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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더리 Feb 04. 2023

가장 확실하게 지금 이 순간을 사는 방법

지금 나의 삶은 이게 다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 핵심이다.

흔히 20대는 불안의 연속이라고 한다. 대학을 갓 졸업한 사회초년생이 하기 쉬운 실수는 지나치게 미래지향적인 삶을 살게 된다는 것이다. 언젠가 모였을 자산, 언젠가 사게 될 집, 언젠가 만날 배우자, 언젠가 알게 될 나의 적성, 언젠가 이룰 커리어, 언젠가 가질 핫바디. 언젠가 이룰 지위와 명예, 언젠가 떠날 세계 여행, 언젠가 방문할 고급 레스토랑, 언젠가 키울 반려견, 언젠가는 가질 좋은 성격.


우리는 삶의 다방면에서 이러한 희망사항을 마음에 새기며 살아간다. 현재 만족하지 못하는 나 자신과 삶의 여러 이면이 결코 5년, 10년, 30년 후에도 같은 상황이지는 않을 것이라는 믿음. 뭔가 달라져도 더 나아져 있을 것이라는 희망. 책을 읽고, 운동하고, 성실히 직장생활을 하고, 착실히 살다 보면 언제 가는 현명하고, 아름답고, 여유 있으며, 능력 있는, 매력적인 사람이 되어있을 것이라는 생각. 이런 믿음과 태도로 하루하루 임하다 보면 어느새 지금의 나는 없어지고, 미래의 나를 위해 지금의 나를 소비하는 삶을 살게 된다. 완벽하지 못한 현재 나의 삶은, "분명히" 완벽할 미래 삶을 위한 "도구"로 전락하게 된다.


어렸을 때부터 명문대 진학과 좋은 직업을 목표로 하며 현재 나의 삶을 미래를 위해 희생시키는 것이 너무 익숙하다. 어쩌면 그러한 삶의 방식이 내가 아는 유일한 삶의 방식일 수도 있다. 사실 앞으로 내가 더 성장할 것이라는 믿음, 지금 참으면 나중에는 참지 않아도 될 것이라는 굳은 믿음이 없다면 그 잔인한 한국 학창 시절을 견딜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너무나 어렸을 때부터 강요되는 이러한 삶의 태도는 장기적인 행복을 위한 사고방식과는 굉장히 거리가 멀다. 그 이유는, 사실 미래에 대해 확실한 것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미래가 있을 것이라는 보장도 없다. 우리는 흔히 시간을 소유물로 생각하는데 ("시간이 없어", "오늘은 시간이 많아") 하지만 사실 시간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 나는 존재 그 자체로서 시간이다. ("나" = "시간").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며 인간을 정의했다. 하지만 나는 인간을 시간의 연속이라고 정의하고 싶다. 시간은 내가 살아있는 한 존재한다. 지금 내가 살아있기 때문에 나는 이 시간을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내 생명이 끝나는 순간 시간도 끝을 맞이한다. 시간은 내 삶의 연속이다. 내가 살아있는 한 연속되는 그 순간들을 원활한 사회적인 소통을 위해 정리해 놓은 것이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지금 가장 확실한 것은 현재 내가 살아있다는 사실이다. 미래에 대한 나의 바람이 어떻든 그것은 내 뇌가 만들어낸 하나의 생각일 뿐, 확실한 것은 지금 내가 영위하는 이 삶이 바로 나의 삶이라는 것이다. 미래에 어떤 배우자를 원하던, 지금 나의 남자친구가 그 결혼상대에 가장 가까운 사람이고, 미래에 어떤 꿈의 직업을 같기를 원하던, 지금 내가 하고 있는 바로 이 일이 내가 하기로 마음먹은 일이다. 나는 결국 지금 내가 다니고 있는 바로 그 회사를 다니고, 지금 내 연봉을 받고, 매일밤 돌아오는 이 동네에 살며, 내 침대에서 잠에 드는 딱 지금과 같은 생활을 하고 있다. 이 생활이 나의 삶이라는 것.


현재 나 자신이 어떤 사람이고,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뚜렷하게 들여다보면 어느새 미래에 대한 불확실함으로 어수선했던 머릿속이 차분해진다. 미세먼지가 가라앉은 파란 하늘 마냥 눈이 뜨이고 정신이 들면서 지금 내 삶과 내가 속해 있는 이 세상이 더 맑고 명확하게 보인다. 현재 나 자신을 들여다보는 가장 쉬운 방법은, 지금 나 자신과 내 삶에 대한 사실들을 생각나는 대로 공책에 나열해서 써보는 것이다. 내가 살고 있는 곳, 내가 사는 집, 누구와 같이 살고 있는지, 나는 매일 어떤 일을 누구와 함께 하는지, 퇴근 후에는 무얼 하는지, 하루에 뭘 먹고 사는지, 주말은 뭘 하며 보내는지, 잠들기 전에는 뭘 하는지, 지금 내 건강은 어떤지, 내 남자친구는 누구인지.


사소한 것 하나하나 현재 나에 대한 수많은 사실들을 적어 내려가다 보면, 지금 나라는 존재가 어떤 사람인지 더 잘 알게 된다. 나를 더 잘 알게 되면, 이상하게도, 나 자신을 더 좋아하게 된다. 이전에는 자신에 대한 막연한 불만족과 불안감이 있었다면, 본인에 대해 더 알고 난 후에는 지금 내가 꽤 괜찮은 사람이라는 것, 그리고 이렇게 내 능력껏 주변사람들과 잘 살아가고 있는 내 삶이 생각보다 되게 괜찮고 심지어는 조금 행복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미래에 대한 생각이 아예 쓸모가 없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나의 인생 플랜은 그저 내가 가지고 있는 하나의 "생각"일 뿐이라는 것을 아는 것이다. 내 계획은 지금 내 삶의 방향, 내가 하는 행동의 의도를 결정하는 생각일 뿐이지, 내 상상 속 미래가 나의 삶은 아니라는 것이다. 내 삶은 지금 내가 있는 이 세상이다.


그래, 지금 나의 삶은 이게 다라는 것. 내가 적은 이 "사실"들이 전부라는 것을 깨닫는 것.


오늘 밤도 자기 전에 나와 나 자신을 더 뚜렷이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져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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