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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에디트 May 17. 2018

매일 장보는 여자들


해외에 나가서도 멋지게 일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윤식당>의 정유미, 안되면 윤여정을 꿈꾸며 포르투에 왔는데 현실은 <삼시세끼>에 가깝다는 게 함정. 출근길이 지겨워 32시간의 비행을 견뎌 포르투까지 온 세 여자. 그게 사치였다는 걸 깨닫는 데는 채 하루가 걸리지 않았다. 사이트를 새로 만들고 내친김에 유튜브 채널도 새로 팠다. 해야할 일은 정확히 두 배, 아니 네 배가 되었다. 매일매일 해야 할 일들이 쌓여가는데 속도 모르고 울려대는 배꼽시계. 먹고사는 건 때때로 성가신 일이다. “오늘 뭐 먹지?” 이층집의 세 여자는 끼니마다 진지하게 고민한다.


[디에디트 찬장, 라면부터 와인 파스타, 과자까지 없는 게 없다]

모든 혼돈 속에도 질서가 있다. 내키는 대로 먹는 것 같아 보여도 그 안엔 나름대로의 질서가 자리 잡고 있다. 끼니는 대충 이런 식이다. 어제 저녁을 나가서 먹었으면 오늘 아침은 집에서 먹는다. 아침 점심은 대체로 간단하게, 저녁은 성대하게.



우리가 사는 곳에서 100m 반경에만 크고 작은 마트가 4개. 간단한 끼니를 해결할 수 있는 카페는 5개나 있다. 조용하고 살기 좋은 동네다. 민낯에 슬리퍼를 꿰차고 마트에 간다. 집 앞 청과물점 주인 아저씨와는 이제 눈인사를 할 정도로 친해졌다.



“사도사도 왜 자꾸만 살 게 생길까?”


사람이 먹고 살기 위해서 이렇게나 많은 물건이 필요하다니. 한국에서는 따듯한 집밥(부모님이 차려주는 밥)을 먹고 살아온 세 명의 여자는 매일 장을 봐도 필요한 물건이 자꾸만 생기는 이 현실이 놀랍다.


마트에 도착한 우리는 일사불란하게 자신의 취향대로 흩어진다.



요리를 담당하고 있는에디터H는 식재료부터 산다. 익숙한 듯 낯선 식재료들은 그녀의 호기심과 모험심을 자극한다. 조개가 질이 좋아보이니 그걸 사서 조갯국을 해줄게. 남은 건 봉골레 파스타 해 먹자. 간단하게 굽기만(?) 하면 먹을 수 있는 스테이크용 고기도 두 덩이 정도 살까? 양파랑 마늘, 파는 요리에 필수니까 미리미리 쟁여두는 게 좋겠어.



케첩 마요네즈, 디종 머스터드, 바질 페스토도 있어야 해. 매콤한게 당기는 순간을 위해 핫소스도 사두자. 소스는 많은 수록 좋다. 



언니들이 소스를 사 모으는 동안 막내는 잼을 모은다. 복숭아, 호박, 무화과까지. 우리 이층집엔 빵을 절여 먹어도 될 만큼 많은 잼이 있다. 아, 그럼 빵을 사야겠네.



물만큼 싼 술은 끼니마다 빠지지 않는다. 포트 와인부터, 레드, 화이트, 샹그리아 그리고 맥주까지 라인업도 화려하다. 알코올 도수가 2% 정도라 낮에도 음료수처럼 마실 수 있는 레몬 맥주도 필요하다. 우리는 여기서 술꾼이 되어 돌아갈지도 모르겠다. 와인을 샀으니 안주도 필요하다. 세 종류 작은 치즈가 샘플러처럼 모여있길래 당장 구입. 잼과 크래커를 더해 안주로 만들어야겠다. 



마트 구경은 언제나 재미있다. 사 먹는게 아니라 해 먹는 우리에게 마트는 무한한 가능성이 열린 도화지 같다. 식재료 하나에 가능한 요리가 무궁무진하게 펼쳐진다.


[이게 한 번 본 장바구니를 쭉 펼쳐둔 거다. 100유로 정도 나왔던 것 같다…]


동네 주민들이 흘끔대는 시선이 느껴진다. 여행자의 외모를 한 세 명의 동양 여자가(우리 동네는 정말 동양인을 찾아보기 힘들다) 식재료를 잔뜩 사서 계산대에 올려두니 놀랄 법도 하지. 어쩌면 뜨내기와 현지인의 가장 큰 차이는 바로 장바구니의 내용물인지도 모르겠다. 



덕분에 디에디트 냉장고는 언제나 풀방이다. 디에디트가 포르투갈에서 잘 사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잘 사고 잘 먹는 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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