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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영 Jan 13. 2024

다큐 ‘잘’ 보는 법

한 편의 다큐를 만들고 나니 마음이 아주 복잡하다. 홀가분할 것 같았는데 편집이 끝났다고 끝난 게 아니더라. 영화제별로도 출품 조건에 맞춰 몇 번에 몇 번의 수정을 거듭하고 색도 다시 만지고… 끝났는데 끝나지 않은 기분.


잘 만들고 싶다는 꿈은 끝나버린 지 오래고, 체력도 동력도 마음도 어느 정도 지친 상태가 되어 마무리를 선언하게 됐다. 이젠 맘에 들게 되어 하는 마무리는 아닌 것이다. 차분히 숙고해서 나름의 완전한 결과물을 만들었다기보다는, 스스로 목표했던 것에 좌절하고 타협하는 과정에 더 가까운 것 같다.

화려한 누군가의 타이틀. 데뷔작부터 찬사를 받고 주목을 받고… 감히 그런 걸 꿈꿔보기도 했는데 역시 세상엔 천재는 1프로뿐이고 평범한 사람들이 다른 자리를 채우고 있다.


나의 이 대단한 결과물을 얼른 다른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마음과, 이 부끄러운 결과물을 누구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다는 마음 사이에서 몇 번을 오락가락하다 보면, 인정하든 인정하지 못하든 마무리라는 순간이 온다. ‘끝났다’라고 선언한 이후에도 그 오락가락은 계속된다. 시사회를 막 시작했을 때에는 사람들이 이걸 어떻게 봤는지가 궁금했는데 상영이 다 끝나고 나니 그냥 ‘아 해명하고 싶다.’는 생각만이 가득했다.

촬영본을 검토할 때에도, 그때를 회고하며 쓴 글에서도 다큐는 ‘낙관하지도 비관하지도 않고 묵묵히 내 앞의 현실을 살아가는 작업‘이라고 적기도 했지만, 다큐를 끝낸 지금도 다른 방식으로 내게 비슷한 교훈을 주는 것 같다. 내 다큐가 걸작이라는 건 낙관이고 졸작이라는 건 비관 아닐까. 혹시 만날 관객을 기다리며, 그래도 내 이야기가 조금의 일렁임을 만들어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안고 있는 것.


재밌는 다큐도, 잘 만든 다큐도 많아서 ‘저건 도대체 어떻게 만들었을까. 나도 저렇게 만들고 싶다.’ 생각하게 되는 영화들도 분명 있는데, 사실은 그 영화들도 비슷한 고민의 과정을 거쳐 만들어졌다고 생각하면 위로 아닌 위로가 된다.

그러니까… 다큐를 너무 대단하게, 혹은 어렵게 받아들일 필요가 없는 것이다. 감독은 관객에게 이야길 하고 있는 거다. 강요도 선언도 진리도 아니고 내가 그 시간에서 발견한 어떤 것을.


대화는 적어도 두 명의 사람이 화자도 되었다가 청자도 되는 일이다. 내 다큐는 대화의 포문이 되면 좋겠다. 보고, 이야기하고, 나누고….

한 시간여 동안 누군가 자리에 가만히 앉아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일은… 정말로 감개무량한 일이다. 그러니까 실은… 요즘은 누구나 자기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는데, 그러기 위한 글쓰기 강좌나 책들이 넘쳐나는데, 어떤 나의 빈 시간을 그렇게 자기 계발로 채우기보다 남의 이야기를 듣는 데 써 준다니.

그냥 감사할 뿐입니다. 정말로.


영화를 세상에 던져놓고선… 그냥 막…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이걸 본 사람들의 이야기. 좋다, 나쁘다도 좋은데 사실 좀 더 욕심을 내 보면 어떤 이야기는 어떻게 들렸는지, 어떤 이야기가 와닿았는지 혹은 별로였는지….

만들기 전에는 혹평이 무서울 것 같았는데 (예를 들면 ‘이것도 영화라고 만든 거냐’, ‘왜 만든 지 모르겠다.’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거냐.’ 등…) 이제는 그런 이야기들도 궁금해졌다. 근데 거기서 끝나면 좀 속상해요. 어떤 부분이 그런 생각을 들게 했는지는 알려주세요…

누군가는 내게 해줄 말을 정말 정말 숙고해서 해 줬는데, 당연히 그것도 고마운데 속으로는 좀 이야기를 해줄 때 부담을 덜 가져줬으면 하는 생각도 했다. 내 다큐는 내 이야기이지 내가 아니니까. 그리고 다큐는 내 이야기이지만 그렇다고 그게 나의 모든 생각을 대변하는 건 또 아니라서요.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를 숙고해서 만들었지만, 세상에 내어놓은 다큐는 내가 아니다. 세상에 던져진 다큐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고 그 위에 생각을

틔워내면서 자기의 삶을 살아갈 것이다.


그러니까 다큐 잘 보는 법을 한 문장으로 정리해 보면요…

다큐는 보고 나서 사람들과 막 이야기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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