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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에디트 May 16. 2018

히베이라의 관광객

포르투로 한 달 동안 사무실을 옮기며, 많은 사람들에게 왜 하필 그곳이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사실 포르투가 처음은 아니다. 몇 년 전에 일 때문에 스치듯 방문한 일이 있다. 이 낯선 도시에 한 달이나 머물 용기를 냈던 것도 그때의 기억 때문이다.



솔직히 포르투는 내가 좋아할 만한 도시는 아니었다. 나는 화려하고 자본주의가 점철된 도시를 사랑한다. 마음껏 낭비하고, 마음껏 향유할 수 있는 곳. 이를테면 파리나 도쿄같은 도시. 포르투의 첫인상은 투박했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불친절함에 지쳐있었고, 좁은 골목길은 미로같았다. 빨리 이곳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할 때쯤 도루 강가에 도착했다. 촌스러운 표현이지만 그 순간 포르투에 홀랑 반해버렸다.



도루강 하구를 따라 1km 남짓 펼쳐진 거리를 히베이라 광장이라 부른다. Ribeira라고 쓰기 때문에 처음엔 리베이라라고 읽었는데, 히베이라가 맞다. 포르투갈어에서 R을 H로 발음한다는 것도 이 거리에서 처음 알았다. 히베이라는 나만이 알고 있는 특별한 장소는 아니다. 서울로 따지자면 남산타워나 명동쯤 될까. 포르투에서 가장 많은 인파가 모이는 곳이며 전형적인 관광지다. 이 거리를 따라 화려한 레스토랑과 카페가 줄지어 있다. 관광객을 대상으로 하는 곳이라 포르투의 다른 지역에 비해 물가도 비싼 편. 영어 메뉴판이 준비돼 있음은 물론이고 점원이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건네는 경우도 허다하다.



히베이라가 이토록 아름다운 이유는 이 강가를 가로지르는 아치형 철교 덕분이다. ‘동 루이스 다리’라고 부르는데 루이스 1세때 지어져서 얻은 이름이라고. 포르투에 한번이라도 가 본 사람은 들어봄직한 이야기지만, 에펠탑을 설계한 귀스타브 에펠의 제자가 설계를 맡았다. 실제로 에펠탑과 비슷한 검은 철물 구조다. 에펠탑보다 먼저 완공되었다는 건 조금 의외인 사실.



히베이라는 낮에도 아름답고 밤에는 더 아름답다. 언덕바지를 종종 걸음으로 내려가다가 건물 사이로 새파란 강물과 강 건너 풍경이 보이기 시작할 땐 감탄사가 입 밖으로 절로 튀어나온다.



가파른 내리막으로 한발씩 내디딜 때마다 길 끝에서 히베이라의 동화 같은 풍경이 넘실거린다. 평생을 서울에서 살고도 여전히 한강을 사모하는 나로서는 이 모습에 반하지 않을 재간이 없었다.



이번에도 포르투에 도착한 첫날 밤에 히베이라를 찾았다. 한 번도 포르투를 와보지 못한 막내 에디터에게 이 거리의 뻔한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싶었다. 오기 전부터 하도 호들갑을 떨었더니 혹 내 기억보다 시시하면 어쩌나 걱정마저 들더라.



다행히도 환상은 그대로였다. 우리 셋은 히베이라 초입에서 말 없이 스마트폰 카메라의 셔터를 누르기 시작했다. 시차 적응도 마치지 못한 상태였지만 조금 무리하고 싶어졌다. 와인을 한 잔씩 마시고, 동 루이스 다리를 걸어서 건넜다. 비교적 한적한 건너편에서 바라보는 히베이라는 더 드라마틱하고 화려하다. 강물에 노란 조명이 비쳐서 반 고흐의 그림처럼 보인다.



한 레스토랑 앞에서 가수가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대부분 귀에 익숙한 노래였다. 즐거워서 견딜 수 없다는 듯이 노래하는 표정과 음색이 굉장히 매력적이었기 때문에 우리 말고도 발걸음을 멈춘 사람이 여럿이었다. 노란 뒷통수와 까만 뒷통수도 나란히 앉아서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그 목소리를 듣는다. 곡이 끝날 때마다 후한 박수가 쏟아진다.



나는 이런 게 관광지의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호객꾼과 뜨내기도 넘쳐나지만, 행복한 여행자들이 가득하다. 이 아름다운 밤을 즐기고 있는 모두가 여유로워 보여서 내 마음도 그랬다. 서너 곡쯤 노래를 듣고 낭만에 취해 이층집으로 돌아왔다.



아마 포르투에 한 달을 사는 동안 히베이라 거리에 오는 일은 다섯 손가락에 꼽을 정도일 것이다. 오늘밤이 지나면 우린 여행자가 아니라 노동자니까. 간혹 사치스런 저녁을 먹으러 가거나 촬영 때문에 가게 되겠지. 하지만 하룻밤의 기억으로 이 멀고 먼 땅을 다시 찾아오게 될 만큼 이 거리는 아름답다.



히베이라의 풍경이 포르투가 가진 모습의 극히 일부라는 걸 알게 된 건 나중의 일이다. 약간의 복선을 깔면서 오늘 이야기는 일단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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