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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지 Jul 16. 2023

<인디아나 존스: 운명의 다이얼> 리뷰

주객전도 퇴임식


<인디아나 존스: 운명의 다이얼>

(Indiana Jones and the Dial of Destiny)

★★☆


 시대를 풍미한 캐릭터들의 은퇴작들이 하나둘 나오고 있는 가운데, 스티븐 스필버그와 해리슨 포드의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도 마침내 최종장을 맞이했습니다. 직전 4편으로부터 15년, 1편으로부터는 무려 42년이 흐른 <운명의 다이얼>이죠. <로건>의 제임스 맨골드가 메가폰을 잡고 해리슨 포드, 매즈 미켈슨, 피비 월러-브리지, 보이드 홀브룩, 안토니오 반데라스 등이 이름을 올렸습니다.



 1969년 뉴욕, 전설적인 모험가이자 고고학자인 인디아나 존스 앞에 대녀 헬레나와 오랜 숙적 폴러가 등장합니다. 그들의 목표는 단 하나, 나치 독일 시절 인디아나 존스가 폴러와의 맞대결에서 손에 넣었던 운명의 다이얼이죠. 다이얼을 완성해 작동시키면 역사의 흐름을 바꿀 수 있다는 일념 하에 인디아나 존스와 헬레나, 그리고 폴러는 전 세계를 무대로 하는 새로운 모험을 떠납니다.


 대부분의 팬들은 시리즈에 끼워주고 싶지도 않아하는 4편 이후 15년, 돌아오지 않을 것 같던 인디아나 존스가 돌아왔습니다. 그것도 액션을 직접 소화하는 것은커녕 신작에 그대로 출연한다는 사실만으로 감탄이 나오는 해리슨 포드를 데리고 왔죠. <스타 워즈> 시리즈의 한 솔로, <블레이드 러너>의 릭 데커드에 이어 세기를 넘은 시리즈에 직접 마침표를 찍으러 나타났습니다.



 이쯤 되면 영화의 줄거리를 아주 망치지만 않으면(4편이 거의 그런 것이나 마찬가지였지만) 팬들은 두근대는 가슴을 부여잡고 기꺼이 극장으로 향할 영화입니다. 스피커에 울려퍼지는 OST와 함께 중절모와 채찍, 가죽 자켓을 차려입은 인디아나 존스가 특유의 째지는 주먹 소리를 내며 달려가는 모습만 보아도 그 때 그 시절로 돌아간 것만 같을 테니까요.


 그것을 잘 알고 있는 이번 <운명의 다이얼>은 기본적인 틀부터 전작들의 향취를 흠뻑 묻혔습니다. 제멋대로에 괴팍한 인디아나 존스가 세계를 지배할 유물을 걸고 나치들을 때려잡으려 하죠. 1편만 하더라도 정의로운 영웅보다는 사리사욕으로 가득한 도굴꾼에 가까웠지만, 상대가 나치들이라면 뭘 어떻게 해도 정당한 것이 될 테니 별다른 설명이 필요없습니다.



 이번 영화의 중심에 있는 운명의 다이얼이자 '안티키테라'로 불리는 물건엔 시리즈가 지나간 세월이 한껏 반영되어 있습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수학자로 칭송되는 아르키메데스의 발명품으로, 사용자에게 시간을 지배할 힘을 준다고 알려져 있죠. 나치 독일은 이를 통해 못다한 야망을 이루려 하고, 인디아나 존스는 그런 그들을 저지해 다시 한 번 세상을 구하려 합니다.


 다만 이제 늙고 지친 인디아나 존스를 대신해 일선에서 뛰어다닐 도우미가 필요합니다. 바로 피비 월러-브리지의 헬레나죠. 가문의 유전자를 충실하게 물려받아 엄청난 고고학 지식과 담력을 타고난 헬레나는 도무지 알 수 없는 속내로 나치들은 물론 함께 다니는 인디아나의 앞길마저 불투명하게 합니다. 바로 그런 면모가 주인공 일행에게 닥친 위기를 해결하는 원동력이 되기도 하구요.



