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여전히 "우리'일 수 있는 이유
아들이 태어나면서 우리집은 조용히, 그러나 아주 무참히 함람되었다. 큰돈을 들인 것은 아니었지만 나름 통일된 분위기라 자부했던 공간은 이제 아들을 위한 집이 되어버렸다.
거금을 들여 산 가구들은 모서리마다 보호대가 붙었고, 각진 가구들은 베란다로 밀려났다. 부부의 침대 또한 방수 패드를 깐 가족 침대로 용도 변경이 승인되었다. 이제는 집안에서 부부만의 자리를 찾기란 쉽지 않다. 서로를 '부부'가 아니라 '부모'로 인식하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부부의 시간은 자꾸만 일상에 밀려났다.
어젯밤도 보채는 아들을 '가족의 침대'에 눕힌 후에야, 부부의 시간이 시작되었다. 할 수 있는 건 속삭이거나, 손을 뻗어 얼굴을 어루만지는 일뿐이었다. 그마저도 아들이 깨지 않도록 숨 죽이고 조심스레. 서로를 응시하고 다정한 목소리를 음미하는 일은 늘 그랬듯이 주말로 미뤄두었다.
하지만 주말이 더 힘들다. 하루 종일 붙어 있어야 하는 아들 때문에 하루는 더 길고 정신없다. 주말도 우린 여전히 부부가 아닌 '엄마, 아빠'다. 아들이 너무 사랑스럽지만 영혼이 조금씩 가출하려고 한다.
그때 한줄기 희망이 찾아온다. 부모님께서 아들을 봐주시겠다고 한다. 그제서야 부부의 시계가 다시 돌아간다. 아내는 엄마의 가면을 벗고 오랜만에 나만 아는 얼굴을 꺼내 들었다. 속눈썹이 평소보다 느리게 깜빡이는 것 같고, 입꼬리에 미소가 조금 더 오래 머문다. 거울에 비친 아내의 모습은 오래전 우리의 시간을 떠올리게 했다.
늘 뒷자리에 앉던 아내가 조수석에 앉는다. 슬그머니 손을 내밀어 깍지를 낀다. 이제, 우리가 달려가는 모든 곳은 예전의 풍경으로 돌아간다. 어차피 조금 있으면 아들이 생각나겠지만, 이 순간의 햇살과 바람, 서로의 웃음소리는 온전히 우리 것이다.
그리고 문득 깨달았다.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마주보는 이 순간은 고단한 일상 속 절실한 숨구멍이었다. 그 순간들이 모여, 우리는 여전히 '우리'로 살아갈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