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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상평상 Sep 08. 2024

라오스 새벽 풍경




인구의 95퍼센트 이상이 불교를 믿고 있는 이곳 라오스에서 승려의 지위는 상당히 존경을 받는 위치이다. 첫날 나의 가이드였던 사이폰의 말에 의하면 주로 가난한 집안 환경으로 인해 공부를 할 수 없는 어린 소년들이 선택하게 되는 직업이라고 했다. 승려를 위한 국가 장학금이 존재하는 까닭으로 해마다 많은 수의 가난한 집의 아이들이 승려를 지망한다고 했다. 승려가 되기 위해선 불교에 관한 공부는 물론 학과 성적도 우수해야 하는데 해외로 유학을 다녀온 승려들은 영어에도 능통하다고 한다.

이곳 루아 프라방에서는 매일 새벽, 승려들이 일반 신자들에게 공양을 받는 탁발의식이 진행되고 있었다. 그 광경을 보기 위해 새벽 5시 반에 숙소를 나섰다. 아직 해가 뜨기 전이라 어스름한 새벽 한가운데로 무심한 빗줄기들이 내려 긋고 있었다.

미리 찾아본 구글 지도의 리뷰에는 현지인들의 관광객에 대한 비난이 많이 눈에 띄었다. 대부분이 어린 승려들이 맨 발로 탁발을 받는 장면을 촬영하기 위해 관광객들이 그들 가까이에 카메라를 들이대는 무례함에 대한 비판이었다. 또한 일부 단체 관광객들의 소란 행위에 대해서도 불만이 많았다. 승려들을 진심으로 존경하는 라오스 사람들의 마음이 느껴지며 같은 관광객의 입장으로 미안했다.

리뷰를 보고 나니, 조심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이들의 일상, 그것도 종교와 관계된 일상을 엿보는 것이었기 때문에 한층 더 조심해야 했다. 한참 우기인 이곳 라오스의 거리에는 새벽부터 보슬비가 서글프게 내리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수의 관광객들이 우산을 쓰거나 우비를 입은 채 승려들의 탁발하는 모습을 보기 위해 거리로 나와 있었다. 나는 그들 무리와는 조금 떨어져 승려들이 오기를 기다렸다.

잠시 후, 고운 감색 빛깔의 승려복을 입은 어린 소년들이 무리 지어 모습을 나타냈다. 비가 오는 와중임에도 그들은 맨 발로 걸어오고 있었다.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인솔하는 나이 든 승려 말고는 그들의 거의 대부분이 이제 갓 초등학교 1학년 정도로 보이는 어린 소년들이었던 것이었다. 이곳에서도 서열이란 것이 존재하는 것일까? 어쩌면 이 탁발 행사는 어린 승려들의 수행의 일환으로만 명맥을 유지하는 제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일까? 소년들의 얼굴에는 종교적인 신심보다는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 새벽부터 끌려 나온 피곤함이 잔뜩 서려 있었다. 하긴 아무리 믿음이 깊다 하여도 한참 아침잠이 넘치고도 남을 어린 나이에 어찌 자발적으로 이 새벽길에 나왔을까? 어린 나이에 부모와 강제로 떨어져 이곳에 모여 단체 생활을 해야 하는 어린 소년들의 마음을 떠올리니 갑자기 울컥하는 마음이 들었다. 더군다나 오늘 같이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새벽에는 더욱 엄마와 집이 그리울 그들이었다.

라오스 사람들이 어린 승려들에게 공양하는 음식이 흥미로웠다. 무슨 밥이나 반찬 같은 일상적인 먹거리가 아니라 초코파이나 쿠키 같은 과자류의 간식이 대부분이었던 것이었다. 역시 스님이라고는 해도 그들은 한창 과자 따위의 군것질 거리를 좋아할 나이의 어린아이들이었던 것이었다.

다행스럽게도 구글 리뷰에서와 같이 카메라를 가까이 들이대는 무례함을 저지르거나 소란 행위를 벌이는 관광객들은 볼 수 없었다. 비가 내리는 날씨여서 관광객들이 적게 와서 그런 것일지도 몰랐다. 다만, 중국인 단체관광객을 실은 미니 밴 하나가 승려들이 지나가게 하기 위해 쳐 놓은 바리케이드 안으로 들어오려다가 관리인에게 제지를 당한 장면 정도가 목격되었다. 운전자가 관리인에게 항의를 하자, 관리인이 언성을 높이며 꾸짖듯 크게 화를 내고 있었다. 그런 그의 위엄 있는 모습이 마치 우리나라의 절문을 지키는 사천왕상 중 하나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돌아오는 길, 아침 식사를 파는 가게들이 길게 늘어선 거리를 지나게 되었다. 바게트와 비슷하게 생긴 빵에 야채나 고기 같은 소를 넣어 만든 샌드위치를 파는 간이 상점들이 대부분인 곳이었다. 이곳 사람들의 아침 주식인 모양이었다. 호기심에 하나 사 먹을까 싶다가 숙소의 조식을 신청해 놓은 상태라 포기하고 말았다. 젊은 시절 여행을 할 때에는 궁금한 음식들은 소화 따위 신경 쓰지 않고 무턱대고 맛을 보곤 했었는데 소화기능이 현저히 떨어진 이제는 그럴 수가 없었다. 궁금하다고 닥치는 대로 먹었다간 금세 배탈이 나기 때문이었다.

숙소에 거의 가까워질 무렵, 아까의 승려들과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 어린 소녀가 삶은 옥수수를 팔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어른 하나 없이 혼자 삶은 옥수수 무더기 앞에 앉아 아침 식사조차 못하고 왔는지 그중 하나를 고사리 같은 손으로 집고는 열심히 먹고 있는 중이었다.

그 모습이 어찌나 귀엽고 안쓰러운지 나도 모르게 걸음을 멈추고 말았다. 그리고는 그녀에게 돌아가 옥수수를 주문했다. 그녀가 재빠른 동작으로 옥수수를 먹던 손을 자신의 옷에 쓱쓱 닦고는 뜨거운 통 속에 담긴 옥수수 한 움큼을 하얀 비닐봉지에 싸서 내게 건넸다.

그녀에게 지폐를 건네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 하지만, 그녀는 웃지 않았다. 그녀의 눈동자는 한없이 맑고 투명했지만, 그녀의 얼굴은 없이 무표정했다. 마치, 이미 오래전 웃는 법을 잃어버린 것 같았다. 그녀에게 옥수수를 받고 걸어오는데 주책없이 눈물이 터지기 시작했다.  쏟아지는 비처럼 눈물이 염없이 두 뺨을 타고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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