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사바트요-까사밀라-구엘공원
드디어 만난 가우디 2
까사바트요-까사밀라-구엘공원
다시 전철을 타고 그라비아 거리로 이동했다. ‘뼈로 만든 집’이라고도 불리는 ‘까사 바트요’를 만났다. 파스텔 톤의 화사한 분위기의 까사 바트요의 테라스는 해골의 눈 같기도 하고 골반 뼈와 갈비뼈를 겹쳐 놓은 것 같기도 했다. 지붕의 용 껍질 같은 모양과 용의 등에 칼을 꽂은 것을 형상화했다는 십자가 탑의 모습은 카탈루냐 지방에 전해오는 전설을 표현했다고 한다. 전설의 원형은 유럽 전역에 퍼져있는 용을 죽이는 백마 탄 기사, 성 조지에 대한 이야기이다. 영국 축구 대표 팀에게서 볼 수 있는 하얀 바탕에 빨간 십자가가 그려진 잉글랜드 깃발이 바로 성 조지의 문장이다. 또한, 성 조지는 러시아의 수도 모스크바의 수호성인이기도 하다. 런던의 내셔널 갤러리에서 어린이용 오디오 가이드를 듣다 보면 이탈리아 화가 파올로 우첼로의 그림 ‘성 게오르기우스와 용’에서 이 '성 조지'에 대한 전설을 들을 수 있다.
가우디가 개인의 의뢰를 받아 마지막으로 만든 건축물인 ‘까사 밀라’에 대한 설명을 들은 후 24번 버스를 탔다. 버스는 구엘 공원 근처에 우리를 내려줬다. 공원의 출입구는 정문과 후문 두 개인데 우리는 정류소에서 가까운 후문으로 입장했다. 한낮의 뜨거운 태양을 그대로 맞으며 ‘선글라스’등의 잡동사니를 파는 흑인 청년들의 모습이 안쓰러웠다.
공원의 광장은 깨진 타일을 섬세하게 이어 붙여 만든 까닭에 눈부시게 빛을 반사하고 있었다. 광장을 둘러싼 벤치의 아름다운 곡선이 광장을 거대한 접시처럼 느끼게 했다. 가우디의 작품 곳곳에서 볼 수 있는 '트렌카디스' 기법은 깨진 조각들을 재활용하기도 하지만 보통 멀쩡한 타일을 산산조각 낸 다음 그것을 직소 퍼즐 맞추듯이 하나하나 붙여나가는 아주 번거로운 작업이다. 가우디가 이 기법을 애용한 이유는 타일을 많이 사용하는 아름다운 이슬람 양식에 매료된 탓도 있지만, 타일을 사용하면서 곡선을 표현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손끝으로 전해지는 타일 조각들의 오목하고 볼록한 느낌에서 이름 모를 작업자들의 노고와 정성이 하나하나 느껴졌다. 가우디가 그들의 자녀를 위해 학교를 만들어 준 것은 정말 잘한 일이었다.
구엘 광장을 둘러싼 벤치들은 그 색깔과 모양이 제각각이어서 똑같은 벤치가 하나도 없어 보였다. 벤치에 걸터앉으니 엉덩이와 허리를 감싸주는 곡선의 느낌이 등 뒤로 고스란히 전해졌다. 곡선 모양의 벤치는 나란히 앉아도 마주 보는 느낌을 주는 것이 두 사람의 관계를 더욱 친밀하게 만들어주고 있었다. 평생 독신으로 살았던 가우디는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자신의 마음을 이런 방식으로 표현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하지만 벤치를 이런 구조로 만들어 놓은 가우디는 막상 이곳에 앉아 사랑을 속삭이는 연인들을 보는 것을 싫어했다고 전한다. 자신이 설계한 의도대로 이용하는 사람들을 보면 기쁘고 뿌듯한 게 정상일 텐데, 보통의 상식으로 이해하기 힘든 인물임은 분명하다.
