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장님의 조언 EP08
차장님
태웅아, 너는 삼성바이오로직스 나온 거 후회 안 해?
나
네? 갑자기요?
차장님
응, 그냥 그럴 수도 있을 거 같아서.
나
안 한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죠, 솔직히 말씀드리면 회사에 아쉬움 느낄 때 후회하게 되는 것 같아요.
차장님
어떤 부분이?
나
첫 번째로는 동기들 사이에 퍼져있는 좋지 않은 분위기 때문입니다. 지금 처한 상황이 어떠하든 최대한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다 같이 으쌰으쌰했으면 좋겠는데, 그런 친구들이 많이 없거든요. 게다가 회사에 대한 불평과 이직하겠다는 이야기들을 공개적으로 하니까, 분위기가 항상 어수선하고요. 물론 회사를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있겠냐만은 분명 배울 수 있는 것도 많은데, 항상 안 좋은 쪽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삼성은 돈도 더 많이 주고 회사 네임밸류도 있으니까, 지금보다 덜했거든요. 동기들끼리 서로 의지했었는데, 여기는 그런 게 없어서 아쉽습니다.
그리고 저는 직무가 맞지 않다는 판단하에 삼성을 나온 거잖아요. 그런데 여기 와서는 원하는 직무에서 일하게 되었으니 뭔가 다를 줄 알았는데, 결국 크게 보면 다 똑같은 일이더라고요. 그 당시 일의 개념을 넓게 볼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그때는 시야가 좁았던 것 같아요. 좀 진득하게 버티면서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어도 나쁘지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을 종종 해요.
그런데 사실 앞서 말씀드린 2가지는 그렇게 중요한 원인은 아닙니다. 그냥 감정적으로 떠오르는 것들이고... 지금 우리 회사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사업이 잘 안 되고 있다는 걸 체감할 때 많이 후회해요. 지금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잘 되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미래먹거리라고 불리면서 계속 외형을 키우고 있잖아요. 어떻게든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데 그런 곳의 생동감이 부러울 때가 많습니다.
차장님
나였어도 그랬을 거 같아. 어찌 되었든 밀어주는 회사잖아. 그곳에서는 뭔가 새로운 것들을 더 해볼 수 있는 게 많았겠지.
그런데 태웅아.
나
네?
차장님
뭐 과정이 어떻든 결국 넌 지금 코웨이를 다니고 있잖아. 그리고 네가 직접 선택했고. 그럼 잘해져야 하는 것 같은데 점점 네가 평범해지는 것 같아서 조금 아쉬워. 그냥 다른 또래들보다 약간 더 노력하는 것 같은 느낌 정도랄까. 평균보다 아주 약간 이상? 뭐 그 정도.
저번에 네가 회사 온 지 1년 반 됐다고 했잖아. 그리고 내가 처음 2년이 앞으로의 회사생활을 결정하는 거라고 했었고. 그럼 6개월 남았는데 지금까지의 너는 그냥 중간 정도로 가고 있는 것 같거든. 2년 안에 모든 게 결정 나게 되어 있어. 주변에서 너를 바라보는 시선도 그렇고, 너란 사람도 그렇고. 2년 동안 네가 보여줬던 이미지가 그대로 사람들 머릿속에 고정되는 거야.
그리고 그 이미지는 사실 대부분 맞아. 만약 나한테 이런 이야기를 듣고 2년 동안 평범하게 지내던 사람이 ‘난 지금부터 열심히 할 거야’ 라고 마음먹었다고 치자. 그럼 그 사람은 그때부터 열심히 할 수 있을까? 난 아니라고 생각해. 기존에 해오던 관성이 있는데 사람이 그걸 바꾸기 어려운 거거든. 우리가 보는 그 사람의 이미지는 대부분 맞고, 그걸 바꾸기란 정말 쉽지 않아.
네 시절에는 신뢰를 쌓는 게 중요해. 지금 당장 네가 우리 팀에서 할 수 있는 업무가 없잖아. 그럼 보여줄 수 있는 거는 결국 노력밖에 없는 거거든. 물론 엄청나게 똑똑한 사람이라면 저절로 퍼포먼스가 나겠지만, 우리 같은 사람들은 그런 게 아니잖아. 할 수 있는 게 없어도 뭐든지 열심히 해야 하는 거지.
얘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팀장님이랑 담배 필 때 가끔 네 얘기도 해. 그럼 뭐라고 하시냐면, 너는 자꾸 자료가 없다고 한대. 그런데 팀장님이 밤새 찾으면 자료가 나와. 물론 사람마다 기준이 다른 거니까, 너는 진짜 열심히 찾고 확인했는데 없는 것 같아서 없다고 말씀드렸을 수도 있지. 그렇지만 팀장님은 밤을 새워서 결국 찾았어. 이러면 결과적으로는 네가 열심히 안 한 꼴이 되잖아.
