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퍼 아키텍처에 관한 글에 덧붙여
금본위 제도가 폐지된 이래로 우리는 비물질에 기반한 가상의 가치체계 위에서 살고 있다. 가치와 물질성의 분리는 스마트폰 이후로 더욱 가속화되었다. (우리는 작은 판 하나 들고 그 화면 안에서 산다) 물질의 무게가 제거된 삶을 많은 이들이 ‘납작해진다’는 이유로 부정적으로 바라보지만, 이미 새로운 세대는 우리가 납작해졌다고 부르는 곳에서 새로운 차원을 열어서 살아가고 있다. 이는 기성의 시각에서 잃게 되는 것이 많아 보인다 하여도 막을 수 없는 흐름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건축’, 특히 그 안에서 디자인으로 발현되어온 사유와 창작의 영역이 ‘건물’이라는 물질세계에 구속될 필요가 있을까? 사실 건축과 건물은 많은 교집합을 가진 별도의 가치체계를 가지고 있다. 이 공존의 기원은 르네상스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알베르티가 건축가의 역할을 notation에 기반하여 ‘건물에 관한 그림’을 그리는 것으로 분리-규정한 것에 기인한다. 이후로 건축은 form 자체에 대한 고유한 실험과 사유를 독자적으로 쌓아왔다. 페이퍼 아키텍처는 여기서 비롯된 다양한 실험들의 흔적이자 결과들이다. 이에 담긴 순수한 사유와 조형, 그리고 중력과 물성과 기능의 부재를 고려해보면 건축은 어쩌면 오래전부터 건물로부터의 독립을 바라 왔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지식체계를 담아낼 적절한 매체의 부재로 인해, 건축은 여태까지 건물에 기생하여 자신들의 사유와 실천을 현실에 증명하는 것으로서 실존적 가치를 획득했는데, 이는 굉장히 많은 부작용을 낳았다. 이를테면, 사람들로 하여금 건물과 건축을 헷갈리게 만들었다는 점이 대표적이다. 그리고 건축을 통해서만 건물에 대한 사유와 전문성을 획득할 수 있다는 깊은 편견을 심어주었다. 건물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건축가가 지속적으로 건물 구축에 집착을 보이는 상황이나, 사회가 건물에 대한 전문가를 필요로 하는데도 학교는 무비판적으로 건축에 대한 전문지식을 모든 학생에게 주입하는 등이 이에 해당하는 사례일 것이다.
나는 이 지점에서, (창작적 관점의) 건축을 위해서,
그리고 (현실적 관점의) 건물을 위해서,
건축과 건물의 완전한 분리를 상상한다.
건물에 대해 덧붙이자면, 현대 건물의 독립적인 가치체계는 산업화와 모더니즘 이후에 실질적으로 형성되었다고 볼 수 있다. 렘 쿨하스가 Junkspace를 통해 지적했듯, 현대 건축물들은 거대한 기계장치와 다름없어졌다. 설비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프로그램도 세분화 및 고도화되면서, 기능이 명확한 공간들의 계획과 구현의 전문성은 소위 아키텍트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지 않은지 오래다. 쇼핑몰, 종합병원, 지하철역, 아파트 단지 그리고 공장 등이 이에 해당한다. 각 종류별 공간들엔 모두 저마다의 특수성을 이해하는 설계 전문가들이 존재한다. 그들은 전통적 의미의 건축가는 아니지만 해당 공간의 본질을 구현해낸다. 그들의 역할은 오히려 엔지니어-매니저에 가까우며 해당 전문지식들은 전통적인 건축-아카데미를 통해 존재하거나 축적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