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사밀라
우리만의 가우디 투어
까사밀라
어제의 가우디 투어가 피곤했던 걸까? 가까스로 일어났더니 이미 해는 하늘 가운데 걸려 있었다. 조금 더 누워 있고 싶었지만 건물 옆에 위치한 초등학교에서 들려오는 아이들의 왁자한 소리에 더는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내 옆에 서로 부둥켜 누워있는 일우와 혁우는 여전히 꿈속을 헤매고 있었다. 한국에 있었다면 저 스페인 아이들처럼 학교에 있었을 녀석들이었다.
'잘하고 있는 건가?'
때때로 나는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고 이곳에 데리고 온 게 잘한 선택인지 자신이 없었다.
빨래를 해야 했다. 다시 내일부터는 손빨래를 해야 하므로 있는 빨래 없는 빨래 모두 찾아 세탁기에 넣고 스위치를 눌렀다. 세탁기가 돌아가는 동안에는 어제 촬영한 사진들을 정리했다. 마른 공기 위로 잘게 부서지는 햇볕에 빨래를 널어놓고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길을 나섰다.
“오늘은 어디 가요?”
“오늘은 우리만의 가우디 투어야.”
어제 겉모습만 보았던 까사 바트요와 까사 밀라 내부를 관람하기로 했다. 숙소 앞 유니버 스탯 광장에는 스케이트보드 신공을 수련 중인 청년들이 광장 이곳을 저곳을 누비고 있었다.
"우당탕탕!"
그들이 넘어질 때마다 균형을 잃은 스케이트 보드는 콘크리트 바닥에 사정없이 내동댕이 쳐졌다. 쉼 없이 넘어지면서도 위태롭게 보드 위에 올라서는 그들의 모습에서 단순한 놀이 이상의 열정이 느껴졌다.
명품 거리로 유명한 그라시아 거리에 들어섰다. 까사 바트요 앞에 모여있는 많은 사람들을 보니 어제 기억이 새롭게 떠올랐다. 하루밖에 지나지 않았음에도 마치 오래전에 들른 것 같은 기분이었다. 대기하는 줄이 너무 길어 먼저 까사 밀라부터 관람하기로 했다.
가우디의 작품 중에 내부 관람을 하나만 해야 한다면 보통 까사밀라를 추천한다. 건축물 자체로도 훌륭하지만 까사밀라 외의 다른 가우디 작품들에 대한 설명도 함께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까사 바트요와 까사 밀라에는 한국어를 지원하는 오디오 가이드가 있어 작품에 더욱 깊게 몰입할 수 있다.
가우디가 직접 디자인했다는 보도블록 위에 서서 ‘채석장’이라는 의미의 ‘라 페드레라’, 까사밀라와 다시 만났다. 완공 당시 사람들은 카사 밀라를 보고 돌을 캐는 채석장을 연상했다고 한다. 사람 갈비뼈를 얹은 것 같은 까사 바트요의 테라스와 달리 까사밀라의 테라스는 말린 미역을 아무렇게나 걸어 놓은 것 같은 모습이 독특했다. 공동 주택임에도 단 한 개의 창문과 테라스도 똑같은 모양이 없다고 한다. 인간의 개성을 존중하려는 가우디의 열정에 저절로 감탄이 나왔다.
다행히 대기 줄이 길지 않아 20분 정도 기다린 후 바로 입장할 수 있었다. 아이들은 우리말로 된 오디오 가이드가 신기한 모양이었다. 하긴 스페인에서는 처음 체험하는 우리말 가이드였다. 아이들은 헤드폰에서 흘러나오는 우리말 안내에 집중하면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옥상으로 나갔다.
건물 옥상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특이한 외계 행성의 사막 같은 장면이 눈앞에 펼쳐졌다. 모든 것이 둥글둥글한 곡선으로 가득한 옥상에서 중세 투구 모양의 굴뚝들은 마르기 전 누군가 살짝 꼭지를 잡아당긴 것 마냥 뾰족뾰족한 느낌으로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스타워즈 시리즈의 악당 다스베이더 가면의 원형이 되었다는 그 굴뚝이었다. 어제 보았던 성가족 대성당의 '수난의 문'에서는 로마 병사의 투구의 형태로도 등장했다. 굴뚝의 뾰족한 정수리가 자칫 단조로워 보일 수도 있는 두리뭉실한 옥상에 포인트를 주고 있었다.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은 정면에서 볼 때는 투구 모양인 굴뚝은 하늘 위에서 보면 장미꽃처럼 보인다는 사실이었다. 원래 이곳에 설치하려고 했던 성모 마리아 상을 위한 디자인으로 하늘 위에서 보았을 때 장미꽃으로 둘러싸인 성모 마리아를 연출하기 위함이었다. 가우디는 지상의 인간은 물론 하늘의 신까지도 만족할 수 있는 건축물을 지으려고 했던 것이었다.