나는 처음 입사하고 2년간 회사에서 아무도 돌보지 않는 일을 했었어. 진짜 그 누구도 관심 없는 일 그런 거 있잖아. 그래도 내 일이니까 처음에는 열심히 했거든? 누가 알아봐 주지도 않고 내가 열심히 한다고 해서 티가 나는 것도 아니었는데, 어떻게 하면 더 잘할 수 있을까 고민하면서 했던 거 같아. 그렇게 2년쯤 지나니까 더이상은 못하겠더라고. 동기들은 앞으로 나아가는데 나는 멈춰있는 것 같았어. 이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퇴사까지 결심했었어.
그런데 그 2년의 노력을 알아주는 사람이 있는 거야. 회사에 좋은 기회가 생겨서 김부장님이 기획팀으로 가게 됐었는데, 나를 한번 써보겠다고 데려가셨거든. 누군가한테 보여주려고 한 것도 아니고, 그냥 혼자서 열심히 했던 건데 다들 알고 있었던 거지. 사실 2년간 배운 것도 없는데 뭘 할 줄 알았겠냐. 그냥 열심히 하는 모습, 그거 하나 보고 데려간 거야. 그동안 신뢰가 쌓인 거지.
사실 이제는 상황이 조금 다르긴 해. 누군가 시키는 분위기가 아니잖아. 그런 사람도 없고. 그러니까 혼자서 동기부여를 하고 그래서 더 열심히 해야 하는데 쉽지 않을 거야. 그럼에도 또 한편으로는 내가 말하는 그 신뢰라는 걸 옛날보다 쌓기 쉬워지기도 했어. 옛날에는 모두가 열심히 했는데 요새는 그렇지 않잖아. 결국 신뢰라는 건 상대평가인데, 다 같이 안 하는 분위기에서 조금만 노력하면 상대적으로 돋보이기 쉬운 거지.
차장님
그리고 맹목적으로 노력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되도록 지금 하고 있는 일의 의미도 생각을 하면서 해야 해. 그냥 어영부영 시키는 일만 하고 고민없이 움직이면 언젠가 후회하게 돼. 계속 칼날이 서 있어야 하는 거지.
단적으로 생각해보자. 너 고려대 나왔잖아? 수능 몇 프로였어?
나
1~2% 정도 됐던 것 같습니다.
차장님
그래, 그럼 상위 1% 였다는 이야기인데, 지금 코웨이가 1% 정도의 기업인가? 그게 아니라면 여기서 잘해야 하는 거잖아. 계속 S 등급을 받아야 하는 게 맞잖아. 그런데 회사에 흩어져있는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출신들을 보면, 그 사람들 중에는 B 등급을 받는 사람이 많거든. 어영부영 일하는 거지.
난 네가 평가할 무언가가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어. 칼날을 가진 사람이었으면 좋겠는데, 평범해지고 있는 거 같아.
나
차장님이랑 이런 이야기를 할 때면 열심히 살고 있지 않은 것에 대해 반성하게 돼요. 그리고 반성했는데도 나는 왜 열심히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하고요.
제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죽을 만큼 열심히 살았을 때가 딱 두 번 있었어요. 고3 때랑 군대제대하고 대외활동 하던 때였습니다. 이때는 이러다 진짜 죽을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잠을 안 자고 살았거든요. 심할 때는 하루에 2시간만 잤었어요. 그런데 오히려 그때보다 열심히 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잘 알고 있으면서도, 왜 그때처럼 하지 않고 있는 것인지 종종 생각해요.
아내랑도 이런 얘기를 하는데요. 아내가 말하기를 차장님 같은 분은 회사 규모가 작았을 때부터 직접 회사를 이끌면서 함께 성장했기 때문에 소속감을 느끼실테고, 그렇기 때문에 열심히 할 수 있는 거라고 해요. 반대로 저는 그렇지 않기 때문에 지금처럼만 해도 충분하다고 하고요. 상황 자체가 다르다고 말하더라고요. 물론 그 말도 이해는 되는데, 자꾸 욕심이 나서 이런 스스로를 인정하기 싫은 것 같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내는 사람’이 되고 싶은 거죠. 환경이나 상황을 탓하는 게 아니라 그냥 의지나 근성으로 해내고 싶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저 말만 하고 있네요.
차장님
그건 사람의 성향 차이일 수도 있는 것 같아. 너는 좋아하는 일을 찾으면 몰입이 장난이 아닌데, 나는 필요하다면 좋든 싫든 무조건 하는 편이거든.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죽어라 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특정 분야에 꽂혔을 때 열심히 하는 사람도 있는 거야. 아예 ‘편안하게 중간만 살래’ 이렇게 생각하면 그렇게 사는 거고.
꼭 회사에서 열심히 하라고 하는 건 아니야. 그게 아니라면 개인적인 공부를 한다든지, 퇴근 후 뭔가 다른 걸 하든지 하는 게 좋을 것 같아.
네가 좀 더 잘할 수 있을 거 같아서 그래. 넌 잘할 수 있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