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이드 투어 약속 장소인 폰타나 역에 도착했다. 역 앞에는 이미 오늘 투어에 온 것처럼 보이는 한국사람 몇몇이 있었다. 십 분 정도 지나자 인상 좋은 남자 가이드가 나타났다. 이번 여행에서 현지 투어가 처음인 아이들은 호기심에 가득 찬 표정으로 가이드 옆으로 다가갔다. 혹시라도 아이들이 잘 보이지 않을까 봐 앞자리를 양보해 준 신혼부부의 배려가 고마웠다.
가이드 분의 설명에 초집중하고 있는 형제들
근처에 있는 까사 비센스에 들렀다. 가우디의 작품에는 유독 ‘까사’라는 이름이 많이 들어가 있다. 이는 스페인어로 ‘집’이라는 뜻인데 우리에게는 희대의 바람둥이 ‘카사노바’라는 이름으로 익숙한 단어이다. ‘노바’는 ‘새로운’이라는 뜻이니 매일 새로운 여자를 만나 새로운 집에서 일어났던 ‘카사노바’는 결국 자신의 이름대로 인생을 산 셈이었다.
가우디의 초기 작품인 ‘까사 비센스’에서는 다음 작품들의 원형을 만나 볼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가 방문했을 때는 아쉽게 보수 공사 중이었다. 공사 중인 건물을 덮고 있는 천막에는 ‘까사 비센스’의 모습이 실물 크기로 그려져 있어 방문자들의 아쉬운 마음을 그나마 달래주고 있었다.
도시의 미관도 이유였겠지만 먼 길에서 찾아온 나 같은 방문자들의 아쉬움을 달래주기 위한 그들 나름의 세심한 배려가 고마웠다. 전 세계의 사람들이 이 도시를 찾게 만드는 데 있어서 물론 가우디의 훌륭한 건축물이 가장 기여하는 바가 크겠지만 방문객을 위한 시당국의 이러한 노력 또한 무시 못할 요소임이 분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사 중인 까사 비센스
전철을 타고 이동해 람블라스 거리로 들어섰다. 가우디가 시 공모전에 출품해 대상을 받았다는 가로등이 있는 레알 광장으로 가기 위함이었다. 공공시설로 사용하기에는 너무도 멋졌던 이 가스 가로등은 이 두 개를 끝으로 더 이상 만들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누군가는 보수 문제에서 이견이 있었다고도 하고 누군가는 비싼 유지관리 비용으로 시에서 더 이상 의뢰하지 않았다고 하는데 어쨌든 가우디와 바르셀로나 시 당국 사이에 모종의 갈등이 있었던 것은 분명한 모양이다. 너무 성직자 같은 가우디의 이미지에 대한 반발심 때문일까? 개인적으로는 유지비용 문제로 계약을 파기당했다는 설보다 보수액으로 다투었다는 이야기를 더 믿고 싶었다. 젊은 가우디는 나이 든 가우디와는 반대로 적당히 건들거리는 속물이었으면 싶었다. 한 인간의 일생이 그토록 시종일관 성직자의 삶과 같다는 게 도리어 비인간적인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레알 광장 가로등
바르셀로나에 있는 대부분의 가우디 건축물들은 그라시아 거리와 람블라스 거리 일대에 늘어서 있다. 다시 찾아도 생기 가득한 람블라스 거리를 지나 며칠 전에 지나쳤던 구엘 궁전 앞에 섰다. 구엘 저택은 가우디의 작품 중에서도 가장 이질적인 느낌이었다. 가우디의 다른 작품들이 알록달록 밝은 원색의 느낌인데 반해 특히, 구엘 궁전은 어둡고 칙칙하며 무겁게 다가온다. 건물의 장식에 검정 색의 철을 많이 사용했기 때문이다. 원색의 굴뚝들만이 건물의 일부가 아닌 것처럼 지붕에 솟아있었다. 가우디는 까사 밀라의 투구 모양의 굴뚝에서 시도한 것과 같이 구엘 궁전에서도 굴뚝의 디자인으로 자신의 작품에 포인트를 주고 있었다. 기능과 디자인 모두를 살리려 했던 그의 노력이 빛나는 지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구엘 궁전 굴뚝의 모습
이 구엘 궁전은 또한 피카소와도 관련이 있다고 한다. 가우디가 구엘 궁전을 지을 당시 그 맞은편에 살았던 피카소는 구엘 궁전의 모습에서 작품의 영감을 받았다고 전한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피카소는 가우디가 가난한 자를 외면하고 부자들의 집만 짓는다며 강하게 비판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가우디를 조롱하는 그림까지 그리기도 했다. 결국, 피카소는 바르셀로나를 등지고 파리로 떠나게 되었지만, 오히려 그곳에서 큰 성공을 거두게 되었다. 이후, 부자가 된 피카소는 숱한 여인들과 염문을 뿌리며 자유로운 생활을 했다. 반면, 모든 재산을 성가족 성당 건축에 헌납하고 성당 노동자들의 자녀들을 위한 학교까지 만들었던 가우디는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갑자기 궁금해졌다. 가우디가 허름한 노동복 차림으로 전차에 치어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피카소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현지 가이드 투어
현지 가이드 투어를 고를 때 가격이 저렴하다고 함부로 고르면 자칫 귀중한 돈 낭비 시간낭비를 할 수도 있게 된다. 물론, 모든 상품을 구매할 때 적용되는 원칙이긴 하겠지만 특히 가이드 투어는 짧게는 반나절, 길면 하루 종일 비용과 시간을 소모해야 하는 까닭에 이왕이면 평가가 많고 좋은 투어를 선택하는 것이 안전하다. 아이들과 함께 할 때에는 혼자 투어에 참여할 때보다 준비할 것이 많은데 예를 들면온도 변화에 민감한 아이들을 위한 외투나 중간중간 먹을 수 있는 간식 따위 같은 것들이 그것이다. 특히, 하루 종일 걸어 다니는 워킹 투어는 반드시 강렬한 유럽의 햇볕을 막을 선글라스와 모자, 편안한 신발을 챙겨 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