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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시절의 환상에 갖힌 사람들

어린시절의 고통스러운 경험에서 벗어나기위해 만들어진 환상에 갖힌 사람들

어린시절의 기억은 사람에게 잊혀지지 않는 인상을 남겨놓습니다. 성인이 되어서 모든것을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어린시절 경험을 통해서 어떻게 세상에서 살아갈지에 대한 자신만의 방법을 만들어내고 몸에 익히는 시간을 가지게 됩니다. 어린 시절에 사랑받고 공감받는 기억이 많이 있다면, 그러한 대응을 세상에 기대하고, 그에 반응해서 살아가는 자신만의 방법을 몸에 익히게 됩니다. 만약 어린시절 가족들에게 받아들여지지 않고 공감받지 못하고 착취를 당했다면, 나중에 성인이 되어서도 세상이 자신을 받아들이지 않고 공감해주지 않을 것을 기대하고, 이러한 상황에 반응하는 자신만의 방법을 몸에 익히게 됩니다. 이러한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은 몸에 기억되고 무의식에 자리하기 때문에, 어른이 되어서 자신이 어렸을 때 어떠한 경험을 했고, 어떠한 대응방법을 학습했는지에 대해서는 잊어버리게 됩니다. 하지만 이러한 대응방법과 감정과 믿음들은 향후 삶을 살아가는데 막대한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따라서 자신이 세상을 어떻게 생각하고, 어떠한 대응방법으로 살아가는지를 이해하는 것은 상당히 중요한 요소입니다. 물론 건강한 가정에서 행복하고 가족간에 사랑이 넘치는 집안이라면 세상을 긍정적으로 살아가고, 정상적인 대응방법을 몸에 익혔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래서 따로 특별한 노력을 하지 않아도 자연적으로 행복하고 즐거운 삶을 살아갈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건강하지 않은 가족에 태어나서 건강하지 않은 대응방법을 익힌 사람이라면 살아가면서 여러가지 고통을 경험할 가능성이 많이 있습니다. 그것도 특별한 원인을 찾을 수 없는 고통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사람들은 자신의 어린 시절과 몸에 익힌 대응방법을 잘 이해하고 그러한 상황들이 자신에게 만들어낸 고통을 조금 더 자세하게 들여다 볼수 있어야 합니다. 


유년시절에 행복한 삶과 건강한 대응방법을 몸에 익힌 사람들은 따로 이야기를 할 필요가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고통스럽고 힘든 삶을  어린시절 경험했던 사람들이 부적응적인 대응방법을 만들어내고 몸에 익혔을때 나타나게 되는데, 이러한 사람들이 어떻게 다시 건강한 삶으로 돌아갈수 있을지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주디스 허먼 (Judith Herman)은 1992년 발행된 그녀의 저서 "트라우마 그리고 회복" (Trauma and recovery)에서 3단계 프로그램을 이야기 했습니다. 


1단계: 안전과 안정화 (Safety and Stabilization)

일반적으로 고통스러운 유년시절을 지냈던 사람들은 정서조절에 어려움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리고 성인이 되어서도 사회생활과 가정생활에서 어려운 상황을 마주하게 되면 정서조절이 어렵기 때문에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 떨어지고 상황이 악화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따라서 안전을 느낄수 있고 감정을 안정시키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개인마다 다양한 방법이 있을수 있기 때문에 획일적인 정답을 할수 없지만, 안전을 확보하고 정서적인 안정을 확보할수 있는 자신만의 방법을 찾는것이 중요합니다. 저의 경우에는 산에서 등산을 한다거나, 위빠사나 명상, 감정적으로 성숙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그러한 공동체와 같이 시간을 보내는 것, 관련된 책을 읽는것이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2단계: 기억하고 애도함 (Remembrance and Mourning)

트라우마를 기억하고 처리하는 과정과 어린시절 주 양육자와의 관계에서 경험했어야 할 따뜻함과 공감들 그리고 마음을 열고 대화하는 는 기회들을 갖지 못한 것에 대한 슬픔을 처리해야할 필요가 있습니다. 어떤 경우는 트라우마의 고통스러운 상황이나 기억을 생각하기조차 싫어하고 두려워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고통스러운 기억을 일부러 부정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떤 경우는 전문가의 도움없이 혼자 그러한 기억들을 다시 생각하려고 하다가 트라우마가 심해지는 경우도 있을수 있습니다. 저의 경우는 EMDR (Eye movement desensitization and reprocessing)이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개념적으로는 트라우마의 기억을 떠올리고 그 시점에 눈을 좌우로 움직이는 형태의 치료 방법인데, 극도로 고통스럽고 견디기 어려운 감정기억을 줄여주는 역할을 합니다. 현저하게 고통의 수준을 줄여주는 역할을 합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서 트라우마의 기억들을 처리하고, 유년시절 따뜻하고 사랑받는 환경을 경험하지 못한 것에 대해서 슬퍼하고 애통하는 시기를 갖는 것입니다. 


3단계: 재연결과 통합 (Reconnection and Integration)

고통스러운 기억들을 돌아보고, 그러한 슬픔에 대해서 애도하는 시간을 어느정도 가졌다면, 이제 그러한 기억들을 다시 나의 삶과 연결하는 작업을 해야 합니다. 고통스러운 기억들은 그동안 무의식 속에서 잊혀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너무나 고통스럽기 때문에 의식수준으로 떠올리지 못했던 부분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고통스러운 부분이라도 우리의 삶의 한 부분이기 때문에 부정하고 인정하지 않으면 우리의 삶은 조각날수 밖에 없습니다. 가족세우기를 만든 버트 헬링거(Bert Hellinger)는 "어두움의 영향력을 직면하는 사람만이 그들의 강인함의 원천과 연결될수 있습니다.(Only those who confront the dark forces are connected to the roots of their strength.)" 하고 말했습니다. 분석 심리학을 만든 칼 융은 "그림자 작업"의 중요성에 대해서 언급했습니다. 고통의 기억을 회피하면, 성장으로 나아갈수 없습니다. 고통을 마주하고 그 안에 담겨있는 의미를 알아낼때, 그 안에 담겨있는 비밀과 힘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수 있습니다.   


저는 저에게 있는 트라우마의 존재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하고 너무 오랜시간을 보냈습니다. 무지라는 어둠속에서 어린시절 생존하기 위해서 만들어 놓은 환상과 잘못된 믿음, 그리고 대응방법을 가지고 중년의 시기까지 살아온 것입니다. 더이상 작동하지 않는 삶의 방식을 너무나 오랜동안 사용해 왔던 것입니다. 알량한 자존심때문에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기 까지도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이제는 그 과거의 저의 모습으로 돌아가기도 싫고, 돌아 갈수도 없습니다. 어린시절의 환상과 거짓말 속에서 인생을 마무리하고 싶지는 않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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