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방혼 Oct 24. 2021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저출산의 기세가 하늘을 찌른다. 합계출산율이 1명 이하라는 수치는 한국이 세계에서 처음이라고 한다. 이러한 기세가 지속된다면, 우리나라의 미래 전망이 좋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현재까지의 저출산 극복 대책은 아이를 낳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만들지 못하는 것 같다.


 그래서일까. 주변에서 아기를 보기 어렵다는 말을 하고, 어르신들이 아기를 쳐다보는 시선도 조금 달라졌다. 어르신들은 아기를 만나면 항상 살갑게 말씀을 하셨지만 지금은 한 마디를 더 붙이신다. 아기와 함께 길을 걷다 보면 나도 모르게 애국자가 되어 있다.


 애국자(?)가 되려고 한 적은 없다. 대학교에 입학할 때만 해도 집값이 지금처럼 종신 대출을 요구하지 않았고 출산율도 최근처럼 급감하지 않고 안정적이었다. 또한 혼자 사는 연예인들이 방송가를 주름잡는 세상이 이렇게 빨리 올 것이라고 상상하지 못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세상이 변하였고, 똑같은 교복을 입고 있던 또래들은 훨씬 더 많이 변하였다. 급변하는 세상에도 불구하고 우리네 부모님들은 당신 자식만은 결혼하여 손주를 가지기 원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비혼주의자의 갈림길, 딩크족의 갈림길에 서 있는 또래가 한 두 명이 아니다. 나는, 어느 사이에 결혼도 하고 2세를 가진 '소수자'가 되어 있었다.


 내 상황은 또래들과 다르지 않았다.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않아 맞벌이를 그만둘 수 없었고 시대의 흐름에 따라 부모님의 잔소리는 힘을 잃어갔다. 자식을 낳을지 말지 결정하는데 큰 방해 없이 충분히 우리의 의사를 반영할 수 있었다. 누구나 그러하듯 자식을 낳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 있었고, 자식 없이도 둘이서 잘 살아보자는 이야기를 나눈 적도 있었다.


 결국엔 자손 번식의 본능에 이끌려서 2세를 낳기로 결정하였다. 물론 모든 게 시간이 지날수록 더 좋아질 것이라는 막연한 전제를 깔아야 가능한 결정이었다. 하지만 2세를 가지는 것은 작정하고 마음먹어도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 부부 또한 좌초의 위기들이 숱하게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들을 가질  있었던 것은 9.9할이 아내 덕분이었다.


 나는 결점이 많은 인간이다. 나를 알아갈수록 나의 유전자 풀은 번식을 멈추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다. 나를 낳아준 부모님도 계시고 나를 선택한 아내도 있지만 내가 나를 견딜 수 없었다. 그래서 나를 닮은 또 다른 누군가가 나와 같은 괴로움을 겪는다면 태어나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삶의 어느 지점부터 괴로움이 나를 압도하더니 결혼 한 뒤에는 아내까지 괴롭게 만들었다. 항상 부부 갈등의 불씨는  담당이었고 시련과 고난 앞에서 힘겨워하는 것도  역할이었다. 만약  곁을 지켜주는 아내가 없었다면, 지금껏 같이 살지 않았을 수도 있고 아들의 웃는 모습을   없었을지도 모른다.


 아내는 대단한 성인군자도 아니며 강인한 정신력을 지닌 사람도 아니다. 오히려 사소한 말에도 쉽게 무너져 내려서 깊은 속마음까지 적나라하게 내비치는 연약한 사람이다. 나약한 속마음을 지키기 위해 날카로운 뿔을 촘촘히 둘러싸고 있는 것이 나라면, 나만큼 나약한 마음을 지키기 위해 물의 표면장력보다 약한 막을 두르고 있는 것이 아내였다.


 우리 사이의 갈등이 절정에 치달을 때마다 나의 날카롭고 단단한 뿔은 아내의 마음을 손쉽게 뚫었다. 그때마다 마주친 아내의 순수한 본성에 너무 미안하고 괴로워서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았다. 아내의 마음이 넝마주이처럼 너덜너덜해져서 멀리서 봐도 아내의 메마른 상처가 뚜렷하게 보일 때가 되어서야 나는 변하였다. 내 마음을 보호하던 뿔의 방향을 고쳐서 아내를 보호하기 시작했다.


 부모의 연과 또 다른 끈끈한 연, 부부의 관계는 살기 어려운 세상을 버틸 수 있는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아내의 상처와 눈물이 밑거름이 되었지만 굳은 땅 위에 빛을 보기 시작한 우리의 관계는 튼튼히 자라서 나를 드높이 올려주었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까지 바뀌게 만들었다.


 사랑하는 아내를 닮은 자식을 낳고 싶다는 본능은 급속도로 힘을 얻어갔다. 나를 변화시킨 아내를 보며 그녀의 겉모습뿐만 아니라 속까지 똑 닮은 아이를 낳고 싶다는 생각이 커져갔다. 내 모습은 하나도 닮지 않은 복제인간을 꿈꾸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엔 아무래도 좋았다. 내 정신머리를 뜯어고친 아내라면 나를 닮을 수밖에 없는 우리 아이를 나보다 더 행복한 사람으로 키우는 것이란 훨씬 쉬운 일이라고 생각이 되었다. 그리하여 아들을 품에 안게 되었다.


아이를 낳은 후 홀몸으로 살아가기도 벅찬 나는 ‘아빠’라는 또 다른 역할을 맡아야 한다는 사실을 아직까지 완전히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묵묵히 걸어 나가야 한다. 윗세대와 다르다고 부르짖었건만 결국엔 하나도 다르지 않다. 그들만큼이나 나는 한 여자와 받들어 평생 함께 살아야 할 까닭을, 아이를 낳아야 할 까닭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들에게 받은 만큼이나 순도 높은 희생과 사랑으로 아내와 아들을 대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은 잘 알게 되었다.

작가의 이전글 흔들리는 편안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