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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상평상 Aug 18. 2023

누군가를 미워한다는 것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힘들지도 모를 일



6년 전의 일이다. 같이 일하는 동료분이 모친상을 당해 조문을 간 일이 있었다. 바로 서울로 올라가야 해서 공항으로 가는 길에 급하게 짬을 내서 장례식장에 들렀다. 그녀는 사랑하는 어머니를 갑자기 잃은 황망한 얼굴로 한쪽 벽에 기대어 있었다. 그 모습이 무척이나 안타깝게 느껴졌다. 하지만 서울의 약속시간 역시 빠듯하게 남아 어쩔 수 없이 조의금만 건네고 떠날 수밖에 없었다.


식사라도 하고 가시죠.
아. 죄송합니다. 제가 오늘 서울에 약속이 있어 바로 공항으로 가야 해서요.
아. 바쁘시면 어쩔 수 없죠.


그렇게 안타까운 마음을 남긴 체 막 자리를 뜨려던 순간이었다.


아! 누가 온 거야?


걸걸한 목소리의 다부진 체격의 남자분이 우리에게 다가왔다.


응. 오빠. 우리 팀장이 왔어.


나는 순간 내 귀를 의심했다. 그녀가 내 팀원으로 나보다 한 살이 많긴 했지만 그래도 자신의 오빠에게 문상을 온 나를 팀장님이 아닌 팀장으로 소개를 하며 왔어라니. 나는 그저 그녀가 상중에 경황이 없어 무심하게 말을 한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다음 내 귀에 꽂힌 말은 더욱 충격적이었다.


응?  이 사람이 그 팀장이야? 널 그렇게 힘들게 한다는!!


그녀의 오빠가 나를 위아래로 흝으며 큰 소리로 말을 했다. 나는 그의 말에 어떤 반응도 할 수 없어 그저 잠자코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 사람이 너 맨날 야근시킨 거야?


그녀 역시 당황했는지 당장이라도 내게 따지려는 듯한 그를 황급히 데려갔다. 남겨진 나는 망연자실 그들의 뒷모습만 한참을 쳐다보다 마지못해 공항으로 향한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일주일의 시간이 지나 그녀가 회사로 복귀했다. 그녀의 초췌하고 마른 모습이 그간의 마음고생을 짐작케 했다. 나는 며칠을 기다리다 조심스레 그녀에게 말을 건넸다.


어떻게 좀 괜찮으세요?
아... 예.


그녀와 나 사이에 냉랭한 기운이 흐르고 있었다.


그날 오빠분이 하신 말...
예.
제 얘기하신 거 맞죠?
.....
제 기억으로는 제가 야근 같은 걸 지시한 적이 없는 것 같은데 혹시라도 제가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었나요?
.....
행여라도 저 때문에 힘드셨다면 죄송합니디만 문상을 간 자리에서 갑자기 그런 이야길 들으니 저 또한 당황스럽더라고요.
예. 미안해요.


그녀와의 대화는 그것으로 끝이 났다. 그리고 그녀와의 인연 역시 거기서 끝이 났다. 그녀가 나를 노골적으로 피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녀는 복도나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쳐도 나를 본체만체했고 회식자리에서조차 내가 앉으려 하면 기분 나쁜 표정을 지으며 일어나 다른 테이블로 가버렸다. 섭섭하고 당황스러웠지만 차마 그녀를 붙잡고 물을 수는 없었다.


그러다 오늘 근 3년 만에 우연히 엘리베이터 앞에서 마주치게 되었다. 그녀는 누군가와 밝게 이야기하다가 나를 발견하고는 바로 인상을 구겼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오늘은 별다른 동요가 일어나지 않았다. 아마도 그녀를 발견한 순간 바로 마음의 준비를 한 까닭이리라.


그녀의 옆을 지나가면서 그녀의 얼굴을 봤다. 몇 년 전에 봤을 때보다 한층 매서운 인상에 나이가 들어 보였다. 어쩌면 나를 미워하느라 그렇게 되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그녀가 안타깝게 느껴졌다.

 

어쩌면 누군가를 미워하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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