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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지 Jul 16. 2023

<코카인 베어> 리뷰

재주는 곰만 부리고


<코카인 베어>

(Cocaine Bear)

★★☆


 배우 겸 감독으로 할리우드에서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엘리자베스 뱅크스의 새 연출작, <코카인 베어>입니다. <피치 퍼펙트> 시리즈와 <미녀 삼총사>를 만들다가 나온 영화치고는 꽤 급진적이죠. 거기에 케리 러셀, 알든 이렌리치, 레이 리오타, 오셔 잭슨 주니어, 아이제아 휘트록 주니어 등이 이름을 올리며 소재에 비하면 꽤나 화려한 출연진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도무지 말을 듣지 않는 아이들을 홀로 키우고 있는 사리. 어느 날 모험심에 불탄 아이들은 제발 가지 말라던 국립공원으로 향합니다. 그 곳엔 마침 항공 단속을 피하려던 마약상들이 공중에서 내던진 코카인이 안착해 있었고, 평소처럼 따땃한 일상을 누리던 야생 곰은 그에 취해 발에 걸리는 것은 닥치는 대로 찢어놓고 있던 중이었죠. 거기에 그를 노리는 마약상들과 보안관 등이 뒤엉키며 한바탕 소동이 벌어집니다.


 숲에 떨어진 마약을 잔뜩 주워먹은 곰이 사람들을 찢어놓고 다니다니, B급 영화의 조건을 이보다 더 충족하는 문장은 찾기 어려울 겁니다. 보통은 거기서 출발한 영화라면 듣도보도 못한 감독과 배우들이 모여 눈 뜨고 보기 힘든 CG와 연기력으로 점철되기 마련인데, 이 조합으로 그런 영화를 볼 수 있다면 이것 또한 기회라면 기회죠. 새로운 <샤크스톰(Sharknado)> 시리즈가 될 여지도 충분했습니다.



 놀랍게도 <코카인 베어>는 실화를 바탕으로 했습니다. 물론 'based on'이 아니라 'inspired by'인데, 이 말인즉슨 사건을 그대로 옮긴 것이 아니라 특정한 사건을 끄트머리 삼아 기승전결을 뽑아냈다는 것이죠. 실제로는 1980년대 숲 속에서 떨어진 마약을 잔뜩 먹고 죽은 곰이 발견되었을 뿐이었고, 사상자 또한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사건에서 눈을 번쩍인 각본가가 있었구요.


 영화는 초중반부에 걸쳐 관객들이 품은 기대에 꽤 충실합니다. 골때리는 설정과 멍청한 캐릭터들, 누굴 어떻게 죽일지 딱히 고민하지 않는 대담함이 엿보이죠. 쏟아지는 눈발에 굴러다니며 눈 천사를 만들듯 행복해 보이는 곰과 피칠갑이 된 사람들이 교차되며 분위기는 점점 고조됩니다. 몇 년 전 유행했던 시뮬레이터 장르의 비디오게임으로 출시된다면 곰 입장에서 신나게 돌아다녀 보고 싶은 무대죠.



 그러나 중반부를 넘어서면 여느 B급 영화들이 그러하듯 일찍이 힘이 부치기 시작합니다. 애초에 기승전결이 나올 설정이 아니었던 터라, 박차고 나선 동력이 떨어지는 순간 급격하게 속도를 잃죠. 곰이 돌아다니면 어찌됐건 그를 막을 인간들이 나서고 둘의 대결이 이루어지는 그림인데, 원체 멍청하거나 수동적인 인물들밖에 없는 터라 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누굴 응원하고 싶은 마음이 들질 않습니다.


 그렇다고 정말로 약을 빨고 아무나 마구 썰어댈 용기가 있는 영화도 아닙니다. 몸을 사릴 때는 또 한없이 사리면서 착하고 연약한 주인공들에겐 한없이 관대하죠. 때문에 중반부쯤 되면 대충 누가 살고 누가 죽을지 견적이 완성되고, 유혈 수위 또한 일찍이 정점을 찍고 내려가기만을 기다리는 영화의 시시한 결말부를 졸면서 지켜봐야 합니다.


 그토록 잔혹하다던 조직원들은 무장을 하고서도 코미디 영화에서나 용인될 법한 우물쭈물함으로 곰은커녕 보안관이나 민간인들에게도 쩔쩔맵니다. 영화가 보여줄 대담함은 딱 그 선을 한계로 지정해 놓고 그를 넘어설 줄 모르죠. 유통하던 마약이 그렇게 대량으로 없어졌는데 곰 한 마리 잡지 못하는 멍청이들로는 무엇도 성립될 수 없습니다. 액션부터 판타지까지 우겨도 코미디는 아닌 영화에서 그럴 순 없죠.



 그래서인지 설정으로 밀어붙이는 B급 영화들에 비하면 박스오피스에서의 파괴력도 아주 크지는 않았습니다. 약 3500만 달러를 들여 9천만 달러가 안 되는 돈을 벌어들였으니 본전치기에 겨우 성공한 것이죠. 그러나 산하 C급 D급 영화들에는 좋은(?) 재료가 되었는지, 벌써 <코카인 샤크>(...)마저 빛의 속도로 제작이 끝나 공개를 앞두고 있으니 소소한 세계관 정도는 만드는 데 성공한 것 같기는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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