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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깡 Apr 06. 2022

정당하지 않은 꾸지람

이틀 쉼의 대가였는지 아침부터 부담스러운 육아였다.


당연히 범이, 율이는 말을 듣지 않았다.

범이한테 율이를 씻길 때까지 바지 입고, 양말을 신으라고 말을 했다.  

오늘따라 범이가 느리게 참으로 느리게 방바닥에 누워 기고 있었다.

율이를 씻기고, 머리를 말리고 로션을 바르고 팬티와 옷을 입힐 때까지 범이는 여전히 기린과 코뿔소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범이야 엄마가 말하고 있지. 얼른 바지 입어"


그런데도 범이는 전혀 반응이 없다.

소리를 꽤나 꽥 질렀고 회초리를 들겠노라고 겁을 주고 실제로 옷걸이까지 가지고 오니  이미 입은 웃옷에 율이가 입을 티를 꺼 입고 기우뚱기우뚱 엇걸음으로 "목이 아파 목이 아파" 하는 꼴을 보니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순간 범이 쪽으로 옷걸이를 내쳤는데 옷걸이가 산산조각 났다.


율이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파편화된 옷걸이를 주웠고 범이는 손이 아프다고 울었고 나는 범이한테 사과할 시간을 놓아버렸다. 

충분히 나는 나의 잘못을 알고 있었다.


회사에 도착하니, 8시 49분이었다.

지각을 하지 않았고, 팀 내 남자 직원들이 선거업무로 다 자리를 비웠기에 무난한 출근이었다.


밥알이 튕기는 행복


어린이집에 전화해 점심시간에 첫째를 데리고 병원에 가겠노라 거짓말을 했다.


두 시간이 지나서야 켈로이드 흉터처럼 붉은 줄이 선명히 잡힌 아이의 손을 잡고 사과했다.

"미안해 범아. 엄마가 너무 부족해서 소리를 질렀어." 

한 시간 남짓 아이와 일대일 데이트를 하면서 행복했다.

정신없고, 휘몰아치는 아침 일은 다 잊어버리고 밥알을 튕기며 웃는 이 시간..


첫째는 행복을 닮아 있었다.

자세히 보니 아이 살이 오르는 게 보였고, 앞니가 흔들흔들거리는 게 곧 빠질 것도 같았다.

토마토소스가 잔뜩 묻은 손을 닦아주며 눈가를 훔치니 아이가 말한다.

"엄마, 나 맴매하지 마"


 불안감으로 혼내다.


자녀한테 언성을 높이는 것만으로도 죄책감이 일어난다는 엄마들을 보면서 스스로 질 나쁜 엄마임을 깨닫는다.

가장 큰 문제는 둥이를 혼낼 때마다 확고한 기준이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엄마가 자녀보다 힘이 세고 크고 경제적 우위에 있으니 부모 말에 복종해야 한다는 스파르타 식도 없다.


내 안의 조바심, 불안감에 쫓겨 둥이를 혼내는 상황이 많았다.

내가 지각할 것 같으니, 내가 회사에서 받은 스트레스가 많으니, 내가 너희를 재우는 시간이 아까우니 하는 식의 분풀이였다.


그날그날 상처와 원인을 더듬기에는 우리 가족은 너무 바쁘게 산다.

일분일초에 쫓기기 때문에 서로 눈을 보기에 무심해지고, 무심해지기 때문에 불안감에 사로잡혀 둥이를 채근했다.


내 타고난 불안감은 스스로의 각성과 노력에 의해서 개조될 것이라 믿는다.

너무 오랫동안 방전돼서 아주 느린 속도로 충전되겠지만  스스로 큰 에너지를 끌어낼 수 있게끔 가족이 북돋아주고 따뜻하게 안아줄 것이다.


오늘 저녁은 갈치 굽는 냄새로, 두 아들을 테이블에 앉힐 것이다. 첫째는 코를 벌름거리고, 둘째는 의자 위에 뜬 짧은 다리를 시기심으로(첫째와의 데이트) 세차게 흔들 것이다.

밥을 먹이며 약속할 것이다.


온몸이 귀로 덮인 사람처럼,

숨소리 하나까지 놓치지 않고 경청해 주겠다고

혼내기보다 안아주고 뽀뽀해 줄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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