세계에서 가장 길다는 이 벤치의 엉덩이 하나하나의 모양은 공사하는 인부들의 그것을 본뜬 것이라고 한다. ‘트렌카디스’ 같은 까다로운 작업을 주문하면서도 가우디가 인부들의 존경을 잃지 않았던 것은 개개인을 존중하는 진실된 마음이 그들에게 전해졌기 때문이리라. 광장 너머로 바르셀로나 시내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100여 년 전 이 자리에서 지팡이를 짚고서 바다를 바라보았을 반백의 가우디의 모습이 떠올랐다.
영화 스타워즈에 나왔을 법한 기묘한 모양의 파도 동굴에서 사진을 찍은 후, 그리스 신전 같이 기둥이 늘어선 ‘아고라’에 들어섰다. 가우디는 광장의 바로 밑에 위치한 이곳을 주민들을 위한 시장으로 활용하려고 했다. 밋밋한 도리아식의 86개 기둥들이 꿋꿋하게 지탱하고 있는 천정에는 형형색색의 깨진 유리 조각들로 아름다운 사계절의 태양과 변화하는 달의 모습을 만들어 넣었다. 광장에 모인 빗물은 기둥을 타고 흘러 아고라의 밑에 위치한 물탱크에 모이게 된다. 그 모인 물은 다시 공원 주 출입구에 있는 도마뱀 조각으로 유명한 퓨톤 분수에 사용된다고 하니, 과연 구엘공원은 시대를 앞서간 친환경 건축물임에 틀림이 없었다.
정문 양 옆에 서 있는 경비실과 사무실은 ‘과자의 집’이라는 별명답게 먹음직스러운 케이크같이 생겼다. 한낮의 태양에 녹을 것처럼 위태로워 보이는 새하얀 지붕은 손가락으로 꼭 찍으면 금방이라도 화이트 초콜릿이 묻어날 것만 같다.
하루 종일 걷는 워킹투어가 처음이었던 혁우는 계속되는 강행군에 지친 모양이었다. 구엘 공원에 들어와서는 계속 인상만 쓰고 있었다. 녀석을 달래다 지쳐 '에라, 모르겠다.' 하며 잠시 한 눈을 판 사이에 그만 혁우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당황한 나와 일우는 왔던 길로 다시 돌아가 혁우를 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고라는 물론 파도 동굴과 구엘 광장 어디에서도 혁우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공원에 사람들이 너무 많아 사람을 찾는 일이 쉽지 않았다. 가이드 분을 비롯해 함께 투어를 하고 있는 일행들에게도 혁우의 행방을 물었지만 다들 못 봤다는 대답뿐이었다.
“저기 혁우있어요!”
일우가 가리킨 방향을 바라보니 벌겋게 달구어진 얼굴의 혁우가 꺼이꺼이 울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얼른 달려가 혁우를 안았다. 한 대 쥐어박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간신히 참은 채 녀석을 으스러지게 안았다.
"화난다고 그렇게 아무 데나 다니면 어떻게 해? 다음부터 아빠 똑바로 따라다녀! "
“아....... 아파요.”
혁우가 우는 와중에도 아프다며 툴툴거렸다. 그런 녀석의 모습이 안쓰럽게 느껴졌다. 확실히 사람은 잃고 나서야 그것의 소중함을 아는 존재였다.
가우디 최고의 후원자이자 친구인 ‘에우세비 구엘’의 이름을 딴 구엘 공원은 원래 공원이 아니라 주택 단지로 기획된 곳이었다. 하지만 도심에서 멀리 떨어진 단점으로 인해 입주가 이루어지지 않자, 오랜 세월 방치되었다가 그 후 시에서 공원으로 조성했다. 처음 계획으로는 60채를 지을 예정이었다고 하니, 만약 예정대로 모두 분양되었다면 우리는 공원에 들어가는 대신 부자들의 마을을 먼발치에서 구경 정도 하게 되었을 것이었다. 어쩌면 사생활 보호를 이유로 공개조차 되지 않았을지 모를 일이었다. 가우디와 구엘에게는 불운했던 일이 바르셀로나 시민들에게는 오히려 행운으로 작용한 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