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만난 가우디 3

사그라다 파밀리아

by 옥상평상

드디어 만난 가우디 3

사그라다 파밀리아


11살 일기

오늘 정말 멋진 성당을 봤다. 2026년에 완성된다고 한다. 그때는 나도 어른이니 친구들과 배낭여행을 와야겠다.

9살 일기

그 애가 계속 생각난다. 나 혼자 몬주익 언덕에 갈 수 있을까? 형을 꼬셔야겠다. 아니다. 형은 배신자다. 역시 혼자 가야겠다.


드디어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가족 대성당에 도착했다. '사그라다'는 성스럽다는 의미이며, '파밀리아'는 가족을 뜻한다. ‘파사드’라고도 불리는 '탄생의 문', '수난의 문', '영광의 문'이 성당의 3면을 감싸고 있으며, 그것들은 각각 예수님의 12제자를 상징하는 4개의 탑을 갖고 있다. 그리고 이 12개의 탑은 예수를 상징하는 중앙 탑을 보호하듯 둘러싼다. 가우디가 완성한 탄생의 문은 과거를, 수비라치가 만든 수난의 문은 미래를, 현재 공사 중인 영광의 문은 현재와 부활을 상징한다. 또한, 각각의 파사드의 가운데에 위치한 문은 ‘사랑’을 의미하며 양 옆의 문은 ‘믿음’과 ‘소망’을 뜻한다.

'수난의 문'의 모습

가우디는 '탄생의 문'에 성경의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글을 모르는 이들에게 성서의 내용을 그림으로 설명한 중세 교회의 스테인드글라스와 같이 성경의 장면들을 성당 겉면에 하나하나 새겨 넣었다. 여기에 나오는 인물 조각들은 모두 가우디의 주변 사람들을 실물 크기로 본뜬 것으로 지금 봐도 생생하기 그지없다.


이에 반해 수비라치가 만든 '수난의 문'은 현대미술의 기법으로 표현되어 있다. 수비라치는 가우디라면 어떻게 했을까를 끊임없이 고민했다고 한다. 그 결과 가우디가 건축의 어떤 부분도 같은 형식과 모양을 반복하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수난의 문은 그러한 깨달음에서 출발한 작품이다. 다만, 그는 가우디의 기본 개념을 받아들이면서도 그 표현 방식에 있어서는 전혀 다른 현대의 양식을 사용했다. 각 조각들은 사실적이고도 생명력 넘치는 가우디의 그것과는 다르게 과감히 생략되고 왜곡되었다.


하지만, 그는 가우디에 대한 존경 또한 잊지 않았다. 피에 젖은 예수의 얼굴을 닦은 보자기를 펼친 베로니카 성녀를 가운데로 오른쪽에는 십자가를 짊어지고 가는 예수를, 왼쪽에는 그것을 걱정하며 바라보는 가우디를 조각해 넣은 것이다.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은 가우디 옆의 로마 병사들이 쓰고 있는 투구의 모습이 까사밀라 옥상에 있는 굴뚝의 모양과 같다는 사실이다.

탄생의 문에 있는 실물 크기의 조각들
로마 병사의 왼쪽에서 십자가를 지고 있는 예수를 걱정스레 바라보는 가우디

가우디의 생전 모습

대성당의 내부는 신비로운 숲 속과 같았다. 서쪽에 위치한 붉은빛의 창으로 들어오는 오후의 햇살이 거대한 숲을 이루고 있는 기둥들을 비추고 있었다. 오전에는 동쪽의 파란색 창을 통해 들어오는 빛으로 성당 내부는 푸른빛이 가득하고, 오후에는 서쪽의 붉은색 창을 통해 들어오는 빛으로 다시금 붉은빛으로 가득하게 된다고 한다. 가우디는 동쪽과 서쪽의 문이 각각 탄생과 수난을 상징하는 '탄생의 문', '수난의 문'이라는 것을 자연의 빛을 통해 재현하고 있었다.


거대한 기둥들의 모습은 원시림의 나무들처럼 경외스럽기까지 했다. 그 신비로운 느낌의 빛들은 나비가 꽃에서 꽃으로 옮겨 다니는 것 마냥 성당 벽면 이곳저곳을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문득, 알람브라 궁전에서 보았던 사자의 중정을 둘러싼 기둥들이 떠올랐다. 나무를 형상화한 그 이슬람의 기둥들은 종교를 달리 한 거대한 모습으로 내 눈앞에 나타나 있었다. 저 오래된 이집트에서부터 비롯되었다는 기둥을 나무로 표현하는 양식은 알람브라 궁전을 거쳐 이곳 성가족 성당에서 절정을 맞이하고 있었다. 대성당을 장식하고 있는 정교한 조각들과 창을 통해 들어오는 빛의 조화는 ‘건축은 자연 속에 숨어 있는 구조를 발견하는 작업일 뿐’이라고 이야기했던 천재 가우디가 결코 혼자서 태어난 것이 아니란 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의 기둥 숲




숙소로 돌아오는 길, 그라시아 거리에서 큰 소리로 울면서 구걸하는 할머니를 보았다. 아이들이 그녀의 안쓰러운 모습에 도움을 주고 싶다는 말을 했다.

“아빠 돈으로 주는 건 너희들이 돕는 게 아냐.”

“그럼 어떻게 해요? 우리들은 돈이 없잖아요.”

“왜 너희들 여행 무사히 마치면 사주기로 했던 장난감 있잖아? 그 장난감 살 돈을 주면 돼.”

“어? 그건 안 되는데.”

“그게 아까우면 너희들은 저 할머니에게 도움을 줄 수 없어.”

“형! 그냥 주지 말자.”

“그럼 돈을 나눠서 지금 조금 주고 나머지 돈으로 작은 장난감을 사주면 안 돼요?”

그냥 포기할 줄 알았는데 일우가 자신의 몫을 줄여가면서까지 할머니에게 도움을 주려했다.

“그럼 그때 작은 걸로 사는 거다.”

“예, 알았어요.”

“혁우는?”

혁우가 잠깐 동안 나와 일우의 눈치를 살폈다.

“아....... 알았어요. 나도 작은 걸로 사면될 거 아녜요.”

“아냐. 그렇게 마지못해서 하지는 말아. 네가 진심으로 하고 싶어야 돼. 그러지 않으면 오히려 안 하는 게 나아.”

“아, 나도 진심이란 말이에요!”

나는 아이들에게 2유로짜리 동전 몇 개를 주었다. 동전을 받아 든 녀석들이 울고 있는 할머니에게로 뛰어갔다. 동전을 바구니에 내려놓자 할머니가 아이들에게 고맙다며 몇 번이나 인사를 하는 것이 보였다.


아이들은 그렇게 조금씩 자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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