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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리멀리 Nov 03. 2020

3.11.2020

[대체 언제까지]

 나는 낮에는 청소부이고 밤에는 식당 직원이다. 청소와 서빙을 하게 될 줄 모르고 살아와서 이 분야에는 아무런 스펙이 없다. 배운 대로 청소를 하고 아는 대로 서빙을 한다. 청소는 처음 요령을 익히면 조금씩 실력이 늘어난다. 욕실 안 타일 사이사이에 끼인 때를 제거하는 일, 가스레인지와 전자레인지를 청소하는 일, 진열된 장식품들에 쌓인 먼지를 털어내는 일 등의 번거로움이 전부 내 몫인데 그런대로 조금씩 잘하게 된다. 끝이 없는 일이기 때문에 금방 익숙해지더라도 고수가 되기까지의 길은 멀고 멀다.


 식당 일에는 예외가 많다. 그리고 팀 플레이가 실행된다. 배달 주문과 홀 주문, 테이블 세팅과 그릇 치우기, 계산과 포장이 내 일이다. 하지만 틈틈이 주방을 들여다보아야 하고 어떤 주문이 들어왔는지, 어떤 접시가 먼저인지, 무슨 특이사항들이 있는지 전달해 주어야 한다. 그리고 바쁘게 주방을 오가며 접시를 전달하는 일은 무슨 일이 있어도 가장 먼저이다. 그 일이 꼬이면 조금씩 엉망이 되고 나중에는 뭐부터 해야 할지 모르는 채 머릿속이 정지된다. 그 정지가 얼마나 소란스럽고 위험한지 오늘 처음 알았다. 내 발이 얼마만큼 쉼 없이 뛰어다녔느냐, 내 손이 얼마만큼 바쁘게 움직였느냐, 내 입이 얼마만큼... 하는 것은 별로 안 중요하다. 팀 플레이를 엉망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사장님을 비롯한 나보다 훨씬 오래 일 해온 직원들이 조심스럽게 나의 일하는 방식을 지적했다. 나의 발과 손과 입이 민망해오기 시작했다. 서러움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집에 오는 엘리베이터에서 눈물이 맺혔다. 왜 나는 이렇게 열심히 했나, 왜 나는 식당 직원인가, 왜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일로 돈을 벌 수는 없나, 왜 나는 일을 잘 못하나, 그래서 나는 왜 이렇게 무능한가, 한 문장으로 물을 수 없는 질문들이 엉켜서 흘렀다. 집에서 기다리던 곰이 무슨 일이냐고 물어도 이렇게 초라한 이유로 울고 있는 내가 수치스러워서 한동안 솔직하게 말할 수가 없었다.


 나의 무능이 예고 없이 실감 나는 순간이다. 대학에서 전공한 분야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고 미약한 재능은 거슬리기만 한다. 멋지다, 멋지다, 세계일주라니 정말 대단해, 부러워, 등의 들었던 말들이 머릿속을 스쳐가지만 더는 기분 좋지 않다. 그런 말들이 점차 두려워진다. 왜냐하면 실제로 멋지지 않고 그리 대단한 세계일주도 아니고 나는, 나를 부러워하는 당신들이 부럽기 때문이다.


 먹고사는 일만 하고 싶지는 않았다. 가치를 찾고 싶었고 벅찬 기쁨을 느끼려고 했다. 떠돌면서 배우는 생활은 내가 추구하는 가치에 딱 적합했다. 그러나 여행가를 직업으로 두기에는 밑천이 없어도 너무 없으니 모순이 짝이 없다. 이곳에서 청소와 서빙으로 밑천을 마련하려면 먹고사는 일에만 집중해야 한다. 딱 그만두고 싶다. 빛나는 여행에는 이면이 너무 많다. 정착을 꿈꾼다. 돈을 모아 한국에 가야지, 공부를 하고 집을 지어야지. 그러다 다시 여행을 꿈꾼다. 사십 살이 되면 마을버스를 사야지, 그걸 타고 어디든 횡단해야지. 나는 대체 어디까지 무능할 생각일까.


 스물일곱이 되었는데 무능을 이유로 울다니 이럴 줄은 몰랐다. 오늘 밤에는 영어 공부를 하고 아서 밀러의 <세일즈맨의 죽음>을 읽을 생각이었는데 우느라 시간을 다 썼다. 나는 대체 언제까지 이럴 생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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