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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더리 Sep 30. 2021

내가 정말로 원하는 것.

나에게 하는 질문.

9월 초에 혼자 2주간의 국내 여행을 떠났다. 부산을 시작으로, 즉흥으로 계획을 짜서 그때마다 가고 싶은 곳을 정해 옮겨 다녔다. 재택근무여서 가능한 일이었다. 일은 새벽 4시에 시작해서 낮 12시나 오후 2시쯤 끝났고, 오후 시간을 활용해서 돌아다녔다.


여행 중 들린 남해. 전설 속에만 존재할 것 같은 자태의 보리암에 반해서, 남해의 바닷빛에 홀려서 내린 결정이었다. 차도 없고 짐도 (정말) 많은 나 홀로 뚜벅이 여행자가 대중교통이 매우 불편한 남해에 덜컥 갔다. 코로나 때문에 통영에서 남해로 가는 직통 시외버스가 다 없어진 상황이라 진교에서 갈아타야만 했다. 내 몸보다 큰 캐리어와 회사 노트북용 110 볼트 짜리 변압기를 들고 낑낑거리며 남해로 향했다. 남해로 가는 밤, 어둑해진 밤 버스 안에서 내가 괜한 고생을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잠깐 했다. 하지만 의심도 머지않아 낭만으로 바뀌었다. 어둑해진 밤하늘, 한적한 시골 풍경, 조용해진 버스 안, 김동률의 섹시한 목소리를 들으며 남해에 도착하기도 전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해에서는 총 나흘간 지냈는데, 셋째 날에 금산 보리암을 방문했다. 이천 원짜리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려는데, 매표소 할아버지께서 "친구 없어?~ 왜 혼자야~ 담엔 남자 한 명 델꼬와~" 라며 나를 놀렸다. 웃으며 인사를 하고 보리암까지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중간중간 있는 전망대에서 보이는 남해 바다가 눈이 부셨다. 보리암에 도착해서 절을 둘러보고 산 너머의 남해 바다 풍경을 파노라마로 감상했다. 이 풍경, 지금 이 느낌, 이 감정을 내 몸에 어떻게든 많이 담아가고 싶어서 고민하다가 그냥 지금이 좋으면 됐지, 하고 카메라를 내렸다.


해수관음상 앞에 섰다. 보리암에 가면 꼭 다섯 번 절을 하고 오라고 했던, 통영에서 만난 택시 기사님의 말이 생각났다. 사람들은 절을 할 때 무슨 생각을 하면서 절을 할까? 우리 가족은 항상 소원을 빌며 절을 했던 것 같다. 어렸을 때, 부모님이나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절에 가면 항상 "부처님께 ~하게 해 주세요" 하며 절하라는 말을 매번 들었다. 어렸을 때 빈 소원은 무엇이었을까. 부자가 되게 해 주세요, 예뻐지게 해 주세요, 남자 친구 생기게 해 주세요, 좋은 대학 가게 해주세요, 이 중 하나이지 않았을까.


보리암에서 내가 절을 하며 한치의 머뭇거림도 없이 생각한 나의 소원은 "사랑하는 사람과 행복하게 살게 해 주세요"였다. 성공도 아니고, 부도 아니고, 그저 사랑과 행복. 이 두 가지가 내가 원하는 전부라는 것을 이때 깨달았다. 내가 정말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알게 된 순간이었다.


여행을 마친 후, 일상으로 돌아온 나의 생활은 아직도 불만족의 순간이 많다. 내 삶, 내 일상의 모습에 만족하지 못한다는 것은 매우 소모적이고 피로한 일이다. 회사 일이 아닌 '나의 일'을 하고 싶은데, 무슨 일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내 식생활과 몸이 불만족스럽다. 혼자 재택근무하고 혼자 그 외의 시간을 보낸 지 일 년째, 지금 내 삶에는 내가 무엇인가를 같이 하고 싶은 사람이 없다. 만날 시간이 기다려지는, 만날 생각만 해도 신나는 사람들이 대학생 때 이후로는 없다.


이런 순간이 찾아올 때마다 보리암 해수관음상 앞에서 다섯 번 절을 하던 때가 생각났다. 지금 생활이 불만족스럽다면,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내가 원하는 나의 모습은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가감 없이 말해보는 것이다.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을 보고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 갑자기 456억이 주어진다고 해도, 돈으로 해결할 수 없는,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들이 무엇인지 생각해봤다. 그러면 내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 아주 조금이지만, 더 선명해진다. 반복되는 생활 속에서 목표도 없고 의욕도 없다고 우울해하는 대신, 내 시간과 노력을 조금씩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써 보려 한다.


'내 일', '사랑', '자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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