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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오니 Sep 29. 2022

완벽한 동그라미

행복을 깊이 경험해온 내 세계에 생각보다 큰 균열이 일었다.


코앞에 닥친 모든 상황을 그저 나의 일이 아니라고 부정해왔다. 그렇게해야 조금 덜 슬펐다.

내가 알던 행복의 모양이 바뀌는 걸 실감하면서도 균열로 인한 여파를 쉬이 받아들이지 못했다.

차라리 몰랐다면 괜찮았을텐데, 진한 행복을 오래 알아오며 자라왔기에 너무나 버겁게 느껴졌다.


어려웠다. 그 균열을 타인에게 이야기하는 것.

그래서 말하지 않는 쪽을 택했다. 과거와 극명하게 대비되는 내 세계를 들추고 싶지 않았으니깐.

당장은 그 쪽이 편했지만 서서히 시간이 지나면서 그 균열도 나의 일부가 됐다는 걸 차차 받아들였다.


무엇보다도 뿌리 깊은 행복은 또 다른 모습으로 꾸준히, 계속해서 이어져가고 있었기에 

조금씩 용기가 생겼다. 그 무렵, 아주 잠깐 지금 나의 세계를 이야기해주고 싶은 대상이 있었다.

하지만 번번히 문턱 앞까지는 가더라도 이내 발길을 돌렸다. 지레 짐작하기도 했다. 

'너는 이 균열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막연한 추측에 용기를 내지 못했고, 

결국 말하지 않는 쪽을 택하면서 나의 세계는 오롯이 내 안에서만 지켜졌다.

이후로 후회하기 보다는 안도했다. 이번에도 나의 판단은 예리했다며 스스로를 토닥였다.


그런데 이번은 달랐다. 나를 깨야만 했다. 조금은 다른 모양의 나의 세계를 이야기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다짐을 하기까지 며칠이 흘렀을까. 아니 다짐보다는 진심을 전하기 위해 '때'를 기다렸다는 표현이 적확하겠다. 


내 마음이 다칠지도 모른다는 걱정도 물론 앞섰지만, 

그럼에도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건 내 감정은 '완벽한 동그라미'였으니깐.

더더욱 신기했던건 그런 고민으로 새벽에 자꾸만 깨면서도, 포기하기보다는 오히려 더 맘을 굳히게 됐다.

제대로 마음을 전하자고 말이다.


말문을 열었던 날, 경계를 모르고 확장하기만 했던 내 마음은 다치지 않았다.


따뜻하기만 했다.

상대는 오히려 더 가까이 손을 내밀어주었으니깐.


실은, 위에서 인용한 내 감정은 '완벽한 동그라미'라는 표현은 나의 것이 아니다.

나는 그 무렵 그저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지, 세상 좋은 단어를 고르느라 바빴던 것 같다


현재 나의 세계를 이해하려 노력하고, 어렵게 꺼낸 이야기에 고맙다는 말을 건넬 줄 아는 상대는

지금 흐르고 있는 이 감정에 '완벽한 동그라미'가 있었다고 했다. 정말이지 완벽하고 고마운 표현이다!


이제 또 나의 세계는 다른 모양으로 자라나겠지. 

그 속에 스며들 행복의 크기는 가늠하지 않기로 마음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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