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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에디트 May 16. 2018

이층집에 놀러오세요

안녕, 에디터M이다. 디에디트 세 여자는 지금 포르투에 있다. 서울을 떠나온 지 이제 사흘째. 우리가 왜 여기에 있는지 궁금하다면, 에디터H가 쓴 이 글을 먼저 읽고 오시는 게 좋겠다.



촌스럽게도 시차적응에 실패한 우리는 모두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매일 새벽에 눈을 뜬다. 우리 막내는 늙은 언니들과 달리 뛰어난 체력을 자랑한다. 막내의 종용에 못이겨 운동화를 꿰어 신고 집 근처를 달리고, 배가 고프면 카페 테라스에 앉아 커피와 빵을 먹고 집으로 돌아온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영상을 찍고 편집을 하고 그리고 틈틈히 글을 쓴다. 솔직히 말하면 여기가 서울인지 포르투갈인지 헷갈릴만큼 단조로운 일상을 보내고 있다.



아직 며칠 지나지 않았지만, 하고 싶은 말들이 너무나 많다. 수다스러운 우리가 본격적인 이야기를 쏟아내기 전에 우리가 한 달 동안 신세지게 될 이층집을 소개하려고 한다.



어딘가로 떠나기로 했을 때 가장 먼저 해야할건 비행기 티켓과 숙소 예약이다. 이것만 정해져도 준비의 80%는 끝났다고 봐도 무방하다. 나머지는 다 어떻게든 되기 마련아닌가. 에디터H와 한 달간의 해외 출근 프로젝트를 하기로 마음 먹었을 때 당장 숙소부터 알아보기 시작했다. 호텔은 제외했다. 예산도 문제였지만, 여행이 아니라 사무실을 옮겨야하는 우리의 특수한 사정도 한 몫했다. 직장동료인 우리가 한 달동안 같이 살기 위해서는 독립된 3개의 공간이 필요하다. 게다가 낮에 함께 일할 사무실도 필요하니까.



꼬박 2주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에어비앤비를 헤집고 다녔다. 생각보다 원하는 조건을 모두 만족하는 집이 많지 않았다. 지금 살고 있는 이 집은 처음부터 후보 1순위였던 곳이다. 우리처럼 오랜 기간 머물 사람들은 장기투숙 할일은 꼼꼼히 살펴보는 것도 도움이 된다. 한 달(29박) 이상 숙박 하면, 꽤 많은 할인을 받을 수 있다. 우리의 경우 거의 100만원이 넘는 돈을 절약했다. 포르투의 가장 아름다운 장소인 도루 강에서 도보 10분 정도인 위치도 마음에 들었다.


호스트도 아주 중요하다. 브라질에 거주 중인 우리 호스트는 영어도 잘하고 아주 친절했다. 궁금한 것이 많았던 우리가 출발하기 한 달 전부터 가까운 빨래방 위치와 맛있는 밥집 추천까지 물어봤는데 하나같이 친절하게 답변해주었다. 도착하고 나서는 포르투에 사는 여동생이 자질구레한 것까지 친절하게 챙겨주더라. 심지어 웰컴 와인까지!



세명의 여자가 5개의 캐리어를 끌고 문앞에 도착했을 때, 호스트는 초록색 대문 앞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문을 열면 가파른 계단이 나온다. 우리집은 2층 집이다. 드라마틱하게 꺾어진 계단을 타고 오르면 세 여자가 먹고 자고 살고 일할 공간이 나타난다.



집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넓고 근사했다. 솔직히 호스트가 보내준 사진으로만 봤을 땐, 이렇게까지 넓은 줄 감히 상상도 못 했다. 19세기에 지어졌다는 우리 집은 시간이 멈춘 것처럼 근사하다. 창문도 대문도 층고도 높아 전반적으로 탁 트여있단 느낌이다.



열쇠도 어찌나 클래식한지. 솔직히 이런 열쇠는 초등학생때 이후로 처음 써 본다. 열쇠에 대해서도 할말이 많다. 처음에 대문을 열때 얼마나 힘들게 열었던지. 불가능에 도전하는 그런 경험이었다. 열쇠를 꽂고 돌리다가, 더 이상은 안 돌아가서 이게 끝이야 하는 순간에 한 번 더 힘을 주고 돌려야 한다. 장난이 아니다. 열쇠가 부러지겠다 싶을 정도의 힘을 주어 돌리면 그제야 철컥,하고 돌아간다. 도착한 첫날은 혹시 다시 문을 열고 들어오지 못하는 게 아닐까싶어서 세 명의 여자가 한꺼번에 외출하지 못했을 정도다. 유럽문은 너무 어려워요. 아귀 힘이 없는 나는 어째 번번히 실패하고 대문을 항상 멋지게 열어주는 건 막내 에디터다.



