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들과 함께 지내는 도미토리 룸에서 두 명의 아이들을 데리고 생활을 하는 것은 여러모로 불편했다. 제일 힘든 일은 아이들의 옷을 빨래하고 말리는 것이었다. 호텔이면 욕실에서 빨래하고 창가에 툭툭 털어 널면 그만일 일도 호스텔에서는 빨래도 공동욕실에서 하고 햇볕도 잘 들지 않는 침대 난간에 널어야 했기에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또한, 여러 벌의 빨래를 할 때면 다른 이용자들을 기다리게 할 때도 있어 미안한 마음에 서둘러 끝내기도 했다. 제법 손님이 많았던 호스텔 인지라 화장실이나 샤워실도 다른 이용자들어 사용과 겹치지 않게 신경 써야 하는 점도 피곤했다. 무엇보다도 새벽까지 놀러 다니는 젊은 여행자들이 많은 이곳 호스텔에서 숙면을 취하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비용적인 측면에서도 도미토리 침대 3명분의 가격은 호텔 3인실에 비해 결코 저렴하지 만은 않았다. 결국 이틀 연속 잠을 설친 나는 새로운 숙소를 알아보기로 결정했다.
이번에는 독립된 형태의 일반 아파트에서 자 보기로 했다. 아파트는 숙박비 외에도 청소비가 따로 청구되는 경우가 많아 호텔보다 요금이 비쌌다. 저렴하고 실속 있기로 유명한 ‘에어비엔비’를 이용해 볼까도 했지만 아이들의 안전상의 문제가 걸려 그냥 일반 숙박 사이트를 이용하기로 했다. 신중한 검토 끝에 지금 숙소와 가까운 곳에 위치한 적당한 아파트를 발견했다. 대로변이라 조금 시끄러울 것 같았지만, 이곳에서 걸어 이동할 수 있고 숙소 바로 앞에서 공항버스를 탈 수 있는 점이 마음에 끌렸다. 다음으로 이동할 도시가 바다 건너 이탈리아 로마였고, 악명 높은 서비스로 유명한 저가항공 라이언 에어를 타야 했기에 다른 때보다 서둘러야 했던 우리에게는 안성맞춤인 숙소였다.
새로 도착한 숙소는 넓고 청결했다. 하얀 벽 위 곳곳에 붙어 있는 친근한 피카소 풍의 그림들이 낯선 방의 공기에 안정감을 주고 있었다. 식탁 위에는 환영의 의미로 샴페인도 놓여 있었다. 영어를 못하는 여자 주인은 상냥한 얼굴로 언어를 대신했다. 도시세를 지불해야 한다고 해서 10유로짜리 지폐를 주었다. 거스름돈은 나중에 돌려주겠다고 했다. 숙소에 대한 간단한 설명을 들은 후 우리는 다시 시내 탐방에 나섰다.
도미토리에 있다 와서였을까? 숙소가 무척 맘에 들었다.
새로운 숙소가 맘에 들었는지 아이들의 발걸음 역시 한결 가벼워 보였다. 오늘은 내일 있을 가우디 투어를 위해 간단히 바르셀로나 대성당이 있는 고딕지구와 인근의 피카소 박물관만 들러보기로 했다. 하지만 아이들의 계획은 내 계획과는 달랐던 모양이다. 아이들은 스페인의 유명한 백화점 체인인 ‘엘 코르테 잉글레스(El Corte Ingles)’를 발견하고는 장난감 구경을 하겠다며 나를 잡아끌었다. 어제 하루 종일 걷느라 고생한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있던 나는 못 이기는 척 아이들 손에 이끌려 백화점에 들어갔다. 아이들을 장난감 매장에 뿌려 놓고 혼자서 매장 여기저기를 둘러보았다. 저렴한 가격의 외장하드가 눈에 띄었다. 면세까지 받으면 괜찮은 가격이었다. 동영상 촬영이 많아져 마침 메모리 용량이 부족하던 차였다.
“아빠 나도 레고 한 개만 사 줘요.”
“아빠 이 레고, 스페인에만 파는 거예요.”
“아빠만 아빠 사고 싶은 거 사구.”
외장하드 사는 것을 본 아이들이 득달같이 달려들어 자신들에게도 레고를 사달라고 했다. 아이들 장난감의 가격은 외장하드 값과 맞먹었다. 하지만, 결국 난 아이들의 요구에 굴복하고 말 수밖에 없었다. 처음부터 백화점에 들어오는 것이 아니었다. 외장하드를 저렴하게 구입한 보람 같은 것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말았다. 숙소로 돌아와 검색해보니 일우가 스페인에서 밖에 팔지 않는다고 했던 그 레고는 우리나라에서 훨씬 저렴한 가격으로 절찬 판매 중이었다. 잘못 알고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다음부터는 녀석의 말을 액면 그대로 믿지 않기로 마음 먹었다.
“아빠, 오늘은 아빠만 편하게 여행 다니세요.”
“그동안 힘드셨잖아요.”
아이들은 분명 숙소에 남아 조금 전에 산 레고 조립을 하고 싶은 것이었다. 여행 중에 장난감을 사주면 이런 문제가 생긴다는 것을 잠시 잊고 있었다. ‘그냥 혼자 나갈까?’ 하다가 아이들끼리만 두는 것이 불안하기도 했고 앞으로 자꾸 숙소에 있으려고만 할 것 같아 그냥 데리고 나가기로 했다. 다음부터 절대 장난감을 사주지 않겠다는 강력한 협박을 한 후에야 간신히 숙소를 나설 수 있었다.
막상 나오면 즐거운 아이들
람블라스 거리를 지나 고딕지구에 도착했다. 이 고딕지구는 바르셀로나가 지금처럼 재정비되기 전에는 귀족과 부자들만 살던 동네였다고 한다. 뱃사람과 가난한 사람은 보다 항구와 가까운 리베라 지구에 모여 살았다. 고향인 레우스를 떠나 이곳 바르셀로나에서 건축을 공부하던 가우디도 형과 함께 이곳 리베라 지구에 살았다고 한다. 고딕 지구에 위치한 '바르셀로나 대성당'은 귀족들과 부자들의 기도 공간이었고, 리베라 지구에 있는 '산타 마리아 델 마르' 성당은 가난한 자들의 기도 공간이었다. '산타 마리아 델 마르' 성당은 리베라 지역 상인들의 기부금과 주민들의 노동력으로 지어졌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산타마리아 델 마르 성당은 바르셀로나 대성당의 화려함에도 주눅 들지 않는 단정하고 수수한 자부심이 있어 보였다.
산타마리아 델 마르 성당 (출처: Wikimedia Commons)
리베라 지구까지 돌고 난 우리는 바르셀로나 대성당 앞 광장 벤치에 앉았다. 한국에서는 한창 일에 쫓기고 있었을 평일 오후 시간이었다. 이런 시간에 이렇게 평화롭게 앉아 있다고 생각하니 이 시간이 더욱 소중하게 여겨졌다. 광장 중앙에서 춤을 추고 있는 젊은이들과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있는 청년들의 자유분방한 모습이 고색창연한 대성당의 풍경과도 전혀 위화감이 없었다. 종교인 동시에 전통문화인 가톨릭이 이렇게 그들의 현재와 어우러져 가고 있는 모습이 부럽게 느껴졌다. 보존의 명목으로 박물관의 박제처럼 현재와 유리되고 있는 우리의 전통문화가 떠올랐다. 부디 더 이상 사라지기 전에 우리의 일상과 조화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기를 바랬다. 문화란 역시 현재의 일상 속에서 부대끼며 존재하여야만 생명력을 가질 수 있는 까닭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