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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상평상 Aug 21. 2023

녀석이 돌아왔다.



검도를 함께 하는 동갑내기 직장 동료에게 전화를 했다. 토요일에 있을 검도 유튜브 촬영에 나올 수 있는지 묻기 위해서였다. 몇 년째 승진 시험을 준비하고 있어 그럴 여유가 없을 것 같긴 했지만 촬영 일정 정도는 알려줘야 할 것 같았기에  안부도 물을 겸 전화를 걸었다.


응. 무슨 일이야?



그의 다소 까칠한 첫마디에 속으론 왜? 일 없이 전화하면 안 되냐? 고 되묻고 싶었지만 시험준비 스트레스 때문이려니 생각하고 넘어가기로 했다.



응. 이번 주 도장에서 유튜브 촬영이 있는 거 알지? 시험 준비 때문에 바쁘겠지만 혹시 시간 나면 들러달라고.



아! 촬영? 근데... 지금은 내가 그럴 정신이 없어서.



그렇지? 시험 준비 때문에 정신없지?



아니, 그것보다도. 나 지금 서울 와 있어.



서울? 왜?



그게.... 건강 검진에서 대장암 이상진단이 나와 지금 아산 병원에 와 있거든.




....




대장암이라는 그의 말에 나는 잠시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지금 진료 대기 중이니까 자세한 이야기는 내려가서 할게.



으. 응. 알았어. 진료 잘 받아.



통화는 거기서 끝났다.



가슴속에서 슬픈 기억이 재생되고 있었다. 20여 년 전 경찰 생활을 하다가 같은 병으로 세상을 떠난 친한 동네 친구의 모습이었다. 그의 병상 옆에서 말라 비틀어만 가는 그의 모습을 지켜보는 일은 정말 견디기 힘든 고통이었다. 키 185센티에 몸무게 78킬로그램을 자랑하던 그의 건장한 몸은 대장에서 발병한 암세포가 온몸으로 전이되면서 거의 40킬로그램으로 쪼그라들었다. 



반 쪽이 되어버린 녀석의 몸을 휠체어에 옮겨 병원 옥상에서 바람을 쏘여주고 있을 때였다.



평상아. 내 병든 몸이 날고 싶은 내 영혼을 질식시켜 죽이려는 것 같아.



녀석이 가뭄에 말라 사방으로 갈라진 논바닥 같은 입술을 힘겹게 우물거리며 신음처럼 말을 뱉었다. 그리고 그것은 녀석의 마지막 유언이 되고 말았다. 그때 내 평생의 눈물을 모두 쏟아 버렸던 걸까? 내 눈물은 녀석의 죽음 이후 완전히 말라 버렸다.



통화를 마치고 한참의 시간이 지났음에도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스마트폰을 열어 동료의 계좌에 십만 원을 송금했다.


그리고 문자를 보냈다.



친구야. 검사, 좋은 결과 나올 거고
잘 이겨낼 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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