가장 먼저 이 공간의 심장, 사무실과 테라스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 우리가 이 집을 선택한 가장 첫번째 이유다. 바람에 흔들리는 파라솔이 있는 이 테라스는 우리의 식탁이고, 희의실이다.



유난스러운 세 여자가 서울에서부터 <디에디트 in 포르투>를 새긴 포스터를 제작해왔다. 여기가 우리 사무실인걸 티내고 싶어서. 



한쪽 구석에 서울에서 만들어온 포스터를 붙이고 시장에서 사온 바질과 로즈마리를 키운다. 내가 뭘 잘못했는지 바질은 벌써 죽었다. 해가 잘드는 곳에는 빨래를 넌다. 낮동안 널어둔 빨래에서는 바스락 거리는 햇살의 냄새가 난다. 한국의 해도 따갑지만 유럽의 해는 차원이 다르다. 유럽의 오래된 집들에 해 가림막이 있는 이유다. 우리집의 내벽과 창문사이에는 30cm 정도의 간격이 있어 직사광선이 들어오는 곳이 거의 없다. 이 구조와 높은 층고 덕분에 한낮에도 집안은 서늘하다.



이 아름다운 곳에서도 아침이면 출근 하고, 느지막히 퇴근 한다. 우리끼리 우스갯소리로 여기가 포르투인지 서울인지 모르겠다고 깔깔거렸지만, 사실 알고 있다. 내 작은 12인치 맥북 화면을 보며 열심히 타이핑을 하는 이 순간에도 조금만 고개를 돌리면 눈부신 햇살이 쏟아지는 테라스가 날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사무실에 앉아 있으면 온갖 소리가 다 들려온다. 앞집 개가 컹컹 인사를 하고, 갈매기 떼는 시도 때도 없이 날아든다. 지나가는 차소리, 옆집 정다운 노부부가 나누는 대화소리. 포르투갈어라 무슨 말을하는 지는 알아들을 수 없지만 그래서 더 아름답다. 차소리 사이렌 소리 사람들의 소리까지. 거기에 우리 세 명의 가벼운 타이핑 소리가 잘 버무려져 백색 소음이 된다. 서울이었으면 이 모든 소음에 짜증을 냈을지도 모르지만, 사람은 이리 간사하다. 마음이 여유로우니 모든것이 아름답다.



사무실 내 자리에서 조금만 더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바로 부엌이 있다. 출근과 퇴근, 그리고 식사시간과 일하는 시간의 경계가 모호해진 우리는 적어도 하루 한 끼는 밥을 직접 해먹는데, 맛이 기가 막히다. 에디터H가 손맛이 좋다. 아직 제대로된 포르투 맛집을 찾지 못해서일지도 모르지만, 어쩌면 포르투 최고의 맛집은 우리 이층집인지도 모르겠다.



주방에는 없는 것 빼고 모든 것이 갖춰져있다. 단순히 머물 사람들을 위해 급하게 마련해둔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을 두고 집주인이 찬찬히 모은 것들이란 느낌이 강하다. 와인잔도 디켄터부터 보르도, 샤도네이 그리고 작고 귀여운 포트 와인잔까지 있다니!



집이 가로로 긴 직사각형 구조라고 하면 이해가 빠를까? 방은 총 4개. 사무실 맞은편에서 긴 복도를 지나면 순서대로 나(에디터M), 기은 그리고 에디터H의 방이 나온다. 긴 복도 끝에는 침대 2개의 가장 멋진 방이 있는데 아쉽게도 우리는 창고이자 촬영 스튜디오로 사용하고 있다.



이방에도 역시 작은 발코니가 있다. 영화에서 보던 사람 하나 겨우 들어갈 만한 야트막한 발코니다. 오래된 가로수가 2층까지 가지를 한 껏 뻗치고 있어 창밖 풍경이 그렇게 좋을 수 없다.



집이 곧 사무실이 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준비를 하고 출근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너무나 짧지만, 생활과 업무의 분리가 생각보다 희미해지는 경우가 많다. 밥을 먹기 위해선 누군가는 요리를 해야하고, 다 먹고 난 뒤엔 산처럼 쌓인 설거지도 해야한다. 직장 동료와 꼬박 한 달을 살아야 한다는 건, 절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래도 다행히 아직은 즐겁고 고단하게 일하면서 잘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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