것이 바로 LA 한인들이라는 사실이다. 아무런 잘못도 없는 한인들이 피해를 보고 죽음에까지 이르게 됐을 때 얼마나 억울하고 분노했을까.


무차별한 폭력이 난무했던 슬픈 사건 사이구는 연방군이 투입되고 5월 4일이 되어서야 종결되었다. 사건의 종결은 한순간에 오지만 아픔은 문신처럼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소중한 가족을 잃고, 평생을 통해 일궈왔던 삶의 터전이 부서져버린 그들은 얼마나 망연자실했을까. 삶이 뿌리째 뽑혀버려 생의 희망마저 잃어버린다 해도 누구 하나 뭐라고 할 수 없는 절망 속의 상황에서 그들은 잘 이겨내고 있다고 말했다. 원망과 분노를 표출하는 대신에 나 스스로의 뿌리를 다시 심기 시작했다. 한국사람이라는 정체성을 가진 나라는 사람도 LA라는 삶의 터전에 다시금 뿌리내릴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백인, 흑인, 히스패닉 그리고 한인이 서로를 더 이상 믿을 수 없어진 최악의 상황에서 교민 분들은 LA폭동을 사이구라 부르기 시작했다. 누구 하나를 원망하지 않고 상처를 치유하기 위함이었을지 모른다. 아니 처음부터 사이구는 사이구였는데 제삼자인 우리들의 편협한 시선으로 사이구를 (백인들의 편견에 흑인들이 분노해서 일어난) LA폭동이라 제멋대로 불렀을지도 모르겠다.


인생은 참 아이러니하다. 생명의 아픔은 오히려 그 생명이 뿌리를 깊게 내리게 한다. 사이구라는 LA 전체의 아픔은 LA를 함께 살아가는 지역으로 뿌리 깊게 내릴 수 있게 했다. 20년이 훌쩍 지나 열린 한인 퍼레이드에 한인뿐만 아니라 백인, 흑인, 히스패닉이 함께 어울려 한국의 문화를 즐길 줄 20년 전의 그들은 알았을까?


사이구라는 비극적인 문신은 서로의 상처를 꿰매어주는 작은 한 획 한 획들이 모여 또 다른 아름다운 문신으로 바뀌어나간다. 상처는 지워지지 않는다. 다만 상처를 아름다운 무늬가 되게 하는 수많은 작은 손길들이 있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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