쌓여가는 우리가 생동한 행위의 흔적들, 기억들
친구들과 10월의 필사책이 <아침의 피아노>라서 그런지 ‘아침의 피아노‘의 모습들을 머릿속으로 그려보게 된다. 마호가니색 피아노를 비추는 막 피어난 부드러운 아침 햇살과 피아노 위에 내려 앉은 작은 먼지들, 보면대에 펼쳐진 악보들…우리집 거실에도 한쪽 구석, 10칸으로 이루어진 티크 원목으로 된 책장과 빈티지 뷰로 사이에 피아노가 거실창에 걸린 패브릭을 등지고 놓여 있다. 피아노 뚜껑은 누구든 오며가며 칠 수 있게 항상 열려 있다. 절박하게 당장 연습하고 싶은 곡이 있지 않은 이상, 아이들은 아무래도 평일 보다 주말 아침에 피아노를 치게 된다. 축구와 게임을 좋아 하고, 피씨방에서 수학 학원 숙제를 다급하게 하기도 하지만, 음악과 피아노도 즐기는 중학생 남자 아이 둘째가 스크린 타임이 걸려 있는 아이패드를 가져와 해제해 달라고 하는 사이트는 악보가 가득한 '뮤직 노트' 사이트. 좋아하는 곡이나, 도전하고 싶은 곡을 만나면 악보를 찾아내서 될 때까지 연습하는 모습, 여자 친구에게 전화로 그녀의 신청곡을 연주해 주는 모습, 크리스마스 때 크리스마스 테이블 앞에서 자신이 그동안 연습한 곡을 가족들에게 들려주는 모습 등은 마음 속으로 바라던 꿈이 시간을 뛰어 넘어 순식간에 이루어진 듯한 기분을 들게 한다. 그 사이의 삶의 우여곡절과 좌충우돌은 전혀 없었다는 듯 우아하고 매끄럽게.
피아노를 좋아하는 아이를 보며 한동안 뒤늦게 피아노를 시작해도 콩쿨에서 계속 1등 했다는 조성진과 동네 피아노 학원에 다녀도 영재원에 합격 했다는 임윤찬처럼 ㅋㅋ 본격적인 피아니스트로의 행보를 기대한적도 있지만 지금은 그저 연주 자체를 즐기는 것 이상으로 바랄게 없다. 첫째도 둘째 만큼은 아니지만, 고등학생이 된 지금도 여전히 피아노 치는 것을 좋아한다. 언젠가 '아이가 피아노를 어느 정도 배워 두면 피아노 치는 걸로 스트레스를 푼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그게 과연 가능할까 의심스러웠는데, (나는 피아노 학원을 그만둠과 동시에 피아노 치기도 그만 두었으므로) 입시생이나 다름 없는 첫째가 시험 기간에 유난히 더 피아노를 치는 것으로 시간을 낭비하는 것 같아 내 마음을 조마조마 하게 하다가도, 결국 그것이 자신의 컨디션을 조율하는 과정이었음을 알게 되며 그 이야기가 그냥 도시 전설(?)이 아니었음을 깨닫기도 했다. ㅋㅋ
피아노는 그저 우리집 거실 한쪽에 놓여 있었을 뿐인데, 가족 구성원 따로따로 각자 치고 싶을 때마다 몇분씩 쳤을 뿐인데, 우리집에서 피아노는 그냥 자리만 차지하는 가구가 아니라, 너무나 자연스럽게 우리의 일상에 스며들고, 우리의 시간 속에 있는 존재가 되었다. 우리집 피아노는 동네 쇼핑몰에서 이것 저것 따지지 않고, 그냥 새 제품을 산 것이었다. 사실 이 피아노를 사기 전에는, 우리 집의 중심에 놓이는 물건의 스토리에 대한 집착이 강하여, 마침 미국에 있을 때라 교외의 피아노 전문 매장에서 스타인웨이 중고를 살까도 고민했고, 국제 전화를 걸어 어느 충청도 시골의 피아노 공방에 문의해 보기도 했었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그때 누군가가 SNS에 중고 피아노를 구매 하며, 오래된 피아노의 이력과 그 과정에서 일어난 재밌는 에피소드를 올려서 ‘나만의 피아노 구매기'에 대한 의욕을 더 자극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아무 생각 없이 구매한 '새 피아노'도 우리집에 온 후 사년여의 시간이 쌓이면서 어느새 스토리가 있는 피아노가 되었다. 