몇 개의 굴뚝에는 깨진 병조각들이 붙어 있었다. 그것은 사막 같은 회색빛 옥상에 청록색의 변화를 던져주고 있었다. 역시나 구엘 공원에서와 같이 깨진 조각을 이어 붙인 ‘트렌카디스’ 기법을 사용한 것이었다. 의도적인 건지는 모르겠으나 깨진 병 조각들이 투박하게 붙여진 모습들이 마무리가 덜 된 느낌을 주었다. 화려함과 세련됨에 있어서는 오히려 전작인 구엘 공원이 나은 면이 있어 보였다. 하지만, 자원을 재활용한다는 친환경적인 측면에서는 까사 밀라에게 보다 높은 점수를 주고 싶었다.
저 멀리 성가족 대성당이 보이고 있었다. 일본 여성들이 성가족 대성당을 배경으로 즐겁게 사진을 찍고 있었다. 성가족 대성당의 건축에 일본인 건축가가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인지 바르셀로나에서는 유난히 일본인 관광객들이 많이 보였다. 하긴 우리가 그들 입장이라도 무척 자랑스러울 것 같았다. 그녀들이 사진을 찍고 있는 자리 어디쯤인가에 가우디가 성모 마리아 상을 놓고 싶어 했던 장소가 있을 것 같았다. 가우디가 저 일본 여인들처럼 성가족 대성당을 바라보게 하고 싶었던 성모 마리아 상은 건물 주인인 밀라 부인의 반대로 끝끝내 설치되지 못했다고 한다.
점심은 맥도널드에서 먹었다. 실내가 복잡해서 야외 테라스에 자리를 잡았다. 옆자리에 앉은 아름다운 스페인 아가씨들이 마치 거북선 용머리처럼 연신 담배연기를 뿜어대고 있었다. 실내는 물론 야외 곳곳이 금연구역이 된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힘든 광경이었다. 그녀들이 뱉어내는 담배연기 덕분에 햄버거에서마저 담배 맛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자리를 옮길까 해서 형제들을 바라보았더니 녀석들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은 채 감자튀김과 환타를 폭풍 흡입하고 있었다.
몇 해전보다 강회 되긴 했지만 유럽은 여전히 우리나라보다 흡연에 대한 규제가 덜했다. 유모차에 갓난아기를 태우고 담배를 피우는 엄마를 본 적도 있었다. 어쩌면 유럽에 와서 우리 아이들이 제일 많이 먹고 있는 것은 담배연기일지도 몰랐다. 한편으로는 변화를 서두르지 않는 그들에게서 특유의 여유로움과 다양성에 대한 존중을 발견할 수 있어 긍정적으로 느껴지는 바도 있었다.
까사 바트요에 다시 들렀다. 하지만 줄은 더 길어져 있었다. 내일 아침 일찍 이탈리아로 떠나기 위해서는 서둘러서 짐을 정리해야 했다. 아쉽지만 오늘은 여기서 포기하고 숙소로 돌아가기로 했다. 스페인에서의 일정은 오늘이 마지막이었다.
교통수단 이용
교통수단 이용의 경우 어린이 요금이 있는지부터 확인해야 한다. 마드리드나 바르셀로나 지하철 같은 경우 어린이 요금이 따로 없기에 그냥 성인용 10회권을 이용해 다녔다. 하지만, 대부분의 다른 나라에서는 어린이 요금이 따로 있으며, 심지어 어른 요금만 내면 무료 동반이 가능하기도 한 경우도 있으니 잘 확인하는 편이 좋다. 나는 베를린에서 1일 권을 산후에야 어린이가 동반 무료인 것을 알게 되어 한 끼 식사값인 1일권 두장 가격을 날리기도 했다. 만약 교통수단 이용에 자신이 없거나 일일이 표를 구입하는 것이 귀찮다면 다소 비용이 더 들지만 투어버스를 이용하는 것도 안전하고 괜찮은 방법이다. 투어버스는 웬만하면 그 도시 대부분의 관광지를 경유하므로 특별히 공부를 하고 가지 않더라도 도시의 대략적인 윤곽을 알 수 있게 해 준다. 첫날 투어버스로 대강 돌아보고 둘째 날부터 가보고 싶은 곳을 다니는 것도 추천하는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