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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리멀리 Aug 20. 2020

8.20.2020

[일기]

 불안은 나의 숙명이랬다. 내 엠비티아이 유형은 INFJ이다. 넬슨 만델라와 같은 유형이지만 그와 무진장 다른 나는 그저 날마다 불안에 휩쓸리는 94년생이다. 나와 같은 유형의 사람들은 주로 깊은 상상을 하고 자주 불안하다고 한다. 해서 불안은 숙명이라고 생각하고 마음껏 불안해해도 된다고 내 친구 모리가 그랬다.


 나는 오늘도 불안하다. 이년 째 세계일주 중이지만 중간에 팬데믹이 닥쳤고 돈을 벌기 위해 호주에 왔지만 마음처럼 돈이 모이지 않는다. 오후에 할 만한 일자리를 구하느라 몇 군데 이력서를 넣었지만 쉽게 떨어지고 어쩌다 붙은 곳은 성에 안 찬다. 불안의 실체는 사실 작고 보잘것없다. 거대한 팬데믹은 사실 내 불안의 곁가지에 불과하다. 나는 그저 누구도 나를 알아주지 않을까 봐 불안한 것이다. 끝내주게 세계일주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나는 그것이 불안하다. 내 여행이 나에게만 가치 있으면 어쩌나, 그렇다면 내 여행은 가치가 있는 건가.


 계획을 세운다. 내가 가진 우쿨렐레로 연주를 연습해야지, 영어를 더 배워야지, 곰에게 그림 그리는 법을 배우는 건 어떨까, 주말마다 글을 써야지, 사진 편집을 배워볼까, 내일 아침에는 일어나자마자 운동을 해야지, 오늘 저녁에는 하루 종일 일자리를 찾아야지,.....


 내내 세운 계획 중에 실제로 실행하는 일은 발톱 깎기 뿐일 때도 있다. 아니, 그럴 때가 더 많다. 나는 매일 깎여나가다가 어쩌다 한 번씩 북돋워진다. 오늘 밤에는 작은 일로 크게 깎여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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