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트 쳐 본 경험?
손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
몽골로 향하기 전에는 그랬다.
캠핑에 딱히 관심이 있던 건 아니지만
초원에서 텐트 치는 표정 같은 게 궁금하긴 했다.
캠핑 좀 해 본 형을 따라가 보기로 했다.
며칠 뒤 날마다 아웃도어 쇼핑몰에 출석 도장 찍는 나를 보게 되었다.
늘어나는 장비를 보며 흐뭇해지다가도 제대로 쓸 수 있을까 의심이 피어올랐다.
서너 차례 텐트를 더 쳐 본 게 다인(써 보지 못한 장비가 더 많은;;) 채로
몽골 여행 짐을 싸게 되었다.
해외 캠핑은 처음이라 짐의 무게와 부피는 도무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챙긴 건...
-1~2인용 텐트 & 팩망치
-침낭 & 에어 베개
-에어 매트 & 캠핑용 은박 매트
-경량 캠핑 의자 & 좌식 백패킹 체어
-접이식 테이블 & 등산 스틱
-다운 팬츠 & 다운 부츠
-강염버너 & 1인용 코펠 & 티타늄 컵 접시 젓가락 수저
-걸이형 랜턴 & 헤드 랜턴
-카메라 & 액션캠
-일회용 샤워타올 & 핫팩 ...
여름이지만 일교차가 크다는 몽골원정대의 조언에 따라 방한 장비를 단단히 챙겼다.
캠핑 외에 백패킹도 계획에 있었기에 되도록 경량 장비로 준비했다.
위의 짐 외에 갈아입을 옷, 슬리퍼, 화장품 등 챙길 것들이 있었는데 가져갈 수 있었다.
주로 푸르공으로 이동하는 일정이었기에 캐리어를 쓸 수 있었던 것.
30인치 캐리어에 35리터 배낭을 챙겨갔는데도 공간이 부족해서 짐을 줄일 수밖에 없었다.
드디어 텐트를 꺼냈다.
가는 길 위에서 차를 멈추고 짐을 풀고 낯선 걸음을 떼었다.
'초원에서 첫 캠핑인데 근사한 곳으로 정해야지' 싶었지만 어려웠다.
똥이 너무 많았다.
누군가는 세 걸음 가면 똥 나온다며 '3보1똥'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는데,
푸르게만 보이는 풀은 말, 소, 양의 것으로 보이는 크고 작은 덩어리를 머금고 있었다.
똥이 없어 보이는 곳에(자세히 보면 있었을 수도;;) 자리를 잡고,
나름 능숙한 캠퍼 흉내내며 텐트를 쳤는데 냄새가 흐르기도 했다.
귀찮기도 하고 더 있으니 익숙해지기도 해서 옮기지는 않았다.
사람들과 조금 떨어진 곳에 텐트를 쳤다.
똥 없는 자리 찾다 멀어진 건 아니었고 그냥 그러고 싶었다.
사람들 곁에 와 있는데 내 텐트 근처로 오토바이가 다가왔다.
'몽골식 소매치기'는 아닐까 식겁해져서 텐트로 향하며 오토바이를 째려 봤다.
다행히도 그냥 지나쳐 가는가 싶더니 몇 분 뒤에 반대편에서 다시 나타났다.
이번엔 텐트 근처에 자리잡고 보일 수 있는 최고의 매서운 눈으로 노려봤다.
나중에 사실을 알게 된 후 그들에게 미안했다.
온통 풀이라 길이 잘 보이지 않았을 뿐이지, 텐트 몇 걸음 옆이 찻길이었던 것이다.
누군가는 거대한 골프장 같다고 했고, 제주도의 오름이 생각난다는 사람도 있었다.
너른 초원에 우리만 있어서 거대한 캠핑장을 전세낸 듯도 싶었다.
높은 곳에 올라 뜨여 있는 먼 곳을 바라보며 멍하니 앉아 있기도 하고,
나란히 앉아 해 지는 풍경을 나누며 잔잔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따로 또 같이, 원하는 대로 걸음을 가르다가 포갤 수 있는 다정한 사람들이 있었다.
은연한 바람 사이의 고요 속을 걸으며 무슨 생각을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날의 걸음걸이는 문득 떠오르곤 했다.
별 볼 일 있었다.
사람들은 별 본 지 오래된 사람처럼 별별 놀이에 신이 났다.
늦은 밤 도드라진 사람들의 왁자한 웃음소리에 뭐라 할 사람 없었다.
누운 채로 한쪽으로 고개를 돌려 초원의 별하늘을 바라보다 잠이 들었다.
걱정했던 추위가 없어서 푹 잘 수 있을 듯했는데 의외의 존재가 흔들었다.
말 특유의 기척이 가까운 곳에서 들렸던 것이다.
'혹시 텐트를 덥치는 거 아니야?' '말에게 밟혀서 죽을 수도 있나?'
깊은 밤 말의 풀 뜯어 먹는 소리가 이렇게 위협적일 줄이야.
경계의 귀는 초원의 밤에 묻고 노곤한 유목민처럼 풀 위에서 잠에 빠져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