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 갈 때 어떻게 입을까
아들이 태어나고 옷 선물을 참 많이 받았다. 지금까지도 옷 선물은 끊이지 않는다. 만만하기도 하고 귀여운 나이에 여러 가지 옷을 입히면 또 그 맛이 아이 키우는 행복 중 하나이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아들은 인형이 아니다. 오히려 상남자에 가깝다.
아들에게 옷이란 예쁘든 안 예쁘든 원시인의 동물 가죽과 다를 바 없다. 추우면 입고 더우면 벗는다. (패션 디자이너가 될 미래는 아들의 미래에는 없나 보다.) 꺼내주는 대로 불평 없이 입고 열심히 뛰어논다. 그래서 예쁘고 귀여운 옷은 집에 돌아올 때면 전혀 다른 옷이 되어 있다. 유치원에서 그날 먹은 메뉴를 그대로 묻혀 놓고, 어딘가에 뒹구르고 난 흙이나 먼지가 잔뜩 묻어 있다.
어차피 아들은 패션에 아무런 관심도 없으니 세탁을 최소화하고자 어두운 색 옷만 사자고 말했는데 아내가 단칼에 거절했다. 여러 가지 색이 어울리고, 입히고 싶은 옷도 있다고 하면서 말이다. 몇 번 더 이야기하다가 내가 물러섰다. 아내가 아들 옷 세탁을 오롯이 맡기로 했기 때문이다. 입히고 싶은 사람이 책임진다니까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아들은 그런 엄마의 노력을 아는지 모르는지 한결같은 모습을 보였다. 목 부분을 온몸이 빠져나가게 늘려오기도 하고 순전히 궁금해서 청바지 무릎을 자르기도 하고 매직을 흰 옷에 긋기도 했다. 아내도 생각이 바뀌었는지 유치원용 옷을 따로 구분하기 시작했다. 아들은 여전히 자기 옷을 둘러싼 일들에 대해 관심이 하나도 없었다. 유치원에 갈 때는 막 입고 주말에는 예쁘게 입는다는 사실을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
아주 가끔 패션을 신경 쓰기도 한다.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아이들의 패션처럼 실험적인 시도를 한다. 안 되는 것만 골라서 매치한다. 알록달록은 기본에 맑은 날에 장화, 공룡모양 가방, 등 동묘 저리 가라 할 정도로 꾸미고 현관 앞에 서 있는 것을 보면 웃음이 절로 난다.
그러던 어느 날, 집 앞에 편의점을 가려는데 아들이 갑자기 멈추었다. 잠옷을 입고 밖에 나가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생전 안 하던 옷에 대한 논의를 갑자기 현관 앞에서 시작하니 당황스러웠다. 올해 들어 엄마랑 커플 잠옷이 몇 벌을 구비한 터라 잠옷과 잠옷이 아닌 옷에 대한 개념이 생긴 것 같았다. 놀라운 발전이었다.
나는 아들의 발견에 대해 덩달아 심각한 표정으로 신중하게 설명해 주었다. 집 근처는 잠옷을 입고 잠깐 나갔다 와도 된다고 말해주었다. 그랬더니 철학자 같은 질문을 던졌다. 집 근처는 어디까지가 집 근처인가라고 말이다. 구체적인 장소를 말해주는 게 좋다고 생각하여 집 앞 공원이나 편의점 정도까지라고 말해주었다. 그랬더니 또 집 앞의 홈플러스는 안 되냐고 묻길래 사람이 많은 곳은 예의에 어긋나는 것 같다고 말해주었다. 아들은 어느 정도 개념이 잡힌 듯 드디어 현관 밖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들은 생각을 받아들인 것과 달리 행동에 옮기자 굉장히 쑥스러워했다. 주말의 늦은 오후, 후덥지근한 날씨에 사람은 거의 없었으나 아들은 잠옷을 매우 의식하고 있었다. 몇 번이나 괜찮다고 말해주었지만 잠옷을 입고 나왔다며 중얼거리고 부끄러움과 긴장이 섞인 오묘한 표정을 지었다. 벌써 남의 시선을 의식할 나이가 되었다고 생각하니 좀 슬프기도 했다. 편의점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잠옷이 잘 안 보이게 안아줄까 싶어서 물어보았다.
"아니, 괜찮아."
"잠옷 괜찮아?"
"응."
아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갑자기 잠옷을 입은 게 뭐 어떠냐는 식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입에 문 아이스크림에 정신이 팔린 탓인지 발걸음도 가벼웠다. 김이 샜다. 어쩌면 부끄러움이 아니라 잠옷을 입고 나가는 일탈에 흥분된 표정을 내 맘대로 착각했는지도 몰랐다. 평소처럼 아들의 머리를 아무렇게나 헝클어지게 쓰다듬었다. 잠옷을 입고 편의점 아이스크림을 맛있게 먹는 아들의 모습이 잘 어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