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만약 당신이 여성으로 태어나지 못 한다면?
『이갈리아의 딸들』(게르드 브란튼베르그 · 황금가지 · 1996년 · 원제 : Egalia's daughters : a satire of the sexes, 1977년)
2015년 '디시인사이드 메르스 갤러리'를 통해서 여성 혐오와 남성 혐오가 수면 위에 떠올랐으며, 2016년 5월 17일에 발생한 '강남역 묻지마 살인사건'으로 여성들의 분노가 폭발하였습니다. 이후 국내의 '페미니즘 운동'은 억압된 여성들이 목소리를 내게 되는 순기능과 함께 혐오와 혐오가 뒤섞인 방향으로 전개되는 역기능을 함께 안은채 우리의 일상에까지 스며들게 되었습니다.
'페미니즘'이라는 단어를 일상적으로 들을 수 있는 2018년의 한가운데에서 '여성학 이론을 둘러싼 여러 가지 쟁점과 여성 운동의 역사를 담고 있는 훌륭한 여성학 교과서'로 통하는 『이갈리아의 딸들』을 읽었습니다. 노르웨이에서 1977년에 출간된 책이며, 1977년의 우리나라는 故 박정희 전 대통령의 유신체제 하에서 여성해방 운동은 물론 개인들이 목소리를 내기도 힘든 시절이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이갈리아의 딸들』을 ‘여성혐오를 남성혐오로 되갚아주는 방식’이라는 ‘미러링(mirroring)’이 등장하는 최초의 작품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실제로 『이갈리아의 딸들』에 등장하는 단어들을 보면 '혐오'에 대한 내용은 없으며, 패러디와 모방 만이 있을 뿐입니다. '미러링'에 대한 뜻을 찾아보기 위해 한국어 위키백과와 영문 옥스포드사전을 찾아보았지만 해당 결과는 없었습니다. 영문 위키피디아를 검색한 결과 심리학에서 사용되는 'Mirroring'에 대한 검색결과를 볼 수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심리학에서 사용되는 '미러링'이라는 단어의 실제적인 의미는 무의식적인 모방에 가깝습니다. 가까운 친구와 가족 사이에서 자주 발생하는 행위이며, 심지어는 개인적인 친밀한 관계를 만들어주는 행위로 정의되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혐오에 대한 혐오로 점철되는 '미러링'의 본좌로 거듭나버린 『이갈리아의 딸들』의 누명을 벗겨줄 필요가 있을 듯 합니다.
· 움(Wom) ↔ 여성(Woman) / 맨움(Manwom) ↔ 남성(Man)
· 스파크스주의(Sparkism) ↔ 마르크스주의(Marxism)
· 휴우미즘(Huwomism) ↔ 인문주의(Humanism)
· 왕국(Queendom) ↔ 왕국(Kingdom)
· 왕자(Princeass) ↔ 공주(Princess)
· 옛애인(Mastrass) ↔ 혼외애인(Mistress)
· 영웅(Sheroes) ↔ 영웅(Hero)
· 지그마 플로이드(Sigma Floyd) ↔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
-『이갈리아의 딸들』 이갈리아의 용어들
또한 『이갈리아의 딸들』에서는 움들의 맨움에 대한 억압 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닌 '젠더(Gender)'에 의한 성 역할은 이데올로기였다고 이야기합니다. 현재의 우리들에게도 젠더에 대한 이데올로기는 물론이고 수입, 재산, 안정적인 직장, 결혼 적령기, 출산의 당위성, 인맥관리에 의한 사회성의 판단 등의 이데올로기도 존재합니다.
"맨움들은 차례차례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사실 그들이 어려서 과일이 어떻게 자라는지 엄마에게 물었을 때, 그들은 모두 똑같은 대답을 들어야만 했다. “그런 일로 너의 머리를 어지럽혀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너는 소년이니까.” 어떻게 그들 모두 똑같은 대답을 들을 수 있었을까? 엄마들이 몰래 짠 걸까? 엄마들이 어느 날 비밀 회합을 열고 “우리 아들들이 원예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할 때, 우리 모두 '그런 일로 너의 머리를 어지럽혀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너는 소년이니까'라고 대답해 줍시다”하고 결정했던 것일까?
