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청리멀리 Nov 08. 2019

33- 내가 이럴 때 너를 찾아,

 아무래도 모든 게 엉망진창이었다. 몸속에 파도가 쳤다.


 “영, 통화되니,”

 “전화 해.”


 전화를 걸어 속상한 일이 있다고 말하니 그는 무슨 일이야, 라는 말을 아주 빠르게 세 번이나 했다.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내 모든 글과 말과 행동을 뒤집어 버린 실수를 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작게 에휴, 한숨을 쉬었다. 많이 속상하겠다. 잘못이 아닌 건 아니지만 그럴 만한 잘못은 아니야, 전화기를 통과해 귀를 타고 진동한 그의 문장은 내가 온전히 걸을 수 있게 도왔다. 몸의 파도 때문에 배가 자꾸 떨렸는데 이제 괜찮았다. 그는 조금 더 말했고 만나서 꼭 놀자고 했다. 오늘 당장 만나도 좋다고 했다.


 다행이었다. 그의 위로는 작동하여 내 몸을 잔잔하게 만들어 주었다. 그럴 줄 알아서 그가 생각이 난 모양이다. 영은 나를 충분히 위로하는 친구니까 그의 위로가 오늘도 작동할 거라는 확신을 가져서. 그의 위로보다 먼저 나의 확신이 작동한 것이다.


 우리는 처음에 인도의 바라나시에서 만났다. 인도는 누구든 우연히 만나는 장소이지만 우연히 누군가를 만나는 일이 무척 신기한 장소이기도 하다. 숱한 사람을 스치고 그중에 영을 찾아내 오래 이야기했었다. 우리 사이는 처음에 만난 우연을 제외하면 여러 확신으로 이어졌다. 만나면 이야기가 길어질 것, 꼭 재미있을 것, 그와 말하다가 다치지 않을 것, 위로받을 것 등의 약속하지 않은 확신으로 관계가 지속되었다. 내가 밤일 때 영을 찾으면 새벽이 오는 기분이었다. 그는 줄곧 선뜻 내 제안을 받아들였으니까, 내 확신이 한 번도 어긋난 적 없으니까. 나도 영에게 그런 사람이길 오래 바랐다. 왜냐하면 우린 만난 지 얼마지 않았고 우리는 얕지만 우리 사이는 깊다고 여겼는데 나만 그러지 않았으면 하기 때문이었다.


 요동하고 위로받고 잔잔해지니 하루가 저물었다. 밤이 되어 죠에게 전화가 왔다. 죠는 십 이 년째 알고 지내는 친구다. 아르바이트를 그만둔다고 말해야 하는데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나한테 적어 달라고 했다. 지나치게 귀찮았지만 해줬다. 왜냐하면 우린 지나치게 귀찮아도 부탁을 들어주는 사이이기 때문이다. 지난 십 이 년 동안 그런 일이 무수히 많아서 셀 수도 없다. 주소를 잘못 적어 다른 데로 간 택배를 찾으러 가는 길을 같이 걸어 주고 음식을 먹지도 않는데 식당에 가서 앉아있어 주고 궁금하지도 않은 지난밤 꿈 얘기를 오래 들어주는, 그런 걸 해 주는 사이다.


 죠는 아르바이트를 그만둔다고 말한 다음 날부터 안 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 생각이 옳다는 확신이 없었기 때문에 나한테 이렇게 말했다.


 “야, 내가 듣고 싶어 하는 말을 해줘!”

 “야, 네가 거길 왜 가. 그렇게 말했으면 알아듣겠지. 그쪽에서도 네가 온다고는 생각도 못 하고 있을걸? 오히려 가면 당황하겠다.”

 “좋았어.”


 죠에게 확신이 생겼다. 그래서 그는 오늘 아마 아르바이트에 안 갔을 테다. 그와 나는 아르바이트 경력이 거의 비슷하게 많은데, 그가 조금 더 많다. 그래서 우린 일 얘기를 많이 한다. 어떻게 그만두는 게 좋은지, 어떻게 입사하는 게 좋은지. 일터에 이렇게 이상한 사람이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 사람이 얼마만큼 엉망인지. 죠는 내가 곰 이야기를 할 때 빼고는 전부 내 편이다. 짜증 나게도 죠는 맨날 곰의 편이다. 어쨌든 죠에게는 내가 그의 부탁을 들어주고, 아르바이트에 마음 편히 안 갈 수 있게 만들어 줄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그것은 기대이기도 하다. 나는 늘 그를 실망시키지 않는다. 왜냐하면 귀찮기는 하지만 어렵지는 않기 때문이다. 어쩔 때는 귀찮지도 어렵지도 않다. 그가 너무 슬프거나 화가 나면 그렇다. 그럴 때는 나도 마음이 몹시 아파서 귀찮거나 어려울 겨를이 없다.


 그와 내 사이는 시간이 오래 흐르면서 서로를 찾을 수 있는 권리가 생겼다. 서로에게 위로를 받고 용기도 낼 수 있다. 어제는 영에게 위로받고 죠에게 보답했다. 사람들은 서로를 몰라도 끈끈하게 이어져 있어서, 받은 걸 다른 사람에게 돌려줘도 제법 보람을 느낀다. 때로는 해야 할 도리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럼 나는 어제 도리를 한 건가, 그럴지도 모르겠다. 내가 받고 베푼 위로가 전달되고 전달되어 도시의 전깃불처럼 다들 작게 빛나는 장면을 상상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32- 낙타의 발로 걷고 싶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