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도덕]
주인공 지수의 동생 해수는 임신했다. 작품은 지수가 해수의 뱃속에 있는 태아에게 쓰는 전언의 형식으로 전개된다. 해수는 자신이 출산을 하는 것은 행복을 선택한 일이었다고 말한다. 지수에게 동의를 구하는 눈을 하고 자신의 선택이 옳았음을 인정받고 싶어 한다. 지수는 해수가 행복하길 바란다고 얘기해준다. 지수는 낙태죄 헌법 불합치 판정을 위한 글을 쓰는 산부인과 의사이다. 판정을 위해 모인 의사들은 글을 써 합평한 뒤 퇴고 후 게재하는 모임을 가진다. 작품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임신중지를 두고 말을 주고받고 삶을 산다.
어떤 의사는 초음파 사진을 기억하며 임신중지에 대한 죄책감을 느끼고 힘들어한다. 그가 수술한 환자의 초음파 사진은 임신 8주의 것이었다. 의사는 그것이 태아가 아닌 배아이고 사진 속에서는 덩어리나 다름없다는 사실을 몹시도 잘 알고 있다. 이는 임신중지에 대한 관습적인 재현이 의사에게까지 깊이 작용하는 일을 보여준다. 나 또한 임신중지를 생각할 때 관습적 편견에서 얼마만큼 자유로울지 알 수 없다.
또 다른 어떤 의사(희진)는 “옳다고 여기는 거랑 말해져야 하는 게 늘 같을 수는 없더라”라고 말하며 당신은 도덕적 우위를 잃을 수 없다고 말한다. 이를 테면 임신중지는 다음 임신을 전제한 채 유보하는 일이라는 주장, 절박한 상황에서 연민으로 합의되는 임신중지의 사례를 내세우는 주장이 그러하다.
‘도덕적 우위’는 이러한 사실을 차치시킨다.
“...... 임신중지를 겪은 모든 여성이 동일하게 경험하리라 가정되는 비감은 그들에게 생명을 폐기시켰다는 자기 인식을 갖게 해 스스로를 비윤리적인 존재로 획일화하도록 만든다.” , “.....임신중지가 언제나 예외 없이 한 여성의 절실한 고민 끝에 나온 결정이라는 고정관념은 그것이 항상 절박한 상황에서 절박하게 취해져야만 하는 조치처럼 여겨지게 만들 수 있다.”, “...... 이러한 논리 끝에 임신중지가 고통을 수반하는 행위로만 가정된다면 우리의 주체성은 지워질 것이며, 타인의 선의에 의해 구조받는 나약한 존재로만 재현될지도 모른다.”
지수가 참을 수 없어 쓴 글의 일부이다. 모임에서 반려될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썼다. 우리는 도덕으로 회수되어서는 안 된다. 사회적 규범 속 행복을 ‘나의 선택’으로 치환하지 않고 의심해야 한다. 의심하는 일을 미루지 말아야 한다.
지수는 ‘다른 세계’에 관해서 잠깐 말한다. 조카(해수의 태아)가 태어나든 태어나지 않든 너를 사랑하는 일은 굳건하다고 얘기한다. 그가 태어나는 것과 안 태어나는 것 둘 중 하나 만을 지지하는 일이 아니라, 둘 다 상관없다는 말이다. 네가 태어나면 속수무책으로 너에게 빠져들 것이고, 안 태어났다면 지수와 해수는 ‘나란히 각자의 두 발로 자기만의 길’을 걸었을 일이다. 둘 다 아무렴 괜찮을 때 다른 세계를 꿈꿀 수 있고 괴리를 느끼지 않을 수 있다.
지수는 작품 속에서 끊임없이 괴리를 느껴 온다. 해수가 ‘행복’을 좇아 선택한 일이라고 말할 때, 도덕으로 회수되는 희진 앞에서 다른 생각을 가질 때, 논의가 이성애 중심적 사고에 멈추어 동성애자인 자신의 존재가 사라져 있음을 느낄 때, 다른 세계를 꿈꿀 수 없을 때 그렇다. 작품에 말미에 와서 지수의 괴리감은 그친다. 해수의 행복을 빌면서 다른 세계를 떠올렸기 때문이다.
뭐가 됐든 사랑할 것을 알게 되면서 나는 마음이 조금 가벼워지다가 <작가 노트>에서 이 싸움이 시작도 되지 않았음을 알게 된다. 입술에 조금 힘을 준다. 행복을 해체하고 도덕을 의심할 때 우리는 어떤 선택이든 사랑할 수 있다. 어떤 선택이 절박하고 무거워야만 하지 않을 때,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사랑할 수 있을 때 우리는 행복을 ‘선택’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