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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지 Jul 16. 2023

<택배기사> 리뷰

알맹이 없이 박스만 한가득


<택배기사>


 <감시자들>, <마스터>의 조의석 감독이 넷플릭스와 손을 잡고 선보인 시리즈, <택배기사>입니다. 이윤균 작가의 동명 웹툰을 원작으로 김우빈, 송승헌, 강유석, 이솜, 김의성, 이주승 등이 이름을 올렸죠. 제작비 250억 원을 들여 6부작으로 만들어졌고, 지난 5월 12일 6부작이 모두 한꺼번에 공개되었습니다. 원제가 <택배기사>인 반면 영어 제목은 사뭇 다른 <Black Night>로 지어졌구요.



 극심한 대기 오염으로 산소호흡기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2071년, 세상은 산소를 권력 삼아 꼭대기에 선 천명그룹이 세운 법칙대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각지의 사람들에게 산소를 배달하는 택배기사는 천명그룹의 후광을 가장 빠르게 안을 수 있는 새 직종으로 각광받고, 그 중 비범한 싸움 실력을 갖춘 전설의 택배기사 5-8은 누구도 모르게 세상의 전복을 꿈꾸고 있죠.


 소재나 포스터만 공개되었을 때 상상했던 것은 <매드 맥스>나 <데스 스트랜딩> 정도에 가까웠으나, 예고편이 공개되고서부터 서서히 밝혀진 줄거리는 의외였습니다. 폐허가 된 세상에서 권력을 잡으려는 독재자 내지는 독재 기업에 맞서 싸우는 반란군의 이야기에 가까웠죠. 물론 <매드 맥스>도 비슷한 이야기긴 하지만, 이 쪽은 차라리 <엘리시움>이나 <알리타: 배틀 엔젤>과 연결점이 더 많습니다.



 '폐허가 된 세상에서 산소를 배달하는 택배기사'는 분명히 관심을 사로잡는 소재지만, '독재자와 맞서 싸우는 반란군'의 신선도는 확실히 그보다는 떨어지는 편이죠. 전자는 어디서도 본 적이 없는 듯하나, 후자는 많은 장르에서 다양한 장소를 무대로 너무나 많은 훌륭한 작품들을 배출한 전제였으니까요. <택배기사>라고 그런 작품이 되지 못하리라는 법은 없었지만, 애석하게도 결과는 어느 쪽도 아니었습니다.


 처음부터, 그리고 다 끝나고 나서도 불분명한 것은 각본 전체의 초점입니다. 당장 이 시리즈를 다 본 사람에게 그래서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 누구냐고 물으면 김우빈의 5-8과 강유석의 사월로 반반이 갈릴 겁니다. 그리고 이 시리즈가 캐릭터를 중심으로 진행되는지, 사건을 중심으로 진행되는지 물으면 거기서 답변은 절반씩 갈릴 것이구요. 이야기의 중심이 없습니다.



 5-8은 어느 모로 보나 이미 완성되어 있는 캐릭터입니다. 심지어는 폐허가 된 세상에서 메이크업과 헤어, 눈썹 관리까지 잊지 않죠. 신체능력부터 임기응변 등 더 이상 성장이나 발전의 여지조차 있을 수 없습니다. 드라마가 시작하는 순간부터 이미 그렇습니다.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주인공이어서는 안 되는 인물임에도 <택배기사>는 이 캐릭터를 놓지 못합니다. 


 포스터와 예고편을 꽉 채워서 서 있는 김우빈의 5-8이 당연히 주인공이어야 할 것 같은데, <택배기사>는 왜인지 사월이라는 캐릭터에게 그에 못지않은 스포트라이트를 계속해서 비춥니다. 난민, 택배기사, 돌연변이, 반란군 등 온갖 책임지지 못할 설정을 한 곳에 몰아넣은 인물은 5-8이 아닌 사월이죠. 보다 보면 5-8이 주인공이어야 되는데 사월이 방해를 하는 건지, 혹은 그 반대인지조차 흐려지기 시작합니다.



 사월은 정확히 말하자면 성장형 캐릭터라기보단 될성부른 떡잎형 캐릭터입니다. 이미 완성이 되어 있는데 본인을 포함한 그 누구도 깨닫지 못하고 있죠. 5-8이 그를 발견하고 이끌어 세상에 내보내는 역할을 하는데, 문제는 언급했듯 5-8 또한 스스로의 밥그릇을 챙기고 밥을 먹느라 정신이 팔려 있다는 겁니다. 결국 위에서 보면 사월의 이야기, 5-8의 이야기, 그 둘의 이야기가 모두 따로 놀게 되죠.


 그런데 무대는 멸망한 지구입니다. 그 지구에서는 난민과 천명그룹의 계급 및 대립 관계가 형성되어 있습니다. 이들의 직업은 산소를 배달하는 택배기사입니다. 사실 사월과 5-8의 이야기에만 집중하겠다고 결심하면 이 세 문장은 각본에서 도려내는 것이 맞습니다. 도려내지 못할 것이라면 정말 신경조차 쓰이지 않는 배경 정도로 멀찍이 두고 달려야 합니다.



 그러나 <택배기사>는 이 모든 것을 하나하나 챙기고 싶어합니다. 이 줄기에는 저 캐릭터가 있고, 저 줄기에는 요 캐릭터가 있습니다. 이솜의 정설아, 배유람의 5-7, 남경읍의 류 회장과 진경의 대통령, 김의성의 할배와 이주승의 쓸모 등 곁다리로 끼어드는 캐릭터들과 그들이 섞여서 벌어지는 부수적인 한눈팔이들이 지독히도 많죠. 


 이 한눈팔이들이 누군가의 전진에 기여한다면 한눈팔이라고 부를 수 없겠지만, 제아무리 호흡이 여유로운 TV 시리즈라고 해도 아예 다른 이야기들을 접점도 없이 붙여만 놓은 것 같습니다. 극중 꽤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사월과 난민 친구들의 이야기만 따져 봐도 5-8과 천명그룹의 이야기와 전개는커녕 분위기까지도 아무런 상관도 연관성도 없죠. 



 게다가 이렇게 이어붙인 이야기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뻔하고 익숙하며 매력이 없습니다. 전형적인 10대 다혈질, 전형적인 무뚝뚝한 강자, 전형적인 악독한 재벌이자 아버지에게 인정받지 못한 아들 등 주요 인물들은 그저 판에 박혀 있고, 조연들은 만화적으로 과장된 외모와 말투 등으로 몰입에는 여전히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고 한아름 안고 있는 설정들 때문에 엄청나게 중요한 것으로 다루어질 것 같다가 무책임하게 버려지는 것도 많습니다. 어찌됐건 후반부는 계급 사회의 전복이라는 거대한 사건을 다루게 되는데, 그러면서 산소가 귀한 세상이라거나 택배기사가 대단한 직업이라거나 돌연변이라는 게 세상에 있다거나 하는 초반부의 주요한 설정들은 일단 알겠다는 듯 무미건조하게 넘어가죠.



 그 끝에 남는 것은 <택배기사>가 시리즈 내내 보여준 것과 같은 폐허입니다. 비싼 돈을 들여 무지막지한 것들을 들고 와서 신나게 깔아놓았는데, 정작 무엇을 어떻게 보여줘야 할지 고민조차 하지 않고 눈길 손길 가는 대로 읊는 광경이죠. 계량되지 않은 채 과하게 풀어놓은 것들이 걷잡을 수 없이 흩날려 날아가 버렸습니다. 모였던 기대에 비해서도 꽤나 초라한 결과물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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