그 사이 아이들의 손은 자랐고, 연주하는 음악도 달라졌음을 실감하게 하는, 가족 구성원들이 년도별로, 계절별로, 시간별로 그 피아노 앞에서 무슨 곡을 어떻게 쳤는지 드문드문 떠오르게 되는. 그 기억들이 이따금 아침의 피아노 위의 먼지들 처럼 희미하게 반짝이며 되살아난다. 악기는 오래된 것이 길이 들어 좋다고 생각했는데, 피아니스트 임동혁의 말로는 피아노는 무조건 '새것'이 좋다고 하니, 스토리 있는 빈티지 피아노에 대한 집착은 다행히 사라지게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가족만의 추억이 깃들었다고 해도 이 피아노를 혹시 정리해야 될 때가 왔을 때 미련 없이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할머니에게서 악보집을 물려 받았다는 롤랑 바르트 처럼 손수 써놓은 손가락 번호와 메모와 밑줄 그은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는 악보집 정도는 물려줄 수 있겠지만. 공간에 사물이 잠시 머무르며 정물이 되는 풍경은 아름다우나 소유물이 되는 것에 대해서는 신중하게, 사물이 사라져도 우리 가족이 쌓아온 시간, 기억 그리고 우리가 머문 공간과 몸에 생동한 행위의 흔적들은 남겨질 테니.
주말에 가족들이 조금 늦은 아침 식사를 다 마치고, 나는 커피를 내리고 잠시 내 책상 앞에 책을 펴고 앉아 있을 때, 거실 한 구석에서 들려오는 아이들의 피아노 소리는 강박과 집착 없이 자연스럽게 이루어 지는 꿈들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한다. 성취를 위해 열심히, 빈틈없이, 계획대로 사는 와중에도 방심해도 되는 순간, 즐거움이 머무는 순간이 필요함을 깨닫게 한다. 어떤 일의 마감을 앞두고 있을 때, 한 눈을 팔며 마감일이 닥칠 때까지 빈둥 거려도 마감일만 지킨다면 아무 문제가 없음을, 그 회피의 시간들이 오히려 몰입의 에너지가 될 수 있다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한다. 실력 향상을 위해 콩쿨을 준비해야 한다거나, 주 몇회 연습의 횟수를 꼭 지킨다거나, 이 나이에는 이 정도 단계의 진도를 나가야 한다거나, 의 압박감 없이 그저 음악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때론 천천히 속도를 늦추며, 느슨하게 살아간 하루 하루가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만나게 한다. ‘완벽한 연주가 아닌 순간을 향유하며 이루어지는 ‘주말 아침의 피아노가 있는 풍경'은 나에게 삶의 만족감과 쉬어감을 전해준다. 어제에 대한 아쉬움도 미래에 대한 불안도 잠시 잊고, 그저 오늘을 살아갈 수 있게 한다.
피아노 소리는 한동안 잊고 살았던 과거의 추억을 재개시키며, 소리의 기억은 과거로서의 현재, 영원히 잊혀질 과거가 되기 전에 추억으로 채색된 현재를 만들어낸다. 바르트에 따르면 시간을 구성하는 매 순간은 '다가올 과거'이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바르트에게 피아노는 노스탤지어 공장 같은 것이었다. 바르트와 피아노의 관계는 자기 완료적이다. 이 관계는 과거를 회상하며 추억에 잠기는 것이 아니라 현재를 모든 시제에서 구출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피아노는 하나의 추억으로 기억될 준비를 하고 있다.
프랑수아 누델만, <건반위의 철학자 - 롤랑 바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