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킴지 Jul 16. 2023

<분노의 질주: 라이드 오어 다이> 리뷰

진동이 모여 고동이 되어


<분노의 질주: 라이드 오어 다이>

(Fast X)

★★★☆


 하다 하다 우주로 가겠다고 놀렸더니 정말 우주도 다녀온 바로 그 시리즈, <분노의 질주>가 10편 <라이드 오어 다이>로 돌아왔습니다. <나우 유 씨 미>, <인크레더블 헐크> 등 할리우드 상업 영화에 일가견이 있는 루이스 리터리어 감독이 새로 메가폰을 잡았죠. 제작비로만 무려 3억 4천만 달러가 투입되며 역대 가장 비싼 영화들 중 8위(1위는 4억 4700만 달러를 들인 <스타 워즈: 깨어난 포스>)에 올랐습니다.



 이제는 제발 조용히 살 때가 되지 않았나 싶은 돔과 그의 패밀리 앞에 나타난 운명의 적, 단테. 자신의 인생을 파괴한 범인으로 돔을 지목한 그 모든 것을 걸고 돔을 안과 밖으로 무너뜨리겠다며 돌진합니다. 하나가 되어 맞서곤 하는 동료들조차 단테의 치밀하고 잔악한 계획에 뿔뿔이 흩어지고 만 그 때, 돔은 자신보다 더욱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마지막 질주를 시작합니다.


 동네 차 도둑들이 정말 멀리도 왔습니다. 시작은 영 정의롭지 못했으나 어느새 쿨한 의적의 아이콘 비스무리한 것이 되었고, 다른 영웅들이 정의를 부르짖을 때 가족이라는 한 우물만 판 덕에 가족들을 소중히 여기면 <분노의 질주> 열심히 봤냐는 밈이 다른 영화에 등장할 지경이 되었죠. 그런 시리즈도 이제 마지막을 향해 달려왔으니, 지금까지 보여줬던 것들을 넘어서면서도 근원으로 향하게 되었습니다.



 시리즈 전편들이 매번 그랬듯 이번 <라이드 오어 다이> 역시 판은 비슷합니다. 비록 지금은 무엇이 옳고 그른지 판단할 입지에 올라섰다고 하지만, 법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과거의 망령은 죽을 때까지 돔의 뒤를 쫓고 있었죠. 오웬 쇼와 데커드 쇼 형제가 차례로 나섰던 전편들에 이어 또 다시 과거 악역의 가족이 돔에게 복수하겠다며 나섰으니, 5편 <언리미티드>의 헤르난 레이에스의 아들 단테입니다.


 시리즈가 거듭할수록 주인공은 범접할 수 없는 경력의 소유자가 되다 보니, 새로 투입하는 캐릭터도 자연히 상향 평준화될 수밖에 없습니다. 전편에서 주먹 하나로, 손가락 하나로 세상을 집어삼킬 것처럼 굴었던 악당들은 순한 양이나 동료가 되어 옆에 서 있고, 새로운 적은 몇 년만 일찍 만났으면 돔 따위는 아침밥으로 먹을 것처럼 무시무시한 포스를 뽐내죠.


 제이슨 모모아의 단테는 정확히 그런 인물입니다. 딱히 기억은 잘 나지 않는(...) 예전 악당의 아들이라는데, 무지막지한 자본 덕에 용병을 무한대로 끌고 다니는데다 도덕 따위에 구애받지 않죠. 돔이 언제 어떻게 움직이든 그를 예상했다는 듯 행동하고, 천하의 토레토 패밀리가 외부의 도움 없이는 상대할 수 없는 치밀함 덕에 그래도 정말로 '일생일대의 위기'가 마케팅용 과장이 아닌 것처럼 보이기는 합니다.



 다만 악역은 한 명인데 비해 이제 너무나도 커진 도미닉 토레토 패밀리는 다소 둔중합니다. 하나하나 잠깐씩만 나오기에도 이제는 머릿수가 너무나 많습니다. 그러지 않아도 극중 어떻게 죽어도 결코 죽은 게 아닌 시리즈인 탓에 시리즈 동문회를 방불케 하는데, 단테의 계략으로 각자 이리저리 흩어진 통에 돔 없이 따로 노는 덩어리들이 각자의 전개를 모두 다르게 가져가죠.