 그러나 한편으로는 헬레나라는 인물이 '인디아나 존스 영화'라는 정체성을 정면으로 공격하기도 합니다. 인디아나 존스라는 캐릭터는 수십 년의 세월과 네 편의 영화를 통해 팬들의 마음 속에 단순한 영화 캐릭터 이상의 의미를 형성했습니다. 뛰어난 능력의 소유자이기도 하지만 팬들과 함께 나이들어가며 일종의 동료 의식을 불어넣었죠. 잘 만든 캐릭터가 오랫동안 현역이어야만 가능한 성과입니다.


 분명 이번 영화엔 인디아나 존스의 그런 면모를 십분 활용한 전개도 여기저기 쓰입니다. 나이가 지긋하게 든 캐릭터들이 다시금 왕년의 착장으로 돌아온 인디아나를 보며 놀라움과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수줍게 고개를 끄덕이는 인디아나의 모습은 마치 이토록 오랜만에 다시 만난 팬과의 교감을 스크린에 담은 것만 같죠. 덕분에 '인디아나의 오랜 친구'라는 한 줄로 새로운 인물들의 설명을 생략할 수도 있었구요.



 하지만 헬레나는 그렇지 않습니다. <분노의 질주> 시리즈처럼 인디아나와 아는 사람의 가족이라는 손쉬운 설정으로 단숨에 인디아나 존스와 동일한 입지를 가져가고, 그를 뒷방 늙은이 취급하며 자신의 영리함과 재기발랄함이 이미 낡을대로 낡은 인디아나를 모든 방면에서 상회할 것이라 생각하죠. 게다가 영화는 그런 헬레나를 존중해 인디아나가 곤경에 처하고 도움을 받는 장면도 꽤 집어넣습니다.


 거기에 헬레나를 쫓아다니는 꼬맹이 테디까지 등장하며 인디아나의 입지는 더욱 좁아집니다. 종이에 대충 그린 계기판으로 연습하는 장면 한 번 나왔으니 비행기 조종까지 해내도 문제없지 않냐는 뻔뻔함이 절정에 달하는데, 보다 보면 이게 인디아나 존스 영화가 맞나 싶은 수준까지 다다르죠. 캐릭터들의 평균을 맞추는 조정 작업의 가장 큰 피해자가 주인공이어서는 안 될 일입니다.



 헬레나와 테디가 전면으로 나서며 인디아나 존스는 물론 악역 폴러와 그의 부하들 또한 전형적인 20세기의 멍청한 악당 꼴을 면치 못합니다. 나치라는 설정만 아니었어도 눈 앞에서 빼앗긴 물건을 되찾으려 애쓰는 불쌍한 사람(...)인 것을 넘어, 인류를 달에 보낸 두뇌임에도 주인공 일행의 꽁무니만 겨우 뒤쫓아다니며 실속 없는 무게만 잡다가 역시 나치는 때려잡아야 제맛이라는 공식의 재료로 쓰이죠.


 무너진 중후반부를 벌충하려는 듯 최후반부엔 인디아나 존스에게 바치는 헌정이나 마찬가지인 대사와 연출을 쏟아붓는데, 당연히 효과는 있으나 이번 영화와는 별개의 장면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직전까지 누가 어떻게 등장했어도 그 흐름과 무관하게 집어넣을 수 있는 장면이죠. 안티키테라의 행방은 물론 인물들의 감정선 등 갑자기 뚝 끊겨 일단 박수부터 유도하고 보는 눈속임입니다.



 사건보다는 인물에 훨씬 치중한 작품인데, 그것마저도 이번 영화의 공은 절대 아닙니다. 인디아나 존스라는 아이콘에 기대어 그의 의의를 영화의 의의로 어떻게든 연결시키려 애쓴 작품입니다. 지난 뒤 회자될 것들은 이번 5편의 줄거리, 폴러, 운명의 다이얼이나 그토록 공들인 헬레나, 테디가 아니라 인디아나 존스의 마지막이겠죠. 그것조차 이번 영화의 무용함을 더욱 강조하고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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