그들은 약간씩 웃기도 하면서 힘이 솟는 것을 느꼈다. 아니, 그런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그들을 어리석게 하고 무능력하게 했던 움 이데올로기 전체의 일부분이었다." (이하 모두 구판 p.219)
『이갈리아의 딸들』에서 맨움에 대한 학살이 없어진 이유는 맨움들의 해방운동에 의해서가 아니라 맨움 노동력에 대한 수요가 나타났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와 함께 노예 해방도 노예 노동력에 대한 수요가 나타났기 때문이라는 의견이 존재합니다. 노예 해방주의와 여성 해방주의 모두 자본주의 또는 착취구조가 만들어낸 이데올로기라는 구조적인 문제도 존재합니다.
"역사의 어느 시기에 움들은 세 살 이상의 아이들 열 명 가운데 한 명만을 보호했었던 것 같다. 원할 때는 언제나 움들은 나머지 아이들에게 벌을 줄 수 있었다. 남근 가위를 기억해 보라. 어린 맨움을 학살할 수 있는 조직적인 관습이 없어진 것은 맨움 노동력에 대한 수요가 나타날 때였다. 다른 한편 움들은 손에 채찍을 들었다. 그에 대해 알려진 것은 거의 없지만 맨움의 엄청난 신체적 힘이 문제를 일으킨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맨움들은 부상당했고 게다가 뿔뿔이 흩어지고 서로 헤어지게 되었다." (p.226)
그리고 앞으로의 페미니즘 운동은 미국의 철학자인 주디스 버틀러가 이야기했듯이 남성과 여성이라는 이분법적인 분절을 넘어서서 우리 모두는 '퀴어(Queer)'라는 점을 바탕으로 각 개별자들의 차이를 인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또한 '차이와 생성'의 철학자로 불리우는 들뢰즈의 사유를 통해서 성(性) 마저도 포획해버리는 구조에 대한 이야기와 다 계열적인 구조로 뒤덮혀 있는 현대 사회를 바라보며 남성과 여성의 간단한 이분법으로 대립을 만들어내고 뒤에서는 착취가 재생산되는 구조에 맞설 수 있도록 연구하고 연대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구조는 무의식적이며, 반드시 그의 생산물들 또는 결과들로 뒤덮혀 있을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그 어떤 경제적인 구조도 결코 순수하게 존재하지 않으며, 언제나 그 경제구조 자신을 육화시키는 법률적,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관계들로 뒤덮혀 있다. (…) 의미를 주는 것의 자리 옮김이 주체들의 행위, 운명, 거부, 고집, 성공, 운세를 결정한다. 그들의 타고난 자질과 사회적 성취가 무엇이든 간에. 또 그들의 성격이나 성이 어떤 것이든 간에 상관 없이 말이다. (…) 상징적인 요소들은 그들 자신이 이루는 차등적인 관계들 속에서 그들 자신이 취해질 경우, 필연적으로 계열을 조직해 나간다. 구조는 계열적임과 동시에 다(多) 계열적이다."
- 『들뢰즈가 만든 철학사』 질 들뢰즈, 이학사, 2007, p.391
『이갈리아의 딸들』에서는 이 밖에도 자연관(p.27), 구조 변화에 따른 일자리 상실(p.45), 산업자본에 의한 젠트리피케이션(p.46), 성폭행(p.86), 성적 억압과 남녀 성 역할(p.155), 역사 저술의 문제점(p.228), 동성애에 대한 곱지 못한 시선(p.250), 가사 노동(p.261), 대의 민주주의의 한계(p.267), 개인들의 피임약까지 기록하고 관리하는 국가체제(P.274), 정치권력과 언론의 결탁(p.279), 데이트/가정 폭력(p.300), 신체 노출의 문제(P.325) 등의 이야기가 등장할 정도로 많은 생각할 거리를 줍니다. 하지만 작품 내에서는 이러한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을 온전히 제시해내지 못 했습니다. 책이 나온지 어느덧 40여 년이 지났고 현재에 있는 우리가 이 책을 넘어설 필요가 있습니다. 이분법적인 젠더의 틀을 벗어나 혐오와 착취가 재생산되는 사회구조에서 벗어나는 탈영토화를 이룰 수 있도록 연구하고 연대할 필요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