 이는 당연히 매끄러운 전개를 방해합니다. 누구 하나 조연으로 밀려날 배우들도 아닌데, 문제는 이들의 액션이 <분노의 질주>의 것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죠. 대부분은 운전대 앞이 아닌 땅 위에 서서 맨몸 대결을 이어갑니다. 물론 액션 영화로는 합격선을 넘지만, <분노의 질주>에 기대하는 종류의 액션은 아니죠. 테즈와 로만이 서로 주먹질을 하는 순간은 이걸 러닝타임에 넣었다는 사실을 믿을 수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영화는 그것을 제외하고도 너무나도 많고 다양하며 값비싼 볼거리를 준비했습니다. 그것도 그냥 멍청하게 때려부수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방향성과 목적성을 가지고 예술적인 폭발을 지향하죠. 터지고 부서지는 광경이 반복되다 보면 어느 순간 머릿속이 멍해지면서 저걸 다 터뜨릴 돈으로 할 수 있는 일들이 문득 생각나곤 하는데, <라이드 오어 다이>는 놀라울 정도로 그 균형을 잃지 않습니다.


 정점을 찍었던 7편 이후 이제는 진지한 건지 웃기려는 건지 가끔은 아리송했던 중심을 다시 잡았습니다. 모터 소리와 자잘한 불꽃으로 조금씩 분위기를 고조한 뒤 하이라이트에 이르러 아드레날린을 최대한으로 분비시키고, 그것이 떨어지려는 순간 할리우드의 거대 자본만이 해낼 수 있는 물리 법칙의 파괴로 <분노의 질주>만이 보여줄 수 있는 볼거리를 완성하는 공식에 통달해 있죠.



 트랩 비트가 깔리며 바뀌는 전 세계 각지에서는 구르고 굴러 도시를 초토화하는 거대 폭탄부터 90도에 가까운 댐을 질주해 내려오는 탈출까지, 2시간 20분짜리 놀이기구를 타는 것 같습니다. 그저 보고만 있어도 내 혈관에 나도 모르게 흐르고 있었던 휘발유(?)가 혈류를 거슬러올라 머리를 뜨겁게 하죠. 그 보는 맛은 제이슨 모모아, 브리 라슨, 다니엘라 멜키오르, 앨런 리치슨 등 새로운 얼굴들로도 이어지구요.


 그 가운데엔 물론 도미닉 토레토가 있습니다. 극중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경험을 안고 이 곳까지 왔지만, 이제는 정말로 자신에게 소중한 것들을 새삼스레 정리하며 삶을 되돌아보는 인물이죠. 자신에게도 두려운 것이 있음을 마침내 깨달으며 새로운 내적 성장을 이루어내고, 그를 바탕으로 또 다시 예전이라면 하지 못했을 정신적이고 물리적인(!) 성취에 가까워집니다. 



 장점과 단점이 아주 명확한 영화입니다. 다행이라고 한다면 단점들은 한눈팔지 않고 10편을 이어 온 뚝심의 필연적인 부산물이고, 장점들은 과거의 성공을 바탕으로 그래도 다시 한 번 새로운 것을 보여주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 결과물이라는 것이겠지요. 시작할 때는 상상하지 못했던 명성에 짓눌리지 않고 스스로의 정체성을 끊임없이 재생산하는 시리즈가 완성되어 가고 있습니다.


 이런 영화들이야말로 여전히 극장과 상영관의 필요성을 증명하는 영화가 되겠죠. 순전히 4D로 관람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별점을 최소한 반 개는 더 줄 수 있을 정도로 엄청난 관람이었습니다. 시퀀스 하나가 끝날 때마다 모든 관객들이 몸을 제자리에 돌려놓으려 고쳐앉아야 했는데, 격렬함만 따져 보아도 지금껏 4D로 보았던 영화들 중 감히 비교할 작품이 떠오르지 않네요.



 피날레를 예고하며 엄청난 것들을 잔뜩 들고 왔고, 더 많은 것을 예고하며 마지막의 마지막만이 남았습니다. 왜인지 최근 들어 돈만 되면 무한정 이어가는 것처럼 보이던 할리우드가 과감히 한 세대를 마무리하는 영화들이 비슷한 시기에 몰아서 나오고 있는데, 이제는 이것도 끝을 향함에 씁쓸하면서도 '긴 시간이 지나고 다시 만날 때 모두 다 이야기해 줄' 존재가 새삼 따뜻하기도 합니다.

작가의 이전글 <웅남이> 리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